[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⑯ 이승만 저격...미국 눈치만 보는 민국당

민중 시위대, 국회의사당 포위 “개헌하라, 못하면 해산하라”

영국도 미국도 '이승만을 대신할 인물이 없다'...미군부도 이승만 편

인보길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6.11.26 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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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1) 부산정치파동⑯ 이승만 저격...미국 눈치만 보는 민국당


민중 시위대, 국회의사당 포위 “개헌하라, 못하면 해산하라”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건국이념보급회 회장

계엄령 선포 한달, 햇볕이 찌는 듯한 충무로 광장에서 6.25침략 2년을 맞아
 ‘반공 총궐기’를 다짐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난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읽어보자.
 [25일 오전 11시 부산 충무로광장에서 거행된 6.25 2주년 기념식에
임석하신 이대통령은 연설중 돌연 배후에서 정체불명인 괴한으로부터 저격을 받았으나
발사한 총탄의 불발로 신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현장에서 즉시 체포된 괴한은 목하 수사당국에서 그 배우관계를 추격중이다.(호외 재록)
그런데 범인은 기자가 목격한 바 엷은 회색 하복을 입은 약 60살의 노인으로 확실치는 않으나,
탐문한 바에 의하면 전 의열단에 관계가 있던 대구사람 유시태라고 한다.
그때 이대통령은 육해군장병 및 민간인등 약 6천명을 앞에 놓고 연설하였었는데
이 자리에는 외국 외교관들과 유엔 당국자들도 참석하였다.

이대통령의 연설이 중간쯤 이르렀을 때 전기 범인 유는 연단 뒤로 나타나
권총으로 이대통령의 배후를 겨누었다. 목격자담을 들으면 범인은 방쇠를 두세번이나 당겼으나 그 무기는 발포되지 않았다 하는데 그때 한국군 헌병과 다른 목격자들이 떠다밀어서
그는 무초 대사의 바로 뒤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통령은 연설을 끝까지 마치었으며 그 뒤에 무초 대사의 연설을 포함하는 식순이 아무런 사고없이 진행되었다.]

다음날 정부는 대통령 암살음모사건의 전모를 발표했다.
권총을 쏜 범인은 자칭 의열단원 출신 유시태, 배후에서 교사한 사람은
민국당 국회의원 김시현이라고 밝히고, 범인의 자백에 따라 관련자로
민국당 서상일, 백남훈 등 4명을 포함하여 서울 고검장 김익진등 12명을 구속하여
수사중이라는 내용으로서 전국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민국당에서는 즉각 조작이라고 반발, 김시현등이 매수되어 벌인 연극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김시현 자신도 법정에서 말을 바꿔 '장택상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

국회는 진상조사를 결의하고 9명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려 하였으나
어느 당도 조사위원을 내놓지 않아 흐지브지 되었다.
주범 유시태와 김시현은 9월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후 감형되어
장기복역하던 중에 9년후 4.19를 맞아 풀려나게 된다.
과연 조작 범행이었을까? 돈을 받고 감행한 짓이라면 사형선고까지 내렸을까?
혹독한 고문과 장기복역을 감내하였던 당사자들도 그후 장택상을 상대로 소송도 없었다.

이승만을 누군가 암살한다면 좋아할 사람들은 북한과 중공, 그리고 미국정부일 것이다.

아무튼 배후가 민국당인지 장택상인지 공산당인지 미국인지, 다른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무성, 군부 합참과 합동회의..."한국 육참총장은 믿을만 한가?"

같은 날 25일(미국시간)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는 미국무성과 합참(合參)의 간부들 19명이
합동회의를 열었다.

의제는 ‘한국 정치사태 해소를 위한 긴급대책’이다.
지지부진한 한국 정치사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조바심치는 국무성이
미국 군부 고위층과 함께 보다 확실한 군사작전 준비를 점검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때 마침 들어온 ‘이승만 저격사건’의 보고를 들은 참석자들은
한국 정세와 영국등 참전국들의 여론을 점검한 다음,
부산의 무초 대사와 동경의 클라크 유엔사령관에게 보낼 지침을 결정하였다.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을 허용하는 경우>

①한국군 총참모장이 직접 지휘하여 부산지역에 군정을 실시할 수 있음.

②그 경우 한국정부의 권위와 기능이 보장되고 헌법에 따라 정상 업무가 가능해야 함.

③한국군 외에 유엔군의 개입은 제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전 참전국들의 요청을 받아두어야 하고,
미국정부 최고책임자의 승인을 받았을 때만 유엔군이 개입해야 하며.
언커크등 다른 기관엔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을 경우> 유엔군사령부는 다음 3단계 조치를 취한다.

①한국군 총참모장에게 육군과 경찰 등 모든 병력을 장악하도록 명령하고,
  부산지역에 계엄통치를 선포하되 한국군만 동원할 것.

②유엔군 명목의 계엄통치의 경우, 한국정부의 주권과 필요 인력을 보호해 줄 것.

③외국 여론을 감안하여 한국군 외에 유엔군의 직접동원은 반드시 제한해야 한다.

이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한국군 총참모장을 신뢰할 수 있는지 보고할 것.

또한 이승만이 한국군의 전시작전권(대전협정)을 회수해 갈 가능성도 염두에 둘 것..

여기서 한국 총참모총장의 신뢰성을 거론한 것은
미국이 다시 군정을 펼 때, 한국군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인지 어떤지,
이승만 대통령이 전시작전권을 회수하고 일부 한국군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만약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 이승만 처음 만난 영국장관들 "한국 정치인들중 가장 자질 갖춘 인물"

참전국들 가운데 한국정치상황에 가장 민감한 관심을 가진 나라가 영국이다.

한국전쟁의 휴전안를 먼저 들고 나온 것이 영국인지라,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이 눈에 가시처럼 박힌 것은 미국보다 더 한 셈이다.
따라서 이번 계엄사태에 영연방국들과 더불어 미국과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런던의 의회와 수상 이든(Anthony Eden)도 이미 “이승만이 유엔 역할을 망치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는 일환으로 국방장관 알렉산더(William Alexander)와
외교담당 국무상 로이드(Selwyn Lloyd)를 한국에 파견한 것이었다.

지난 13일 동경의 클라크 사령관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두 장관은 서울 경무대에서
이승만과 회담을 가졌다. 영국 장관의 방한은 한국역사상 처음이라며 반갑게 맞이한
이승만 대통령은 한영관계의 시작부터 한국전 참전까지 역사이야기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제정의 배경, 이번 개헌파동의 전후 사정에 대한 해설을 펼쳐 나갔다.
동시에 “국회가 그들만의 권력을 추구하여 민중의 뜻에 맞는 헌법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구속 국회의원 재판도 곧 열릴 것이며 비상계엄도 개헌이 끝나면 해제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신생국 한국만의 사정을 설명하였다.

회담을 마치고 나온 알렉산더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웃으면서
“긴 설교를 들었다. 우리가 한 말은 ‘인내하라’는 당부가 전부였다”고 대답했다.

로이드 국무상은 그러나 외무성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승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확실히 빈틈이 없었고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난 한국의 어느 정치인경쟁자들 보다도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다.”
이어서 로이드는 이렇게 덧붙인다.

“부산에서는 지금 이승만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가득하며
야당은 이승만이 국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은 이승만의 배후에 이범석과 원용덕이 실권을 잡고 민주주의를 깨고 있다고 한다.
나의 이 견해는 미국 대사나 언커크도 같이하고 있다.”

광복 후부터 미국 언론과 함께 이승만을 ‘고집불통 독재자'라 비난해 왔던 영국 언론들은
휴전반대에 나선 이승만을 미국 언론에 한발 앞서 공격해왔다.
유명한 [옵서버](Observer)나 [데일리 메일](Daily Mail)등은
 ‘늙은 부부의 절대권력 욕심’ 또는 ‘이승만을 비난하면 감옥행’이라는 둥,
언커크나 대사관의 말들을 가감없이 인용, 이승만 비하 보도를 계속하였다.


▶밴플리트, 이승만에게 "클라크와 나는 한국문제에 의견일치 보았다"

‘한국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자질을 갖춘 인물’--난생처음 이승만을 만나 회담한 영국 장관들이
전쟁하는 약소국의 77세 한국대통령을 평가하는 말이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항 일이다.
미국은 진작부터 한국에 ‘이승만을 대체할만한 지도자는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점이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전쟁 승리를 위하여 필요한 한국의 리더십은 이승만 밖에
없다는 현실인식과, 휴전 성립을 위하여서는 이승만은 없어져야한다는 미국적 당위성,
그 갈등의 중간에서 선택한 시나리오가 ‘국회 선거를 통한 이승만 퇴진’이었던 것이다.

현장 책임자 무초 대사는 ‘계엄 해제-국회 정상화’를 빨리 이끌어내야 하는 것인데,
이승만의 양보를 얻어내는 일은 하나님 말고는 총칼로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일뿐더러,
모처럼 등떠밀어 시켜보았던 야당의 투쟁집회도 보기좋게 좌절되고 말았다.
 대통령임기가 8.15까지 늘어났다 해서 이승만 퇴출 기회가 늘어난 것도 아니요,
야당에게 기대할 여지가 많아진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에 무초는 일쑤 체념에 빠지곤 한다.

지난번 귀국시 애치슨 국무장관은 “한국문제 해결의 가장 큰 목표는 한국에 ‘안정적 정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다짐을 두지 않았던가. 이승만을 무력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승만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미국과 유엔의 이익에 부합된다고까지 강조하던 애치슨이다.

그가 ”장택상의 절충안이 바람직한 것“ 같다면서 ”미국은 어느 한쪽을 굴복시키지 않고
양쪽을 수용하는 방안을 찾도록  집중하라“는 지침까지 내리고 있다.

그동안 무초는 언커크등 유엔기구와 주요국 외교관을 동원하여 이승만과 야당 정치인들을
얼르고 달래고 부지런히 노력하였건만, 이제 부지하세월로 이승만의 입만 바라보게 되었다.

다만 군부의 클라크 사령관이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압력을 행사하여 국회정상화를
앞당겼으면 좋으련만 동경 머피 대사의 편지를 받고 나서부터 무초는 클라크에게 걸었던 기대도 거두어야 할 것 같다. 그저 이승만이 국회 해산만 하지 말기를 빌고 빈다.

일본의 클라크를 대신하여 이승만을 만나는 사람은 밴플리트 8군사령관이다.

본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이런저런 의견을 클라크에게 제시하지만
클라크는 ‘미군이 한국 내정에 성급히 움직여선 안된다’는 신중파,
오히려 이승만의 ‘전쟁 리더십’을 훼손시켜선 곤란하다고 이승만 팬이 되어간다.

가장 열혈팬인 밴 플리트가 6.25기념식 전날 이승만과 단독 회담을 가졌다.

국제공산당 자금사건을 되풀이 설명하는 이승만의 말을 듣고난 밴플리트는 

“그 사건과 관련 외국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협조하겠다”고 화답하였다.

그리고 계엄문제에 관하여 미군부 당사자로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클라크 장군과 나는 한국의 정치위기 해결에 대하여
완전히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것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이승만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기록은 없지만 그는 빙긋이 웃었을 것이다.

30년 독립투쟁을 미국에서 몸으로 부딪친 그는 미국의 시스템과 미국인의 사고방식,
약소국을 다루는 테크닉은 물론, 미국형 패권주의 속성을 꿰뚫고 있는 '외교의 귀신 이승만.
국무성과 군부의 마찰음은 벌써부터 이승만의 정보망에 다 걸려 있는 터,
클라크와 밴플리트의 ‘의견일치’ 한마디로 국무성의 정치장난은 물건너 간 꼴이다.

밴플리트는 클라크에게 보낸 이날 회담 보고서 끝에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이길 것이라는 게 이곳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붙였다.

★ 밴 플리트 장군이 이승만에 대하여:
“2년간 나는 이승만 대통령과 1주일에 한 번씩은 전선을 시찰했고 군사훈련소를 방문했다.
추운 겨울에 지프로 이동하면서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는 손사래를 치며 늘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 강점기 때 지어진 부산의 아주 불편한 집에 살며 개인의 안락을 위해서는 절대로 국고를 낭비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국 관리들이 대통령 전용기 구입을 건의하자 그런 돈이 있으면 적에게 퍼부을 포탄을 사라고 단호히 거부했다. 

 지난 9년간 여러 나라 지도자를 만나봤지만 이 대통령이 단연 최고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한국인들은 일제의 침탈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누리다가 이승만 정부에서 최초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그러나 미국을 증오하고 지주를 살해해 전리품을 함께 나눠 갖자고 종용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공세에 직면하게 됐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산주의 위협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용기와 인내심을 고취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충분한 교육의 기회가 없었고 사회적 규율이 부족했던 한국을 공산 침략에 대항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다.” <‘LIFE’, 1953년 5월 18일, 162~164쪽/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민국당, 등원 거부 지연전술...야당의원도 비판 "죽어도 나와서 죽어야지"

 ‘대통령 선거 6.23 시한’에 쫓기던 야당 의원들은 ‘8.15임기안’이 통과된 뒤엔
시간을 한달이나 더 벌었다는 듯 국회 근처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삼우장파와 신라회를 제외한 민국당등 야당은
벌써부터 국회 성원을 막기 위해 등원을 전면 보이코트하고 있는 상태였다.
‘미국이 군정을 편다던데...’ 은밀하게 번지는 정보를 수군거리며 기회를 기다리는 그들은
‘미군정 시대’가 다시 오면 대통령 선거도 개헌도 무용지물일뿐 아니라,
미국이 지원하는 ‘야당 시대’로 변하리라는 꿈에 부풀었는지도 모른다.
이승만 임기만료 8월15일 한달 전 7월15일(대통령선거 시한) 안에는
미국이 무슨 수를 쓰리라, 무초 대사의 언행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무초의 화법이 달라져서. 그저 ‘타협하라’는 말만 부쩍 늘어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때 <주목할 야당측 성원미달 지연술>을 비난하는 기사를 1면 머리에 올렸다.

[야당측의 성원미달 전술은 아직 그 선거일이 결정되지 않은 대통령 선거와 더불어 
현하 혼돈 정국은 문자 그대로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자유합동파 신라회의 출석을 얻어
과반수이상의 성원으로 본회의의 성립은 될 수 있을 것이나 정국혼란의 원인으로
개헌안과 대통령선거의 2대중요안건의 결정은 못 보게 될 것이 오늘의 국회동향일 것이다.

정부측에서는 끝끝내 대통령 직선 상하양원제 통과를 요청하고 있으며

야당측은 이에 반대하여 양극의 중간인 신라-삼우장의 타협안까지도 실현치 못하게 된
이 정국이야말로 정부 수립후 최대의 심각한 한국정세이다.

눈 깜짝할 사이라도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제정세뿐만 아니라 국내정세도 그러하다.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해결될 것을 희구하는 것이 국민전체의 한결같은 마음인데

정국은 언제 안정될는지 모르는 암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정치인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자아반성으로 사태수습이 요청됨이 이 보다 더 한 때는 없었다고 할 것이다.]

두 개헌안이 상정된지 일주일만에 27일 국회는 가까스로 성원이 되어 본회의가 열렸다.
장관들까지 의원자격으로 나와 본회의를 성립시킨 국회는 마침내 개헌안 심의가 시작되었다.
한 두 달씩 묵혔던 두 개헌안 심의에 앞서서 개회되자마자 임영신(任永信) 의원이
등원을 거부한 의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기한을 정해서 나오라거나 아니면
국회를 해산하든지 해야 할 것 아니냐‘고 특유의 목소리를 높여 규탄하자.
이날도 방청석을 차지한 지방의원 대표들은 호응하듯 맞장구 구호를 외쳤다.

직선제를 지지하는 삼우장파 이충환(李忠煥) 의원이 등단하더니 묘한 질의를 던졌다.

“정반대의 두 개헌안을 동시에 심의하는 중이니 만일 두 안중에서 필요조항만을 살려서
하나의 개헌안으로 만든다면 대통령은 이 헌법을 즉시 공포할 용의가 있는가?”

정부측 답변을 맡은 조주영(趙柱泳, 체신장관) 의원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두 개헌안을 적당히 발췌해서 만드는 일은 국회가 다수결로 결정할 문제라고 해석된다.”

야당의 내각제 개헌안 설명을 맡은 이종형 의원은 혼자 북치고 장고치고 답변까지 하면서
제풀에 성이 난다는 듯 국회에 안 나오는 야당 의원들에게 화풀이의 화살을 날리는 것이었다.

"며칠 뒤 월말이면 회기도 끝나고...내각제는 가망도 없어지고...뭘 바라고 등원도 안하느냐...

죽어도 나와 죽어야지, 왜 뒷방구석에 쳐박혔느냐...대구로 도망가면 계엄령 없어 좋으냐...
나와서 싸워봐야 되지 않느냐...외세 의존이라고 욕을 먹는데 극소수 정신나간 의원들 때문에
국회 다 망신시키고...회기 끝난 뒤에 임기국회 열면 뭐하나...여기서 나는 수정안이 있어요...“ 

횡설수설하던 이종형은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게 아닌가.
정부안과 국회안에서 좋은 조항만 묶어서 통과시키는 게 어떤가고 장내를 둘러본다.
이럴 수가...내각제를 주창하는 야당의원조차 절충안을, 즉 발췌개헌을 들고 나온 것이다.
반론은 한마디도 없었다. 장택상의 개헌 전략은 이정도까지 진척되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승만, ”언론자유 지켜라“ 보도검열 전면 해제 발표

비상계엄령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언론 검열을 전면 해제한다.

다음은 동아일보 보도: [이승만 대통령은 지난 27일 공보처를 통하여 ‘주요 군사기밀에 직접관계되지 않는 한, 모든 검열은 즉시 해제되어야한다’고 언론자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성명하였다. 

“최근 일부 외국 간행물과 국내신문이 차별특혜 혹은 검열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그러한 폐단이 있다면 즉시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자유민주국가인만큼 언론자유는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고로 주요군사기밀에 직접 관계되지 않는 한 모든 검열은 즉시 해제되어야한다. 동시에 이후 검열실시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사전에 본인 대통령 혹은 공보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국은 외국 친구들에게나 국민들에게 숨길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솔직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는 대한민국이 수립된 기본정신의 하나인 동시에 본인이 특히 존경하는 원칙이다.”]


민중자결단, 국회 포위..."민의 따라 개헌하라. 아니면 즉시 해산하라"

다음날 국회는 큰 봉변을 당하였다. 이날 28일은 토요일,
상반기 정기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날이다. 월요일 30일엔 폐회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회 앞 광장을 메운 시위대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았다.
국회를 포위하다시피 둘러싼 시위대 속에서 건장한 청년들 수백명이 정문을 막아섰다.

“직선제 헌법을 즉시 통과시켜라. 아니면 국회는 오늘로서 해산하라”

의사당 안에서는 이날도 성원이 안되어 점심때까지 기다리다가 겨우 정족수를 채워서
김성수 부통령의 사임서를 회기내에 수리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각도 지방의회대표라는 완장을 두른 시위대는 ‘국회 해산’ 결의안을 통과시킬때까지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며 출입문을 아예 잠가버리는 것이었다.

조금전 의사당 안에서는 직선제를 지지하는 이갑성(李甲成) 의원등 60여명이 연명으로
 ‘국회를 자율적으로 해산하자’는 긴급동의를 제의한 참이었던 것이다.

이갑성은 “현역군인을 살해한 서민호나 국체변혁을 기도한 의원들의 석방을 결의한 국회는
국민의 분노를 격동케 하였으며 국민들의 국회해산 요구는 거족적 민의”라면서
그동안 야당이 벌인 정부공격에 책임져야 할 것이고 ”현 국회는 더 이상 긴박한 국정을 처리할
능력과 자격을 상실하였으므로 스스로 해산할 길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긴급동의에 법리적 시비를 벌이며 의석에 앉아있던 의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회의장을 빠져나가려 하자 비좁은 방청석에 몰려있던 지방대표들이 일어나 멱살을 잡았다.
“못 나갑니다. 밤을 새우더라도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든지, 아니면 국회를 해산하든지...”
겁에 질린 의원들은 그대로 눌려 앉아 꼼짝도 못한 채 아무 말도 아무 저항도 없이
 ‘연금’되어버렸다. 이 중에는 장택상 총리도 있었으나 시위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업자득...자업자득...” 수모를 당하는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허구헌날 국회는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 민국당과 무소속등 내각제 지지파들의 등원거부가
장기화 되어 “이런 국회일진대 차라리 없는 것이 마땅하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언론이 비통한 사설을 싣는 상황이므로 시위대가 “끝장내자”고 달려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포로 아닌 포로신세가 되어 5시간쯤 지난뒤 내무장관 이범석이 나타났다.
그는 의원들에게 사과하고 시위대에게 해산을 종용했으나 장관의 명령에도 불응하므로
경찰대를 출동시켰다. 이범석이 몸으로 방패삼아 총리와 의원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지방의희 대표자들과 민중자결단이라는 두 단체가 결성한 ‘전국민중자결 시군대표자 긴급회의’는 국회 포위를 풀고나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전달하였다.

① 6월30일 오후 5시까지 현 국회의 해산령을 천하에 공포하여 주시기를 요구함.

② 국회 해산령을 공포하는 동시 즉시 총선거의 시행을 공포하여 주시기를 요구함.

③ 6월30일 오후 5시 이내로 전국민의 요구를 시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본 민중대표단 등은

   오늘까지 광장에서 수호하던 것을 포기하고, 국회의사당 내로 돌입하여 명실공히 수호를

   개시할 터이오니 이 경우에는 우리들에게 실탄의 선물을 주시기를 요구함.

토요일 주말 밤을 이렇게 지새운 국회는 어수선한 일요일을 지내고
30일 월요일 정기국회 폐회식을 가졌다. 무초 대사와 언커크 대표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
불참한 이승만 대통령은 장택상 총리가 대독한 치사에서 국민단체들이 요구하는 국회해산에
대하여 응답을 보냈다.

“정부가 내놓은 대통령 직선과 국회 양원제 헌법은 전민족의 동일한 요구이므로

이것만 통과되면 다른 문제들은 점차로 해결될 것이다.

지방의원들에게 당분간 기다려 달라고 요청해서 벌써 1주일 이상 인내하여 왔으나

아직 국회가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아서 민중대표들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을 청하기에

이르러 민심이 날로 격앙되고 있다. 지금은 더 기다릴 수 없어서

민의를 따라 국회 해산을 단행하는 것이 대통령의 직무로 각오하고 

수일 내로 공포하려고 한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지는 아직 확정하지 못했으나

더 인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장택상 "발췌기헌안 통과시켜달라"...민국당, 최고위원 등 6명 탈당

7월1일, 자유당의 이재학(李在鶴) 의원등 60여명의 요구로 임시국회가 열렸다.

부의장 김동성이 개회사를 짤막하게 끝낸 뒤 77명의 국회의원들은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은 모처럼 나오지 않던 민국당 의원 10명이 등원하여 환영사와 박수가 나왔고,
장택상 총리는 “앞으로 지방의원들의 집단행동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면서
“정부가 국회의원 여러분의 신변을 보장할 터이니 안심하시고 국회에 나와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도록 협조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하며 머리를 숙였다.

집권 스케줄의 압박감에 쫓기던 민국당의 분위기는 이제 자포자기 상태로 바뀌고 있었다.

믿었던 미국의 태도는 갈수록 ‘타협 촉구’로 일관하였으며, 믿었던 의원들이 하나 둘씩 이탈,
서상덕, 조병문, 조순에 이어 최고위원 지청천과 구을회 의원까지 탈당을 선언한 판이다.
24명 의원중 중진을 포함하여 6명이 떨어져나갔으니 민국당의 전열은 깨지기 시작하였고,
내각제 개헌안에 서명했던 무소속이나 원내자유당 의원들마저 ‘절충안’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직선제 반대 전선은 완전히 붕괴되는 판세가 되어버렸다.

‘미국이 곧 군정을 한다는데 기다리자’ '참전국들도 이승만을 압박, 노골적인 내정간섭을 하니
희망은 남았는지' 떠도는 소문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경찰력을 총동원하여 숨어있는 의원들을 찾아내
등원시킨다는 설, 시위대가 내정간섭하는 외국기관들을 국외로 추방하자는 데모를 곧 벌일 것이라는 설, 장택상과 신라회가 어느 의원을 얼마에 매수했다느니, 들리는 소문마다 민국당 집권의 길은 멀어지는 것들뿐이다. 

이런 정가 분위기와 언론 동향을 보여주는 예로 조선일보 사설을 들 수 있겠다.

7월4일자 1면 상단에 3단통(通)으로 게재한 사설은 제목부터 당시 언론의 민낯을 보여준다 할까.

<李大統領께 建白하나이다>-최상의 존대어 ‘...하나이다’를 대통령에게 붙인 것은 현대언론 감각으론 상상할 수 없는 제목이다. 그때는 이승만이 '국부'로 국민의 추앙을 받던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부께 건의 말씀 올리나이다-라는 자세가 국민감정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정국에 대한 국민의 우려’라는 부제를 붙인 사설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 제12회 정기국회폐회식에서 보내신 치사를 전해 읽고
언론기관의 일원으로서 각하와 함께 민국의 안위가 절박한 이 시기에
정치상파당으로 다소간 곤란하게 된 것을 통탄하는 나머지 스스로 울어나는 소회를
전하게 됨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영광으로 여기는 바입니다.”

양대민족지의 하나로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대통령을 꼬박꼬박 ‘각하’라 부른다.

건국전까지 민주주의 선봉장으로서, 또한 정부수립후 6.25 전란에서 나라를 구하신 치적을 일일이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조선일보는 이승만의 ‘국회해산’ 방침에 대하여 반론을 집중한다.

무엇보다 헌법에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이 없음과 그 해산에 따른 혼란을 지적하고,
지방대표들의 강요에 의한 헌법개정이나 국회해산의 부당성을 ‘엎드려 상소하는 선비’의 말투로 장황하게 법해설까지 늘어놓아 왕조시대 상소문을 읽는 느낌이 든다.
“국회를 해산하지 않고 수습하는 것이 해산후 혼란 수습보다 용이하다”는 것,
이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므로 외국의 비난을 받으면 국민감정이 크게 상처받는다는 것,
그러니 개헌안 싸움은 개헌안의 우열보다 감정과 감정의 대립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큰 어른이신 대통령은 감정으로 대결하지 말고 관용과 포용으로 수습하는게 상책이라는
진언의 호소문이 말끝마다 존대어로 이어진다.

특히 “오늘은 마침 미국 독립기념일이므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위대함에 비견되시는 각하께서 일부의 반감을 위대하신 권위와 아량으로 당면의 위국을 수습하시고 국민의 고난을
광정하실 줄 믿습니다. 모든 이론과 설득과 방편이 통하지 않을 때 치국안민(治國安民)에는 오직 민주주의 자각에 대한 계몽과 반성이 있을 뿐이겠습니다. 그러함으로써만 양원제와 직선제 통과도 의외로 순행될 활로가 개척되리라고까지 믿고 싶습니다.”.

요지는, 국회를 해산하지 말고 이승만의 카리스마로 시국을 빨리 수습하라는 주문이다.

시국 수습이란 무엇인가? 당장 ‘시끄러움과 불안’을 땜질하는 게 그리 중요한가? 

‘정국 수습’이 그런 거라면 계엄령을 선포하지도 않았고 한달 넘게 끌고 오지도 않았다.

전쟁중에 미국과 맞서는 이승만의 나라만들기 전략(Nation Building Strategies)과
다면전술(Multiple Tactics)을 당시 뉘라서 간파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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