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들 불러 국정교과서 사용 거부 종용...교육의 중립성·자주성 훼손
  •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선닷컴
    ▲ 조희연 서울교육감. ⓒ 조선닷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년 전 치러진 제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189만여표를 얻었다. 득표율은 39.08%. 조 교육감과 끝까지 경쟁을 벌인 문용린, 고승덕 후보는 각각 30.65%와 24.25%를 얻었다. 마지막 주자인 이상면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6.00%를 기록했다.

    당시 개표내용을 분석해 보면, 조희연 교육감에게 표를 준 서울시민은 10명 중 4명이 채 안 된다. 이는 곧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유권자가 10명 중 6명에 이른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2010년 이후 서울교육감 선거는 모두 3차례 치러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3번 모두 후보자들이 얻은 표의 비중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유권자들은 3번 모두 진보 후보에게 약 40%, 보수 후보에게는 60%의 표를 줬다.

    만약 2010년 선거와 2014년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후보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서울시교육청 9층 교육감실에 걸려있는 역대교육감의 사진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달 30일, 서울지역 중학교 교장 17명을 불러, 국정 역사교과서의 사용을 거부하도록 사실상 압박을 넣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교육감이 직접 “교과서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인사권과 재정권을 모두 쥐고 있는 교육감이 면전에서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를 미화했다, 국정화로 인한 현장의 피해를 막기 위해 뜻을 모아달라”고 하는데, 그 앞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요가 꼭 직접적인 ‘위해(危害)의 고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권과 재정권, 감독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앞에서 ‘협조’를 요청하는 것 역시,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다.

    교육감으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교장들은 불과 1시간여만에, 내년도 교육과정 운영 계획을 변경하면서, 인사권자의 뜻에 따랐다.

    교육감이 교장들을 불러 교육과정 변경을 종용한 행위는, 그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중대 사유다.

    지역 유·초·중·고 교육의 모든 사안을 관장하는 교육감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개별학교의 결정을 변경토록 압박한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운영이나 변경을 위해서는, 학부모와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학교운영위나 교육과정운영위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건 상식이다. 교육감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몰랐다면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알았다면 교육감이 고의로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 된다.

    서울교육청은 교육감의 직권남용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듯 서둘러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뿌렸다. 교육청은 “내년도 서울지역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중학교는 없다”며, 교육감이 만들어낸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서울교육청은 파문이 커지자 하루 뒤에는, 교육감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반박자료를 내면서, 비판여론을 무마하는데 열을 올렸다.

    서울교육청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을 들먹이며, 교육감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면서도 교육청은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의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하루 전 배부한 보도자료의 내용을 스스로 뒤집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조희연 교육감은 페이스북에, 자신의 행동을 두둔하는 기사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학생을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조희연 교육감이나 서울교육청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법률이나 교육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고개를 가로저을 갑질을 저지르고도 되레 당당했다.

    교육감의 말대로, 교장들에 대한 국정교과서 사용 거부 압박이 학생을 위한 것이고, 그것이 정당한 행위라면, 법률이 정한 절차를 밟아 정책을 추진하거나 정부에 법령 혹은 제도의 개정을 건의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건너 뛰어 교장들을 소환해, 국정교과서 사용을 거부하도록 강권을 해선 안 될 일이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평가와 견해는 저마다 다르다.

    일부에선 이념편향성을 떠나 기술 내용의 부실을 지적하며, 국정교과서 철회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논리는 과거 검인정교과서의 사례와 비교할 때 모순된다.

    현재 내용이 공개된 것은 정식 국정교과서 발행에 앞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키 위한 검토본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 2013년 10월21일, 심은석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이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의 수정·보완 권고사항을 해당 출판사에 통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연합뉴스
    ▲ 2013년 10월21일, 심은석 교육부 교육정책실장이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8종에 대해 829건의 수정·보완 권고사항을 해당 출판사에 통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 사진 연합뉴스


    지금 학교에서 사용 중인 검인정 한국사교과서들도 발행을 앞두고, 교육부로부터 수백 건 이상의 수정권고를 받은 뒤, 내용을 보강했다. 당시 교육부는 한국사교과서 8종에 대해 모두 829건의 수정·보완을 권고했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내용 부실을 이유로, 그 철회를 주장하는 견해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검인정 교과서는 민간 출판사가 불과 5~6명 안팎의 집필진을 고용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국정보다 내용이 부실할 위험이 더 높다.

    야당과 전교조, 진보교육감, 좌편향매체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근본적 이유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주장에 모두 담겨있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언론과 학계 전문가, 학부모들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중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표현에, 거부감을 넘어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이른바 ‘1948년 건국설’을 따르면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은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독재 관련 기술은 인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국정화 반대론자들은, 기존 검인정 한국사교과서의 친북-좌편향적 서술 태도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 있다.

    검인정교과서들이, 북한 사회에서 일상화된 성폭력과 고문, 공개처형, 탈북자에 대한 극심한 인권유린 등 김일성 3대 세습 정권의 만행을 거의 설명하지 않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정화 반대론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해 독도와 위안부 관련 서술을 크게 강화한 사실도, 이들은 외면하고 있다.

    국정화 반대론자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들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상해임시정부나 무장독립투쟁의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일은 없다는 점에서, 국정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보수 혹은 중도성향 학부모 및 교육전문가들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좌우의 균형’을 바로잡았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국정 고교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259 페이지. ⓒ 화면 캡처
    ▲ 국정 고교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259 페이지. ⓒ 화면 캡처

  • 국정 고교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265 페이지. ⓒ 화면 캡처
    ▲ 국정 고교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265 페이지. ⓒ 화면 캡처


    현장검토본을 보면, 국정화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설명하면서 ‘독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4.19혁명은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혁명으로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

      - 국정 고교 한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259, 265페이지

    이런 사실은,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진보진영의 주장과 배치된다.

    국정화에 대한 찬반은 정치적·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으며, 어느 한쪽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국정화 정책 및 현장검토본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나뉘어 있다면, 교육감이 해야 할 일은 ‘중립’이지 어느 한 쪽에 대한 편들기가 아니다.

    조희연 교육감의 행태가 비판을 받는 주된 이유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보진영의 논리만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1일 페이스북에 ‘국정교과서와 메르스 사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교육감은 이글을 통해,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선제적 휴교령을 내려 병의 확산을 막아낸 것처럼, 30일 교장단을 불러 국정교과서 사용을 거부토록 설득한 행위도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 조희연 교육감 페이스북. ⓒ 화면 캡처
    ▲ 조희연 교육감 페이스북. ⓒ 화면 캡처


    위 글은 그가, 국정교과서를 메르스와 같은 ‘퇴치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국정교과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뜻한다.

    균형감을 상실한 사람이 유초중고 학생들의 교육을 관장한다면, 교육의 자주성과 중립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조희연 교육감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전에, 균형감을 잃어버린 현재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

    2년 전 선거에서 자신에게 표를 준 40%의 시민만을 바라본다면, 그는 ‘반쪽짜리 교육감’이란 한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진보 교육’과 ‘보수 교육’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초중고 교육에서만큼은 이념적·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