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의 亂'-한국 언론을 탄핵한다!

    최순실 마녀사냥, 박근혜 인민재판, 촛불 우상화, 졸속 탄핵으로 이어진 언론의 亂.
    저널리즘의 윤리를 포기, 선동기관으로 전락,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기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 1. 최순실 사건이 JTBC의 특종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지 한 달 보름만에 국회가 朴槿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가결시켜 헌법재판소로 넘기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너무나 빠른 사태전개이다.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어, 어 하다가 당한 기분이 들 것이다. 5년제 단임 대통령 중심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탄핵소추를 덜컥 걸어놓으니 일의 頭緖(두서)가 뒤엉켜버리고 말았다.

    2. 검찰은 대통령을 신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니 공범이라 발표하였다.
    최순실 씨에 대한 형사 재판, 특검, 국정조사와 헌법재판소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된다. 헌재의 결정이 먼저 나오면 나중에 형사재판의 결과와 다를 수가 있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이런 불일치는 심각한 憲政 위기를 제기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언제 치르질지도 몰라 정당도 혼돈에 빠졌다.

    3. 국회가 언론의 폭풍 같은 보도와 촛불시위에 등이 떠밀려 서둘러 탄핵 가결을 한 것이 이런 부작용을 낳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씨는 연일 내란선동적 발언을 퍼부어 혼란을 가중시킨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은 검찰 공소장과 언론 보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국회의 독자적 조사가 全無하다. 헌법재판소는 수많은 증인을 부르고 수많은 증거 조사를 하는 등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재판 때는 소추된 사실에 대한 다툼은 없었고 법리 적용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두 달이 걸렸다.

    4. 정치와 재판 일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인민재판식 보도가 몰고 온 졸속 탄핵 소추이다. 일련의 사태를 언론의 亂이라 부르는 이들 중엔 언론인 출신이 많다. 최순실 마녀사냥, 대통령 인민재판, 촛불 우상화를 주도한 것은 '조중동'으로 불리는 主流언론이었다. 신문과 종편 TV를 입체적으로 동원한 폭로성 집중 보도는 감정적이고 적대적이며 주관적이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포기한 선동 일변도였다. 오보나 왜곡으로 밝혀져도 바로잡지 않았다. 한국 언론사의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5.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최선생님'이라 불렀다, 최순실의 아들이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날 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최태민을 위한 굿을 했다,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8선녀 그룹이 있다, 최순실이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하여 외국을 다녔다, 고영태가 호스트바에서 최순실을 만났다, 차은택이 심야에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과 만났다 등등의 보도는 허위로 밝혀졌지만 제대로 바로잡지 않아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이 순간에도 사실로 믿고 있다.

    6. 조중동이 선도한 대통령 난타에 좌우가 합작, 反朴통일전선이 형성되니 분노한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언론은 촛불시위를 적극적으로 응원하였다. 시위 군중 숫자를 주최측의 주장대로 표기, 실제보다 5~10배나 과장하였다. 비판적 견해는 '촛불비하 발언'으로 규정되어 뭇매를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항거불능 상태가 되었다. 청와대 비서실은 일찍암치 無力化되고 새누리당(특히 친박세력)이 두려움에 떨면서 무릎을 꿇은 사이 박 대통령 비방은 아무리 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드디어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한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종일 박 대통령을 벌거벗겨놓고 난도질하니 '잘한다'는 평가가 5%대로 떨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검찰은 마음 놓고 대통령을 몰아세울 수 있었다. 

    7. 조중동이 경쟁적 보도로 최순실의 비리를 파헤친 초기 공로는 인정되어야 한다.
    朴 대통령이 줄곧 秘線의 실체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났고 그 뿌리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최태민이란 문제적 인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통속적 주간지에 어울리는 흥미유발 요소는 차고 넘쳤다. 언론의 보도를 검찰이 수사로 확인해주고 촛불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이를 받아 국회가 탄핵 절차를 밟으니 一瀉千里로 진행된 것이다.

    8. 언론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반격 의지를 상실하자 무리하기 시작하였다.
    객관성과 공정성과 공익성을 핵심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윤리를 무시하였다. 나중에 오보로 밝혀진 의혹이 머리 기사로 오르고, 반론은 묵살되었으며, 대통령의 머리 손질 시간이나 복용한 약을 놓고 며칠간 내리 선정적 방송을 이어가는가 하면 오보임이 밝혀져도 訂正엔 인색하였다.

    9.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불리한 정보는 극대화하고 촛불시위대에 불리한 정보는 고의로 축소하거나 은폐하였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단체가 좌파 성향이고 2008년 광우병 난동 주도 단체와 많이 겹친다는 사실, 시위 주제가로 불린 노래 '이게 나라냐'가 김일성 찬양가를 만든 이의 작품이란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촛불의 우상화에 조중동이 가담한 것은 희극적이다.

    10. 조갑제닷컴은 이런 정치적 격변기에 늘 사실을 중시하는 편집 자세를 견지하였다.
    사실관계만 명백해지면 판단이나 대책은 저절로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다. 최순실 사태를 보도함에 있어서 자연히 언론비판이 主가 된 것은 언론의 역할과 일탈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조갑제닷컴에 기고한 분들의 예리한 분석이 우리를 도왔다.
     자유기고가 이강호 씨는 <21세기 한국판 양반-상놈의 시대’, ‘新士農工商의 시대’가 열렸다>에서 기자, 검사, 정치인이 주도한 탄핵 사태의 역사적 배경을 건드렸다.
     <조선시대, 반정(反正)으로 왕(王)을 쫓아낸 뒤 권위의 자리를 차지한 건 백성(百姓)이 아니라 사림(士林)이었다. 21세기의 한국도 그렇게 됐다. ‘먹물 기레기 선비’, ‘386 좌빨 사림(士林)’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21세기 한국판 양반-상놈의 시대’, ‘新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세계적 대기업 경영자들이 교양없는 의원들로부터 당한 수모에 흥분하였다.   
     <기업인이라는 공상인(工商人)들은 이제 결사의 자유도 없으며, 21세기 판 사림(士林) 완장들이 자기들 마당 앞으로 호출하기만 하면, 머리를 조아리고 훈계를 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기레기 선비들이 신문이라는 21세기 판 상소장(上疏狀)에 아무렇게나 갈겨쓰기만 하면 바로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광장에 도취된 자들은 “국민의 승리”라고 환호하지만 사실은 국민은 패배했고 승리한 것은 새로운 사림(士林) 양반 패거리들이다. 국민은 법치국가의 국민다운 양식을 잃고 민심(民心)이라는 굴레로 묶이는 백성(百姓)이 됐을 뿐이다. 승리를 움켜진 새로운 사림(士林) 패거리들은 앞으로도 계속 민심(民心)을 들먹이겠지만 예전에도 사림(士林) 양반들이 ‘백성(百姓)의 마음’을 진정으로 존중한 적은 없었다. 그들에겐 백성(百姓)이란 목민(牧民)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래서 백성(百姓)은 잘해야 가축이요 못하면 개 돼지에 지나지 않았다.>

     11. 조선조 이후 오늘까지 언론의 도덕적 명분론은 항상 정치를 움직였다.
    조선 시대엔 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와 吏曹銓郞(이조전랑)과 士林이 언론과 여론을 주도, 정치를 이끌었다. 조선조의 정치구조와 언론의 생리는 오늘의 한국과 비슷하다.
       宣祖 이후의 지배 관료층을 배출한 주자학 신봉 士林은 조선조 開國을 반대한 유학자의 제자들이었다. 생래적으로 反체제적이고 大義名分論이 강했으며 저항적이었다. 조선조에서 살면서 조선조 開國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建國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심리는  흡사하다. 이는 자해적이고 僞善的인 도덕주의로 연결될 수밖에 업다. 조선조의 엘리트들은 性理學(朱子學)을 교조적으로 섬겼다.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인은 민주주의를 교조화한다. 조선 黨爭의 主무기는 주자학적 명분론이고, 三司와 吏曹銓郞이 조성한 언론과 탄핵이었다. 한국 지식인의 한 패션은 교조화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무기화하여 주로 국가, 군대, 기업, 미국, 법치를 공격, 양심가인 척하는 것이다. 언론은 실용정신, 尙武정신, 自主정신과는 담을 쌓았다. 


     12.  21세기 한국 언론의 작동 매카니즘도 조선조와 비슷하다.
    조선시대 司諫院의 역할을 언론이 맡고, 司憲府 역은 검찰과 법원이, 홍문관은 학생, 士林은 재야 운동권에 비견된다. 이번 사태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듯이 이들이 핵심세력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속의 언론이지만 가치관과 행태는 조선적(守舊的)이다. 조선조적 전통, 즉 명분론, 위선, 反체제성, 군사-경제-과학에 대한 無知, 사대성, 교조성은 前근대적이므로 자연스럽게 수구적인 좌경이념과 통한다. 類類相從이다. 북한정권은 조선조의 後續이다. 좌경적 조선조는 600년에 걸쳤고, 대한민국 建國 이후 비로소 자유와 경쟁 등 우파적 가치관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우파 70년, 좌파 600년인 셈이다. 우파의 뿌리는 약하고 좌파는 깊고 넓다.

      13. 조선조와 한국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생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결함은 자주국방 의지의 실종이다.
     '주한미군이 있는 한 데모는 없어지지 않는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독백처럼 한 이야기이다. 광화문으로 시위하러 나가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안보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열 명이나 될까? 북한의 핵문제가 최순실 사건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란 사실에 동의하는 이는? 자주국방을 포기한 사람들이 못할 짓은 없다. 자신과 공동체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키는 일에 관심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치졸한 권력투쟁에 몰입한다. 자주 국방 의지는 彼我 구분에서 출발한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것이다. 황장엽 선생은 '이념이란 공동체의 利害 관계에 대한 自覺이다'고 했다. 자주국방을 포기한 사대주의자들은 내부의 敵에 대한 경계심이나 분노, 그리고 적대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이 일반화되면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를 허용한다.

     14. 이희도라는 조갑제닷컴 회원이 쓴 글을 소개한다.

     <왜 대한민국 보수는 다 잃었는가?
    왜 대한민국 보수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금자탑을 쌓고서도 다 잃었는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나는 대한민국 보수가 공정 공평이란 함정과 값싼 관용의 함정에 빠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보수는 공정 공평이란 잣대를 아주 관념적인 차원에서 적용하여 極左까지 허용하는 愚를 범했던 것입니다.

    법조계를 봅시다. 특히 법원은 당연히 우파의 이념이 지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법관을 뽑을 때 당연히 극좌 성향의 인물은 배제되었어야 합니다. 사법 고시를 패스해도 인터뷰에서 걸러 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분별 公正 公平 때문에 붉은 사상의 소유자도 시험을 통과하면 임용이 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安危가 걸린 사건에서조차 법원의 정당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문열씨가 당할 때 같이 싸워주고 지켜줘야 하는데 몰매를 맞도록 놔두니 누가 감히 우파를 자처하겠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로 김진태 의원이 몰매를 맞으면 지켜 줘야 하는데 지킬 수단조차 없습니다. 뭐가 있어야 지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쇠한 우파 진영이 여기저기 몰려 다닐 수도 없고. 다 보수가 무분별한 관용을 한 결과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보수 우파는 지키고 싸워야 합니다.>

     
     15. 文明국가에선 유례가 없는 언론의 亂은 문자의 亂이기도 하다.
    2016년 언론을 뒤덮은 문장의 특징은 부정확, 감정적, 애매모호, 관념적이다.
    국어에 대한 반란이다. 한국어가 사실파괴, 상식파괴에 이용된 것이다. 한 세대에 걸친 한글專用이 한국어를 암호문으로 만들더니 드디어 기자들의 思考를 저급화 시켜 淺薄(천박)한 기사문을 양산하고 있으며 이런 글들이 세상을 뒤흔든다. 자주국방의지를 포기한 사대주의적 노예근성과 한글專用에 의한 언어능력의 퇴화가 결합된 것이 '언론의 亂', 그 배후일 것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