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가족·측근·친노핵심 연루된 수뢰·정치자금 사건, 친문이 반색?
  • ▲ 박연차 게이트 관련 당시 수사 전개도. ⓒ연합뉴스DB
    ▲ 박연차 게이트 관련 당시 수사 전개도. ⓒ연합뉴스DB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들에게 뇌물을 전달했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도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 일각에서 범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를 향해 '제2의 김대업'식 흠집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시사주간지는 최근 호에서 박연차 회장이 지난 2005년 5월 베트남 외무상 환영 만찬에서 당시 외교장관이던 반기문 총장을 만나 20만 달러가 담긴 쇼핑백을 전달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또 2007년 초에도 박연차 회장이 미국 뉴욕의 한 식당 주인에게 3만 달러를 건넨 뒤 반기문 총장으로 하여금 찾아가게끔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친문 세력은 반색했다. 친문 성향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최인호 최고위원은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연차 회장의 여비서 다이어리에도 반기문 총장이 거액을 수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당시 수사관들이 말한 것으로 다른 매체가 보도했다"며 "검찰은 반기문 총장의 수수 의혹에 대해 즉각 사실 관계를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문제는 사안의 진상 규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도된 내용으로만 따져봐도 이미 10년이 넘은 사안들이라 이제 와서 사실관계를 따지고 해명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의 수사를 통해 진상이 가려지기도 어렵다. 뇌물죄의 경우 2007년 12월 이전 사안은 공소시효가 10년이라, 2005년 의혹은 이미 시효가 만료됐다. 2007년 3만 달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문제되는데, 이는 시효가 7년으로 더욱 짧아 역시 만료됐다. 사실관계 자체만으로 공소권이 없는 게 명백할 경우,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진상 규명이 어려운 사안을 들고나와 '아니면 말고' 식의 '제2의 김대업' 공작 정치를 의도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의 두 아들의 병역 면제 과정에 마치 부정과 비리가 있는 것처럼 김대업이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흠집을 냈던 것이 떠오른다"며 "수사관을 사칭한 김대업 씨는 이후 대법원에서 명예훼손과 무고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허위 공작으로 영향을 받은 대선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연루됐던 '박연차 게이트'는 노무현정권 당시 친노(親盧) 핵심 인사가 수뢰의 대상이었는데, 이를 들고나와 반기문 총장을 흠집내려 하는 것이 황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최인호 최고위원은 이날 "문제의 (박연차 회장 여비서의) 다이어리에 적혀있었던 인물들은 상당수가 재판 과정에서 유죄로 입증됐다"며 "(다이어리의) 신빙성이 매우 높은 것"이라고 추어올렸지만, 그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부역했던 친노 핵심 인사라는 사실이 빠졌다는 비판이다.

    친노 핵심 인사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당시 12만 달러를 수수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으면서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역시 친노로 분류되는 서갑원 의원도 5000만 원을 수수해 벌금 1200만 원을 선고받으며 의원직을 잃었다.

    친노 사당(私黨)인 열우당 소속으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차관과 그의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김태웅 전 김해시장도 나란히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무현정권 청와대 핵심 인사들도 빠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비서관은 각각 징역 6년과 징역 3년 6월이라는 가장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았다.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에게 전달된 100만 달러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 또는 영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권양숙 여사에게는 그외에도 피아제 시계 선물도 이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도 사업투자 명목으로 500만 달러가 건네졌는데, 투자 청탁이 이뤄지는 현장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 씨가 배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딸인 정연 씨에게는 40만 달러가 전달돼, 정연 씨의 미국 주택 구입자금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박연차 게이트' 자체가 친노 세력의 부정부패와 끊을 수 없는 고리로 맺어져 있고, 현재 대권주자 중 책임을 따지자면 노무현정권 당시 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봉직했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이 가장 큰데도, 이를 꺼내들어 반기문 총장을 흠집내려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보수신당 합류 여부를 신중히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친노·친문 세력이) 반기문 총장이 겁이 나긴 나는 모양"이라며 "(국내로) 들어오기도 전에 허무맹랑하고 얼토당토 않은 허위 사실이 유포되는 것을 보니…"라고 혀를 찼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박연차 사건이 대체 뭐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에게 건네진 500만 달러가 그 핵심 아니냐"며 "반풍(潘風)의 초기 진압을 위한 네거티브 소재가 가소롭기 이를 데 없다"고 조소했다.

    아울러 "유엔사무총장을 수행하느라 아직 귀국하지도 않았는데, 허위사실로 중상모략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권 일각의 졸렬한 수준을 세계에 드러내는 어처구니 없고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반기문 총장 측에서 악의적인 허위사실이라며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