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해법 제시하라" 압박… 보름 후 '반기문 모범답안' 나오나
  • 정진석 전 원내대표(사진 왼쪽)는 30일 새벽 미국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오른쪽)과 만나 1시간여에 걸쳐 독대하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 5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 환담하고 있는 반기문 총장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 정진석 전 원내대표(사진 왼쪽)는 30일 새벽 미국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오른쪽)과 만나 1시간여에 걸쳐 독대하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 5월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 환담하고 있는 반기문 총장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미국을 방문한 새누리당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 1시간여에 걸쳐 독대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적 위기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정치적 대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8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30일 새벽(한국시각) 뉴욕에서 반기문 총장과 만났다. 두 사람은 국내 상황과 관련해 1시간여에 걸쳐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연합뉴스〉와의 국제전화에서 "반기문 총장이 '나라가 위기 상황'이라고 하더라"며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청년·여성·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어려움에 처하니, 정치권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반기문 총장은 '정치적으로 대통합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며 "경제·사회적으로는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반기문 총장이 국내 보수정당의 분당(分黨)과 신당 창당의 움직임, 그 자신의 신당 창당 여부, 특정 정당에의 입당(入黨) 등 구체적인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기문 총장이 현재의 국면을 '위기'로 규정한 뒤, 청년·여성·노인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정치권의 해법 제시를 강조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앞서 지난 10월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일시 귀국한 김원수 유엔사무차장과 회동했다. 김원수 차장은 반기문 총장을 10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 자리에서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김원수 차장에게 "반기문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네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귀국해야 할 것"이라며 △청년실업 △고령화 △양극화 △개헌의 4대 핵심 화두를 제시했다.

    이같은 조언은 미국 뉴욕으로 돌아간 김원수 차장의 보고를 통해 반기문 총장에게 전달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로부터 두 달 뒤에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 만난 반기문 총장이 "위기 상황에서 청년·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권의 해법"을 강조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제시한 △청년실업 △고령화 △양극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그 자신만의 '해답'을 어느 정도 준비했다는 자신감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권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약 보름 뒤에 귀국할 그 자신이 '해답'을 내놓겠다는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적 대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키워드가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가장 먼저 어려움에 처할 청년·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방으로 베네수엘라 등에서 파국을 불러온 바 있는 좌파식 포퓰리즘 정책으로는 희망이 없다.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라는 관점에서 처방된 네덜란드식 '사회·경제적 대타협'이 필요한데, 반기문 총장이 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의 '해법'을 적극 뒷받침할 제(諸)정치세력의 '대통합'을 주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두 달 전에 제시했던 4대 화두 중 '개헌'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반기문 총장은 정진석 전 원내대표에 앞서 최근 미국 뉴욕을 방문한 경대수·박덕흠·이종배 등 충북권 의원들을 통해 "19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며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대선 전에 개헌이 어렵다면, 다음 정권 초기에 개헌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 임기도) 유연하게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혀, 2020년 총선에 맞춰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는 방식으로 개헌하는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이처럼 개헌에 관한 입장을 활짝 열어둔 반기문 총장을 향해, 개헌추진회의에 참여하는 등 국내에서의 각종 개헌 논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진척 상황을 브리핑하고, 개헌을 매개로 하는 정계 개편의 가능성과 구도에 대해서도 설명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여권 관계자는 "얼마 전 방미했던 경대수 의원이 '대선 도전 의사를 새삼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반기문 총장이 국내 정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고 말했다"며 "정진석 전 원내대표와도 공개된 것 이상으로 정치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