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언론이 놀란, '연민의 情이 없는 한국인'

    아버지-어머니-딸이 대(代)를 이어서 동족(同族)의 손으로 요절이 나는데도
    한국인은 동정심이 없고, 외국 언론만 동정론을 펴는 게 인상적이다.
    한국인은 원래 이토록 잔인한 민족인가?
    과연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 한국인의 삶을 바꾼 아버지는 부하의 총에, 퍼스트레이디의 전범을
    보여주었던 부인은 공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그 딸은 언론 검찰 정치인들의 손에 빈사(瀕死) 상태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연민의 정이 없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박정희가 보냈던 연민은 메아리가 없다.  

       전두환, 노태우의 충고
     
      2002년 초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 대통령 출마를 준비할 때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의 충고가 같았다고 한다.
      “내가 대통령을 해 봐서 잘 아는데 한국에서 대통령직을 끝낸 뒤 칭찬 받기가 매우 어렵다.
    박 의원이 그렇게 되면 아버지까지 욕보이게 된다.”
      이 말을 전했더니 박 의원은 듣기만 했다고 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2월17일자에 ‘청와대의 딸’이라는 제목의 무기명 칼럼을 실었는데 최순실 사태를 문학적으로 설명하였다. 朴 대통령의 몰락은 신파극과 코미디적 요소(정유라의 애완견이 사건의 발단)가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그러나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 부족한 게 있다고 했다.
    그것은 ‘관중의 연민’(the pity of the audience)이다.

      나는 TV토론이나 대중강연장에 나가면 이런 말을 한다.
      “우리를 가난과 굶주림에서 구출하고도 비명(非命)에 간 박정희 육영수의 따님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무슨 값싼 동정심이냐는 비판이 있을 법한데 의외로 수긍하는 이들이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칼럼의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부모의 사진들과 유품(遺品)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는 젊은 시절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성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딸 이야기는 인간의 성취와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에 어울리는 소재이지만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였던 대로 하나가 모자란다. 박근혜의 몰락 과정을 어떻게 이기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하는 정치와 언론의 계산과는 별도로 비극성에 공감하는 관중(국민)이 있어야 비극은 완성된다.
     
      한국인의 삶을 바꾼 아버지는 부하의 총에, 퍼스트레이디의 전범을 보여주었던 부인은 공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그 딸은 언론 검찰 정치인들의 손에 빈사(瀕死) 상태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연민의 정이 없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박정희가 보냈던 연민은 메아리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연두순시에서 노동청을 방문하고 아래와 같은 지시를 한다.
     
      “작년에 구로동 어느 수출 공단에 갔을 때입니다. 아주 정밀한 기계를 취급하는 직공인데, 그 아주 작은 이런 것을 들여다보고 작업하기 때문에 시력(視力)이 대단히 피로하기 쉽고 또 어두우면 아주 작업에 지장이 많은데, 가보니 저쪽 구석에서 컴컴한 거기서 일하는데 불은 여기서 거꾸로 뒤로 비치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 가서 지적을 했지만, 한 가지 간단한 예지만, 책임자가 다닐 때 여기는 전기를 하나 따로 더 달아 준다든지 조명을 더 밝게 해준다든지 이런 건 간단한 착안입니다. 
      어떤 때 가보면 직공들이 머리가 또 요즘 히피마냥 이만큼 길게 하고 있는데 ‘왜 자네 머리 안 깎느냐?’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늦게 일하고 가면 뭐 이발소 가고 할 시간이 없다 그래요. 그런 것은 기업주들이 이발사를 데리고 와서 할 수 있고, 종업원들을 가족같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시켜야 능률이 오르고 생산이 늘고 이러지 그런 정신 안 가진 기업체는 나는 절대 성공 못 한다고 봐요.”
     
      아래 글은 1999년에 산업자원부가 펴낸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역대 상공ㆍ동자부 장관 에세이집》에 실린 朴忠勳(박충훈) 前 국무총리의 회고이다.
     
      <이것은 좀 감상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나 인상 깊었기에 적어본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타고난 손재주도 물론 대단하지만 배우겠다는 向學熱(향학열) 또한 세계
    제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날짜가 확실치 않은데 어느 날 九老工團(구로공단) 作業場(작업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朴正熙 대통령은 몇 사람의 수행원들과 함께 공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여남은 살 된 少女(소녀)가 제 옆에 大統領(대통령)이 와 서 있는 것도 모른 채 일하고 있었는데, 대통령께서는 바쁘게
    놀리고 있는 少女의 손을 내려다보다 덥석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네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엉겁결에 대통령에게 손목을 잡힌 소녀는 어리둥절했다기보다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아닌가 해 겁에 질렸을 게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大統領)은 가볍게 떨고 있는 소녀에게 재차 네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주위에 있던 수행원들이 그 소녀에게 안심하고 네 소원을 말해보라 했다. 그제서야 소녀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교복(校服) 한 번 입어 보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순간이었지만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朴 대통령은 군인이면서 다정다감한 데가 있었다.
    내가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대통령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을 것이다.
    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엄명을 내렸다. 그 엄명은 지체없이 시행됐다.
    工團(공단)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원한다면 어떤 법을 고치고 또 절차를 바꾸어서라도 학교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기회를 주도록 하라는 명령이었다. 夜勤(야근)을 마치고 다닐 수 있는 학교와 어떤 졸업장과도 구별되지 않는 똑같은 졸업장을 주도록 하라 엄명했다.

    며칠이 지난 후 그 소녀가 아무도 보지 않는 밤길이었지만 교복 입고 가방 들고 학교 나갔을 때의 心情(심정)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감격이요,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 소녀가 얼만큼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며 직장에서도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했을 것인가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못되더라도 국민적 연민의 부족, 이 점이 한국식 비극의 핵심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어머니-딸이 대(代)를 이어서 동족(同族)의 손으로 요절이 나는데도 외국 언론만이 동정론을 펴는 게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한국인은 원래 이토록 잔인한 민족인가?
    과연 영웅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