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록바에 절받아도 부족할 공로 세운 潘… 정작 고국서는 '비난 세례'
  •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디디에 드록바가 조국 코트디부아르 국기를 등에 걸고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세계적인 축구선수인 디디에 드록바가 조국 코트디부아르 국기를 등에 걸고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이며, 국내 네티즌들로부터 '드록신(神)'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디디에 드록바는 지난 2005년 10월 수단 원정경기에서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직후, 고국의 시청자들에게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내전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내전 종결'은 간절했던 것이다. 1999년 쿠데타에 뒤이어 2000년 민정 복귀를 위한 대선이 군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중단되면서 내전에 돌입한 코트디부아르는 당시 5년째 '생지옥'과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 체제에서의 유엔은 철저할 정도로 무능했다. 2004년부터 수 차례 국제사회의 감시 하에서의 대선 실시 계획이 거듭 제안됐으나 '페이퍼 플랜'에 그쳤다.

    2007년 취임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코트디부아르의 포성을 실질적으로 멎게 해, 드록바의 소원을 이뤄준 사람이다.

    반기문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코트디부아르 내전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에 나섰다. 식민 종주국인 프랑스에 더해, 방글라데시·모로코·세네갈에 파병을 요청해 코트디부아르에 총 1만1000명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을 창설했다.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로는 최영진 전 외무차관을 지명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러한 비중 있는 국제적 역할을 맡는 업무에 지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반기문 총장은 최영진 전 차관을 불러 유엔평화유지군 1만1000명의 지휘를 맡는 특별대표로 임명하면서 "동아시아 사람으로서 이 일을 맡는 것은 당신이 처음"이라며 "실패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Failure is not an option)"고 강조했다.

    이것은 하나의 중대한 시사점이었다. 그간의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이란 소극적인 것에 국한됐기 때문에 사실 일부러 실패하려 해도 실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반기문 총장이 "실패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라고까지 강조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소극적인 평화유지 업무 그 이상을 이미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외무장관 시절 당시 외무차관이었던 최영진 전 차관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DB
    ▲ 외무장관 시절 당시 외무차관이었던 최영진 전 차관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모습. ⓒ연합뉴스 사진DB

    반기문 총장은 2010년 11월 28일, 마침내 유엔 감시 하에서 코트디부아르 대선 실시를 단행했다. 인민전선의 그바그보 대통령에 맞서 야당인 공화국연합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를 지낸 알라산 우아타라(Alassane Ouattara) 후보를 내세웠다. 중앙선관위에서는 54.1%를 득표한 우아타라 후보가 45.9% 득표에 그친 그바그보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공고했다.

    이튿날 헌법위원회는 대선 결과를 뒤엎었다. 우아타라 후보에게 투표한 60만여 표가 무효표로 처리되면서, 그바그보 대통령의 당선이 선언됐다.

    그바그보와 우아타라는 각자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내각을 조각(組閣)했다. 한 나라에 두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173명이 죽었다. 내전 재개의 암운이 드리우자 이웃나라 라이베리아로 월경한 난민도 1만8000명에 이르렀다.

    반기문 총장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반 총장은 12월 17일 성명을 통해 "그바그보가 대통령직에 남아 있도록 놔두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라며 "선거 결과는 이미 나왔고, 다른 선택은 없다는 것이 유엔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바그보는 권좌에서 물러나라"며 "그가 권력을 되찾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허용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유엔의 강경 대응에 그바그보는 놀라고 격분했다. 그바그보는 이튿날인 18일 "유엔이 심각한 내정 간섭을 하고 있다"며 "평화유지군을 즉각 철수하라"고 맞불을 놓았다.

    개별 국가의 '주권'을 전세계적 보편가치인 '민주주의'나 '인권'보다 상위에 놓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유엔사무총장이었다면 이쯤에서 발을 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기문 총장은 "코트디부아르가 다시 내전 상태로 돌아갈 '실질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유엔평화유지군 철수 요청을 일축했다.

    이듬해(2011년) 1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반기문 총장의 신년기자회견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반기문 총장은 "코트디부아르 민간인들의 희생을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며 "유엔평화유지군과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으로 그바그보는 국제형사재판소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로 임명된 최영진 전 외무차관이 현지에서 프랑스군 장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유엔 코트디부아르 특별대표로 임명된 최영진 전 외무차관이 현지에서 프랑스군 장교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덧붙여 반기문 총장은 코트디부아르 위기에 강경 대응하는 속내의 일면을 내비쳤다. 그는 "그바그보에 대한 유엔의 강경한 태도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며 "코트디부아르 사태를 계기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강력한 민주주의의 신호가 일어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바그보는 발악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자산 동결과 카카오 수출 금수 조치로 경제가 파탄나자, 그바그보의 영향력 하에 있던 아비장에서는 3월초 가정주부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바그보 측은 이 주부 시위대에 기관총 사격을 가해 유혈이 낭자하게끔 만들었다. 시위대가 출발했던 시장에 박격포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두에쿠에에서는 민간인 약 1000명이 학살당했다. 라이베리아로 피신한 난민은 13만 명에 이르렀다. 더 이상은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반기문 총장은 3월 30일 안보리를 소집했다. 안보리는 "그바그보의 중화기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이 모든 조치를 취해도 좋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반기문 총장은 직후 미국 의회를 방문해 "그바그보가 품위 있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했다.

    '마지막 경고'를 묵살한 그바그보를 상대로 반기문 총장은 4월 4일, 유엔평화유지군의 군사 행동을 지시했다. 프랑스군은 대통령궁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헬기와 미사일, 로켓 등이 동원돼 그바그보 측의 장갑차와 막사 무력화에 나섰다.

    그바그보 측은 유엔평화유지군 사령부에 대한 저격으로 대응했다. 반기문 총장으로부터 "실패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는 엄명을 받았던 최영진 특별대표는 지하벙커 생활을 시작했다. 그바그보 측에서 단전·단수를 단행하자, 전투식량으로 매 끼니를 때웠다. 그바그보 측에서 발사한 저격총탄이 섀시를 뚫고 들어와 반대쪽 벽면의 지도에 박히기도 했다.

    작전 개시 일주일 만인 11일, 프랑스군이 그바그보의 신병을 확보했다. 반기문 총장은 "로랑 그바그보의 체포는 수 개월간 지속된 불필요한 분쟁의 종말"이라며 "유엔은 코트디부아르의 안정을 위해 모든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반색하는 성명을 즉각 발표했다.

    1차 내전처럼 온 국토를 '생지옥'으로 바꿔놓을 뻔한 위기는 반기문 총장의 단호한 리더십으로 4개월 만에 수습됐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반기문 총장은 2011년 5월 21일 열린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취임식 초청을 수락했다. 2007년 유엔사무총장 취임 이후 첫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었다.

    유엔 회원국은 192개국에 달한다. 국가원수나 정부수반 취임식을 일일이 참석하려다보면 업무를 수행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반기문 총장은 2007년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특정 국가의 대통령·총리의 취임식에 참석했던 적이 없다. 그러한 그가 원칙을 깨고 우아타라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기로 한 이유를 추론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프리카에서는 이 해 18개국에서 일제히 대선이 치러졌다. 최영진 특별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했는데도 버티던 그바그보가 체포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신병이 인도됐다"며 "선거를 앞둔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자들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전의 위기를 무사히 넘긴 코트디부아르는 회복된 민주주의 하에서 경제 재건에 전념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드록바의 입장에서는 반기문 총장에게 절을 해도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을 내전으로 인한 파탄의 위기 속에서 구해내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반기문 총장이 유독 국내에서는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국민들이 뿌리는 꽃비를 맞으면서 카퍼레이드로 귀국해도 부족할 마당인데, '귀국 환영대회'를 알리는 충북 충주의 현수막은 강제 철거를 당했다. 친문(친문재인) 성향 극렬 지지자들이 불법 게시물이라며 집요하게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세계시민 중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존경을 받을만한, 감사를 받을만한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복음서에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2일 반기문 총장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우리 국민들이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으로부터 파생되는 편향적인 시각을 잊고, 진심으로 지난 10년간 국제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반기문 총장의 노력을 순수한 마음으로 평가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