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만을 위해 일할 생각 없다"지만… 지역민 "우리만 대통령 못 내서 뒤처져"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배우자 유순택 여사 내외가 14일 오전 충북 음성 행치마을에서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음성(충북)=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배우자 유순택 여사 내외가 14일 오전 충북 음성 행치마을에서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음성(충북)=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각별한 고향 사랑을 참지 못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진솔한 모습에 충청 민심은 어떻게 대답할까.

    반기문 전 총장은 14일 오전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 행치마을에서 열린 음성군민 환영회에 참석해 "추운 날씨지만 11만 음성군민 여러분의 따뜻한 환영에 눈 녹듯 마음이 녹는다"며 "지난 10년간 쌓인 피로가 싹 가신다"고 '고향 사랑'을 피력했다.

    이어 "여기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묻힐 곳"이라며 "역시 고향이 제일 좋다, 고향이!"라고 말할 때에는 절정의 한파 속에서 오랫동안 반기문 전 총장을 기다린 500여 명의 청중이 저절로 박수를 쏟아냈다.

    그는 "음성군민과 충주시민, 대한민국 국민, 더 넓게는 세계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고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하겠다"며 "이러한 노력은 음성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내가 앞장서겠다"고 고향의 향우들 앞에서 간접적으로 대권 도전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오후 충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충주시민 환영회에서도 반기문 전 총장은 "21만 충주시민 여러분이 2006년 10월 28일 공설운동장에서 대대적인 환송 행사를 해줬다"며 "유엔의 아들로 갔다가 이제 10년이 지나서 다시 충주의 아들로 돌아왔다"고, 날짜까지 정확히 거론해가며 충주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환영에) 정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다"며 "뭐라고 많이 생각을 해왔는데, 이 자리에 서니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감동을 나타냈다.

    이처럼 각별한 '고향 사랑'을 드러낸 것은 정치권 안팎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지적이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이 '충청권 맹주'의 이미지에 갇힐 것을 우려해, 고향 방문에서 의례적인 수준의 감사 표현이 있을 것으로 점쳐왔다.

    하지만 이날 반기문 전 총장은 자신의 '고향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환영회에 모인 지역민들의 감격을 이끌어냈다. 음성에서는 한 지역민이 단상으로 뛰어올라 큰절을 올리며 "꼭 큰일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반기문 전 총장 내외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맞절을 하게끔 한 해프닝이었다.

    충주에서도 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 2000여 명의 환영 인파는 태극기를 휘날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10년 만에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의 감동 표현에 열렬히 반응했다.

    물론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고향 방문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시선을 경계했다.

    음성 꽃동네에서 취재진과 만난 반기문 전 총장은 "충청대망론이라고 하는데, 충청도에서 자라고 태어났지만 충청만을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며 "음성에 계신 분과 충청에 계신 분들도 세계시민의 한 사람인데, 우리 모두 고향색이라든가 이런 것에서 벗어나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으되, 현실정치에서 충청대망론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배우자 유순택 여사 내외가 14일 오후 충주시민 환영회가 거행된 충북 충주실내체육관으로 들어서는 가운데, 2000여 명의 인파가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배우자 유순택 여사 내외가 14일 오후 충주시민 환영회가 거행된 충북 충주실내체육관으로 들어서는 가운데, 2000여 명의 인파가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충주(충북)=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당장 반기문 전 총장은 이날 음성에서 선친 묘역에 성묘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외삼촌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현지에는 광주 반씨 집성촌이 있고, 선영이 있다.

    말그대로 반기문 전 총장이 '태어나고 묻힐 곳'이다. 정치공학적으로 일부러 활용하려 하지 않더라도, 충청이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전날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대전·세종·충청 권역에서 반기문 전 총장은 39%의 지지를 얻어 27%에 그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눌렀다.

    전국 권역 중에서 반기문 전 총장이 문재인 전 대표를 앞선 곳은 충청 권역이 유일하다.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처럼 반기문 전 총장이 이미 고향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앞서고 있지만, 아직은 추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표현한 애틋한 '고향 사랑'에 충청 민심이 반응해 움직일지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역민들도 반기문 전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주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음성 택시기사 박모 씨는 이날 오전 음성공용버스터미널에서 반기문 전 총장의 고향인 행치마을로 향하는 도중 "(반기문 전 총장 환영) 행사는 몇 시부터 하느냐" "총장은 왔느냐"고 연신 물으며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박 씨는 충청권 민심이 경상·전라 등 타 권역과는 달리 특정 정치인을 화끈하게 밀어주는 것이 없고 다소 점잖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표가 구미에서 봉변을 당했다거나, 유승민 의원이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다거나, 또 누가 대학에 가서 학생들의 항의를 받았다거나 하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와는 다르다는 걸 요즘 느낀다"며 "여기는 반기문 총장 고향이지만 누가 오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부해서 고시 치는 것처럼 혼자 열심히 잘해서 되는 일은 아니니까…"라고 반기문 전 총장의 대권 가도를 신중히 점치던 박 씨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야 비로소 "고향에서는 무조건 (대선 출마) 환영"이라며 "잘 돼야 할텐데… 잘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다른 음성 택시기사 백모 씨도 행치마을에서 음성역으로 향하는 도중에 "(반기문 전 총장이) 선산도 들렀다 갔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며 "선산이 저기고, 여기가 반씨 집성촌인데, 아직도 (반기문) 총장의 6촌이 살고 있다"고 '반기문 주변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백 씨 역시 "충청도에서는 (반기문 전 총장을) 선호들을 다 하지만 우리만 선호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다가, 차량이 음성역 앞에 멈춘 다음에야 "우리 (충청도)만 대통령을 못 내서 이렇게 지역 발전이 뒤처진 것 아니냐"며 "여기 음성역에 하루에 열차가 몇 대 서지도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반기문 전 총장 지지 의사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