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변호사 “제재 가능성 배제 못해, 관할권도 문제 안 돼”
  •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대가성 특혜지원 의혹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최순실씨 일가에 대한 대가성 특혜지원 의혹 등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앞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430억원대 뇌물 및  횡령 등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그룹의 미래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1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참석했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이 재판에 참석한 뒤 다시 특검 사무실로 돌아와 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대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때 이재용 부회장이 실질심사를 마친 뒤 곧바로 서울구치로소 이동할 것이란 말도 나왔지만, 대기 장소가 특검으로 변경된 것.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전망은 안개속이다. 법원 소식에 밝은 복수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기각 가능성을 예견하는 의견도 적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증뢰죄’ 피의자에 대한 법원의 영장 발부율이 10%도 안 되고, 특검의 범죄 혐의 소명이나 법리 구성이 조금 부족하지 않느냐는 것이 그 근거다.

    반면, ‘디테일’한 측면에서의 법리적 판단을 떠나, 큰 틀에서 법원이 여론의 압박과 부담을 떨쳐 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법원의 심사결과에 따라 서초동 삼성타운을 휘감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더 짙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 세계 7위 브랜드 삼성의 글로벌 마케팅이 거대한 암초를 만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삼성 전체 매출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시장에서의 고전이다.

    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영장 청구는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을 적용, 삼성을 ‘글로벌 부패기업’으로 낙인찍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 SEC에 경영정보를 공시해야 하는 기업 또는 그 자회사다.

    이 법의 목적은,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하거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공정경쟁의 원칙을 위반한 기업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데 있다.

    FCPA의 제재 권한은 미국 법무부와 SEC가 가진다. 부패기업으로 지정을 받게 되면, 해당 기업은 최대 200만 달러, 개인의 경우 최장 5년의 징역과 최대 1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문제는 벌금이나 징역형이 아니다. 해당 기업은 수출면허 박탈, 미국 내 공공사업 입찰 참여 금지, 증권거래정지 등의 고강도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재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퇴출’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외국 기업들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위 법률이 정한 벌금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막대한 합의금을 미국 정부에 내는 출혈을 감수하기도 한다.

    독일 전자기업 지멘스는 중국과 러시아, 베네수엘라, 멕시코, 이스라엘 등에서 공무원들에게 14억 달러의 뇌물을 준 사실이 들통 나, 해외부패방지법 적용 대상이 됐다.

    지멘스는 2008년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미국 법무부에 4억5천만 달러, SEC에 3억5천만 달러 등 모두 8억 달러를 합의금으로 냈다. 프랑스 알스톰도 2014년 7억7000만달러의 합의금을 지출했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430억원대 뇌물공여다. 지멘스의 예를 기준으로 한다면, 최악의 경우 삼성도 수천만 달러의 합의금을 미국 정부에 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마음만 먹는다면 제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 사정을 잘 아는 국제로펌 전문가들의 말이다. 2008년 해외부패방지법 개정으로 관할권이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 미국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보호무역 색채가 강한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사실상 삼성을 ‘인질’로 삼아, FTA 재협상 등을 압박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가 글로벌 시장에서 反삼성 진영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사한 법률을 시행 중인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삼성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삼성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들의 브랜드 이미지와 국가신인도가 크게 실추될 수 있다.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면서 소송까지 벌인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이번 사건을 빌미로 “한국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해당 국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로, 대상국 정부가 투자 당시의 합의를 불이행한 경우, 투자자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 사진 뉴시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 사진 뉴시스


    기업인수합병(M&A) 및 외국인·해외투자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송근존 미국 변호사는, 삼성에 대한 미국정부의 해외부패방지법 적용 가능성에 대해 “시비를 걸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근존 변호사는 “미국 정부가 FCPA(해외부패방지법)를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jurisdiction(관할권)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송 변호사는 “삼성이 FCPA 적용 대상이 되면 미국정부 및 공기업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는 등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송 변호사는 “무엇보다 큰 것은 브랜드 타격”이라며, “이미 CNN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 가능성을 계속 보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