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탄핵으로 의회 역할 커져…개헌 등 정치적 논의 때 협조 위한 행보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심재철·박주선 부의장을 예방했다.

    원외에서 개헌을 이끄는 한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 반 전 총장이 정세균 의장과 만나면서 국회와의 대화창구를 만들어나가는 모양새다.

    20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반 전 총장은 "나는 의회민주주의를 믿는 사람"이라면서 "대통령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특히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야말로 국민의 의견을 직접 듣는 기관"이라며 "국민이 현 정치 상황에 많이 걱정하는 것을 듣고 배웠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거제·부산·김해·진도·광주·여수· 대구·대전 등 지방을 돌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민생탐방'을 한 바 있다. 청취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 등과 공조가 필요하지만,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의회의 협조 또한 절실해진 상태다.

    특히 현재 국회는 대선을 앞두고 분권형 개헌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순실 사태'에서 본 대통령제의 막강한 권한을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인 김관용 경북도지사마저 "현재 국민의 76%가 개헌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국회의원 200여 명도 개헌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실정이다.

    그러나 개헌 절차는 만만치 않다. 국회가 개헌특위를 설치하고 개헌안을 만든 뒤 본회의서 의결하고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국회의원 수는 200명이고 전 국민 절반의 동의도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100석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문세력의 반대로 개헌이 무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이 이에 의회민주주의에 관한 관심을 표하면서 정 의장에 의중을 파악해보려 했다는 해석이다. 특히 반 전 총장은 같은 자리에서 "제가 유엔 사무총장을 할 때 국제 의회 연맹(IPU)에도 몇 번 참석하는 등 세계 각국을 방문할 때 꼭 국회의장을 만났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정세균 의장은 "외교야 (반 전) 총장께 배우면서 해야한다"면서 "국민도 같은 생각일 텐데, 민생이 어렵고 편안한 게 없어 반 총장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정 의장은 "4당 체제가 된 상황이므로 조정자의 역할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협치를 강조했다.

    조정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 발 물러난 것으로, 반 전 총장의 뜻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범친노로, 정치적 성향에서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 가장 가깝다. 개헌을 하면 권력을 나눠야 하는데,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한 명인 문 전 대표로서는 이에 응할 이유가 없어서다. 정 의장 역시 문 전 대표와 입장을 비슷하게 가져갔다는 설명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한 다음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과도 짧게 만났다.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 소속이자 기자 출신인 심재철 국회부의장에게는 "해외에서는 이렇게 많은 기자가 와서 취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최근 언론에서 자신을 향한 논란이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털어놨다.

    국민의당 소속이자 검사 출신인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는 "우리가 너무 국내 문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더 많은 국제적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층 출입구 대신 1층 출입구로 국회에 진입했다. 국회의원 등이 레드카펫을 밟으면서 2층 출입구로 출입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 전 총장의 이날 선택 역시 겸손을 강조한 행보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