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어젠다 선점 "창조경제 갈아엎을 생각 말자…전시행정 개선에 노력"
  •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일 서울 강남에 있는 디캠프를 방문, 스타트업 사업자들과 만났다. 오른쪽으로 같은 당 김세연 의원이 보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일 서울 강남에 있는 디캠프를 방문, 스타트업 사업자들과 만났다. 오른쪽으로 같은 당 김세연 의원이 보인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이 충격에 휩싸였지만,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담담하게 움직였다.

    유승민 의원은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디캠프를 방문해 스타트업 창업자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규제 완화'를 꺼내 들었다. 지난 25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규제를 대폭 줄이면 기업이 신이 나서 일을 할 것"이라고 언급한 내용과 흡사하다.

    그는 "이날 나온 현장의 애로사항을 담아 이번 주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정책공약으로 발표하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창업분야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로 바꿔 달라는 것"이라면서 "정부와 정치 지도자가 상당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유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너무 무시하고 다 갈아엎을 생각만 하지는 말자"면서 "다음 정부에서 건질 것은 건지고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유 의원이 '전시행정' 정도를 꼬집으면서 규제 완화와 창조경제 혁신센터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유 의원은 "창업지역이 거점별로 필요할 테니, 주도하는 사람은 창업하시는 분들과 금융당국, 투자·융자하시는 분들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는 경제 이슈를 선점하고 반 전 총장이 차지하고 있던 보수 유권자를 끌어안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이 지난 25일 관훈토론회를 통해 목소리를 높인 내용 중 하나인 '규제 완화'를 통해 보수 유권자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제스쳐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전까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 왔다.

  •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스타트업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스타트업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차라리 잘됐다" 바른정당 분위기 속 드러난 劉의 차분한 행보

    이같은 유승민 의원의 행보에는 "차라리 잘됐다"고 하는 바른정당의 분위기가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전날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언뜻 보면 보수의 통합을 어렵게 하지만, 차라리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확보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바른정당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전 대표의 재출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새로 움직이려는 조짐을 보이는 등 되레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이들의 자신감은 야권을 비롯한 정치권 전반이 배경이 되고 있다.

    우선 바른정당은 새누리당에 비해 이른바 잠룡으로 분류되는 대선주자가 많은 상황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라는 강력한 범보수 후보가 없어지면서 보수진영은 이른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바른정당 대선후보 경선의 흥행을 고려하면 반 전 총장이 불출마한 것이 차라리 낫다는 관측이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잃으면서 유력한 대권 주자가 없어진 상태다. 전임 원내대표였던 새누리당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SNS에 "우리 정치를 바꿀 소중한 인적 자원을 잃어버렸다"면서 "진영을 막론하고 소통하려 했던 그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맞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개탄했다.

    정 전 원내대표는 "그의 실패가 보수 궤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또한, 문재인 전 대표의 최근 지지율 역시 바른정당에게는 고무될만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정권교체 프레임이 깨진 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대안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택한 탓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꼭 나쁜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같은 자신감은 연대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유승민 의원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 의원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면서 "조기대선이 되더라도 몇번의 고비가 있을 것이다. 지지율이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기자들이)새누리당은 후보를 못낼 것 같은데 질문을 하신다"면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나온다면 (단일화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국민의당에 대해서도 "민주당을 이길 수 있는 범보수 단일화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서 "박지원 의원님처럼 대북관이나 안보관이 불안한 후보도 있고, 안철수 의원처럼 평소에 안보는 보수·민생은 진보라고 외치는 분도 있다"고 평했다.

  •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이날 방문에서 지난 11월에 방문했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는 경제전문가로서 친기업적 이미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이날 방문에서 지난 11월에 방문했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는 경제전문가로서 친기업적 이미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따뜻한 보수 외친 劉, 文과 어디서 다를까…과감한 규제개혁 시사

    그간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 유승민 의원의 창업 관련 정책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어디에서 다를까.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유 의원은 이날 나온 다음의 사례를 참고해 정책 공약에 반영키로 했다.

    #1.
    4명이 창업한 유전자 관련 한 회사는 최근 미국에서 자회사를 여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국에서는 곳곳에서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전자 지도인 '게놈'을 기반으로 하는 '희귀 질환 진단' 서비스와 '개인 게놈 플랫폼' 사업을 아이템으로 잡았지만, 한국에서 진단은 병원을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병원을 통해서 사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을 통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져 사업하기 어렵다고 판단, 결국 이 회사는 발길을 돌려 미국에서 테스트마켓을 열기로 했다.

    한국이 규제에 막힌 사이 미국은 같은 시장이 2007년에 열렸고, 특히 풍부한 지원 속에 중국에 대규모 게놈 해독공장을 만들고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결제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천송이코트'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결제문제 하나 때문에라도 미국에 자회사를 설립할까 생각해봤다고 토로했다. "자신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회사가 많다"고도 덧붙였다.

    #2.
    핀테크 스타트업 사업을 둘러싼 커다란 규제 하나는 작년 10월에 겨우 풀렸다고 했다. 이전에는 금융정보를 클라우드에서 서비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최근에야 풀렸다는 것이다.

    큰돈을 들여 직접 서버 시설을 갖춰야만 사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는 셈이었다.

    "이제는 정말 사업을 잘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바로 풀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내 알게 됐다고 했다. 시중 은행권들이 그간의 관례를 계속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규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3.
    비트코인을 통해 송금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한 회사는 기재부와 형사 소송을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보통신위원회와 금융위원회에서 상까지 받았던 회사인데, 각 부서에 따라 해석이 갈리면서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애매한 그림자 규제가 원인으로 꼽혔다. 법 조항 자체는 위법이라 하기 어렵지만, 유권해석을 요구하면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되지만 권고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권고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