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승조가 뮤지컬 '더 데빌'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감과 반가움이 컸다. 2014년 '구텐버그' 이후 무대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이기에 2년이 넘는 시간이 큰 공백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이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긴 공백도 아니다. 그간 드라마 '신의 퀴즈', '라이어 게임', '밤을 걷는 선비', '사위의 여자' 등 브라운관에서 꾸준히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난 드라마를 통해 색다른 악역을 소화한 장승조는 '더 데빌'에서 존 파우스트를 파멸로 이끄는 악의 상징 'X-블랙'으로 변신한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과 섬세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그는 무대를 떠나있던 2년여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보다 깊어진 연기 내공으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한 호흡 가다듬고 신인의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무대에 서게 될 장승조를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더 데빌' 장승조

    2014년 초연된 '더 데빌'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를 오마주한 창작 록 뮤지컬로, 선(善)과 악(惡) 인간의 선택으로 인한 파멸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블랙 먼데이로 모든 걸 잃은 존 파우스트 앞에 성공과 재기를 미끼로 그를 유혹하는 X-Black이 등장하며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를 담는다.

    "공연을 정말 하고 싶었어요. '더 데빌'을 준비하면서 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무대로 올려질까,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긴장되면서도 설레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요? 초연은 보지 못했지만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또, 이지나 연출님과 다시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더데빌'은 초연 당시 기존의 공연 문법을 파괴한 새로운 무대로 '파격적인 창작극 vs 불친절하면서 난해한 작품'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캐릭터의 재구성과 스토리 변화를 통해 3인극에서 4인극으로 바꾼 것이다.

    초연 때 X라는 하나의 캐릭터가 선과 악을 표현했다면 재연에서는 처음부터 White와 Black, 2명의 X가 등장한다. 의상과 소품을 통해 캐릭터의 변화를 꾀했던 이전의 방식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캐릭터를 활용해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인다.

    "처음 대본을 읽자마자 어려웠어요. 다행히 연출님을 만나서 그런 부분은 해결했고, 공동작업이다보니 출연 배우들 모두가 의견을 나누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어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고 해서 두려움은 없어요. 지금은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보여줄까'하는 숙제를 해결하는 시간이에요."

  • # 배우 장승조

    배우는 필연적으로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가면을 쓴다. 한 작품이 끝나면 가면을 벗고 한동안 본연의 얼굴로 현실에 적응하며 살다가 다시 새로운 가면을 쓴다. 가면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벗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 2년여 동안 뮤지컬 무대가 아닌, 브라운관으로 자리를 옮겨 드라마를 공략했던 장승조는 전작 SBS 아침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에서 야심남이자 KP그룹의 본부장 최재영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소위 말하는 '나쁜 놈' 악역이었다.

    "예전에는 '한 우물만 파자'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2014년 뮤지컬 '구텐버그'와 드라마 '라이어게임'을 동시에 작업하다보니 심신이 힘들더라고요. 저로 인해 촬영을 기다리는 스태프들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죠. 뭔가 결단이 필요할 것 같아 드라마에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지금은 2년 전과 달리 공연을 하면서 드라마, 영화도 하는 상황이 됐어요. 저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오래 활동하고 싶어요."

    "드라마에 이어 또 악역을 맡았다고 하는데, 작품만으로 봤을 때 단순한 악역이라고 구분 짓기는 힘들어요. X-White에 비해 악역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X-Black은 주인공의 정신세계와 내면을 보여줄 상징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착한 주인공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 # 인간 장승조

    2005년 뮤지컬 '청혼'으로 데뷔한 장승조는 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차근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오며 뮤지컬, 연극,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구텐버그'를 마지막으로 무대 휴식기에 들었던 그가 2년여 만의 복귀작인 '더 데빌'을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다.

    "연습실 가는 시간이 기다릴 정도로 신나요. 매체에 집중하면서 무대가 그리웠거든요. 오랜만에 연습실 안에서 배우들과 호흡하고 땀 흘리는 시간이 정말 좋아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잘할까' 일적으로 접근하고 몰두했다면, 지금은 이 사람들과 편하고 즐겁게 호흡하고 싶어요."

    "존 파우스트 역의 송용진 형과는 뮤지컬 '셜록홈즈', 연극 '나쁜자석' 등 벌써 여섯 번째 작품을 함께 해요. 같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엔 다른 역이라 그 또한 재미있어요. 고훈정은 JTBC '팬텀싱어'에서 처음 보고 많이 궁금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만나 반가웠어요. 리사 누나는 꼭 같이 무대에 서보고 싶었어요.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리사 누나 때문에 하는 거야'라고 말했다니까요."

    장승조는 스태프들이 놀랄 정도로 바른생활의 사나이다. 자신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신경 쓰는 게 싫다는 그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은 장승조에게 마지막으로 '더 데빌'의 관전 포인트와 2017년 계획을 물었다.

    "무엇보다 '더 데빌'은 음악이 정말 좋기 때문에 내용은 어렵지만 관객들이 극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 계획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는데, 상반기에는 작년에 찍어놓은 JTBC 드라마 '더 패키지'가 방영이 돼요. 그리고 '더 데빌'을 기점으로 조금 내려놓을 줄 알면서 즐기면서 작업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뉴데일리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