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평소 지론과도 배치… 새누리당 "헌재 협박, 블랙코미디"
  •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탄핵 기각시 의원직 총사퇴 입장을 밝힌 뒤 유승민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가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탄핵 기각시 의원직 총사퇴 입장을 밝힌 뒤 유승민 의원을 바라보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바른정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다면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총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새누리당을 향해 탄핵이 인용될 경우, 의원 총사퇴를 할 것을 요구했다.

    탄핵심판 결과에 '의원직을 걸자'는 말인데, 광장에서 세(勢) 대결이 벌어진 지난 주말 직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싸잡아 비판하며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태도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른정당은 탄핵이 기각된다면 의원직 총사퇴로 탄핵을 추진했던 책임을 지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탄핵이 인용된다면 (탄핵에) 반대했던 새누리당 의원들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책임정치 측면에서 의원직 총사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장장 7시간에 걸쳐 진행된 의원·원외위원장 연석총회에서 의결된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바른정당 의원과 원외위원장, 단체장 등은 총 65명인데 이 중 50명이 전날 연석총회에 참석해, 탄핵 기각 시에는 의원직을 총사퇴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에 의원직을 걸자는 말이 된다. 기각 판결이 나오면 바른정당이 모두 그만 둘테니, 인용 판결이 나오면 새누리당이 모두 그만두라는 제안을 던진 셈이다.

    명목상으로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주도했던 것에 결과로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지만, 국민이 직접 선출한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마치 투전(鬪牋)판 밑천으로 쓰듯 던지는 게 적절하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게다가 마치 스포츠토토하듯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을 놓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다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의도야 순수했다손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정치권에서 헌재에 가하는 또 하나의 압박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 내용에 따라 의원직을 던지겠다는 승부수는 정병국 대표의 평소 지론과도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병국 대표는 앞서 지난 10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헌재가 인용을 하든 기각을 하든, 어떤 세력도 이것에 대해 압박해선 안 된다"며 "헌법재판소는 이런저런 것에 흔들리지 말고, 그야말로 법대로, 헌법대로, 법치주의로 헌법의 근본정신을 지켜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새누리당 의원들이 태극기집회 현장에 가서 선동하는 모습도 딱하지만, 야당이 맞불집회를 놓는다고 총동원령을 내리는 것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가 탄핵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 속에서 탄핵이다, 아니다로 자기 주장을 하면서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하는데 앞장서면 누가 과연 이 나라를 책임지겠느냐"고 비판했다.

    이 때의 정병국 대표의 발언은 정론(正論)이었다. 그런데 연석총회의 의결을 당대표로서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일까. '탄핵 기각시 의원직 총사퇴' 운운은 불과 사흘 전에 밝혔던 자신의 생각과는 아무래도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만에 하나 정말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기각 결정이 이뤄진다면 후폭풍이 상당할텐데, 이 때 32명의 의원이 일괄 사퇴를 하면서 '대형 보궐선거' 판의 불씨를 당긴다는 것 자체가, 정병국 대표가 스스로 말한 "이 나라를 책임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전날 바른정당의 연석총회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일부 반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 일부는 의원직 총사퇴 결정이 최근 여야 국회의원들의 태극기집회 및 촛불집회 참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심판하고 있는 헌재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새누리당은 바른정당의 '의원직 올인 승부' 제안을 즉각 일축했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원직 총사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물귀신 작전"이라며 "자기들만 사퇴한다면 모를까, 왜 남한테까지 사퇴하라고 하느냐"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바른정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안타깝다"고 평했다.

    김성원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바른정당은 책임을 가장해 헌재를 협박하고 있다"며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하며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이 바른정치를 표방한다는 것은 블랙코미디"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