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가 大韓民國을 아느냐?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뉴욕에서)

    1945년 해방당시 조선(한국)의 사회현상은 문맹이 80%에다 좀 배웠다는 識者(식자) 층 20% 가운데 80%가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말 그대로 앞으로의 조선은 사회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는 또 어땠는가. 4천여 년을 이어오는 가난은 “밥만 먹여 주십시오.”라는 처절한 限(한)의 시대를 살게 했고, 限은 다시 분노와 증오와 갈등과 원망 속에 불신사회를 만들어 갔다. 

    이런 무지와 가난 속에 주어진 해방은 축복과 함께 재앙이기도 했다.
    남북을 통틀어 80%에 가까운 일반인들은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던, 아니 들어보지 조차 못한 상태에서 몇몇 정치꾼들의 정치적 선동과 정보조작, 진실은폐와 속임수에 걸려 멘탈 붕괴에 빠지고 사회는 극도의 혼돈으로 치달았다. 

    이런 가운데 韓半島(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스탈린의 흉계는 남한사회를 온통 죽음과 공포 분위로 몰아갔고, 가난과 사회불안은 더욱 심해져 건국은커녕 해방의 의미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막장드라마 같은 ‘解放政局(해방정국)’이라는 암흑시대를 연출해냈다. 


양동안 교수의 지적처럼, 해방정국에 있어서 공산세력은 어느 세력보다도 외세의 확고한 지원을 받은 세력이었다. 소련공산당과 북한 노동당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한반도 공산화를 꾀하던 저들은 무장폭동, 살인, 방화, 테러, 파업으로 남한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후의 세계는 신생국들뿐 아니라 기성국가들까지도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의 선택을 강요당하던 말 그대로 국제냉전의 먹구름이 뒤 덮이던 시기였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소련의 야욕인 공산국가를 거부하고 자유 민주국가(대한민국)를 건설하고 새 역사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건국주역들(Founding Fathers)이 바친 피와 눈물과 땀의 가치를 너희들은 알고 있는가? 

북한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알고 있나? 철저하게 계획된 스탈린의 북한 위성국 만들기 전략에 따라 헌법뿐 아니라 가짜 김일성 만들기와 초대 내각까지, 심지어 人共旗(인공기)마저도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한 소련의 위성국이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래서 분에 넘치는 자유와 풍요 속에 명분 없는 분노와 이유 없는 증오로 종북 좌경화 된 우리 젊은이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80인생을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역사의 고난의 짐과 축복의 열매는 같이 지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축복의 열매만 차지하겠다면 고난의 짐은 누가 지고 가나.

아울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 하는 저주를 받는다“고 한 미국의 정체성과 새로운 미국문화를 주창한 조지 산타야나의 경고도 잊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경제수준과 삶의 질은 아프리카 오지 인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정치 경제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새무얼 헌팅턴은 1960년대 초 한국경제와 비슷한 나라로 아프리카의 가나를 예로 든 일이 있다. 하지만 30년 뒤 한국은 세게 14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반면 가나는 제자리에 머문 채 GNP가 한국의 15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가져온 결정적 요인을 헌팅턴은 문화의 차이에서 찾았다. 한국인들의 검약, 근면, 교육, 극기정신 등, 정신적 문화유산의 가치를 가나와의 격차를 벌인 주요인으로 본 것이다. 

소련의 위성국인 북한도 대한민국과 동시대에 태어났고, 같은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다. 출발점에서는 북한이 오히려 남한보다 경제적 조건이 월등히 우세했다. 

하지만 남한은 세계 14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며 삶의 질 세계 17위의 문명국을 이루었다.
 보통사람도 인권을 말하는 세상,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세상, 자유와 풍요가 흐르는 세상을 만들었다. 

반면 북한은 세계를 상대로 구걸하면서도 주민(국민) 300만, 4백만을 굶겨 죽이는 거지집단으로 전락했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동물처럼 죽어가는 인권 사각지대가 됐다. 가족 사이에서조차 서로가 사로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공포 속에 하루를 사는 야만국이 됐다. 이런 곳이 오늘의 북한이다.

이 엄청난 천국과 지옥의 차이, 너희는 그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류의 양심에 따라 사람 중심의 나라를 만들었느냐, 악마 중심의 나라를 만들었느냐,
도덕적 사회냐, 비도덕적 사회냐, 다시 말해 헌팅턴이 지적한 정신적 문화유산이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는가? 

광화문 촛불 속에 등장한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는 끔찍한 외침,
마치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현장을 보는 듯 공포감마저 돈다. 그 어린 학생들이
‘혁명정부 세워내자’는 구호에 얼마나 무서운 의미가 담겨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라는 청소년단체는 전 현직 전교조 교사들이 조종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정의와 진실 편에 선다는 하늘의 뜻을 왜 저들만 모르는 것일까.

이제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살 건가, 18세기 노예처럼 사는 세상에 살 건가? 다시 말해 대한민국 식으로 살 건가, 북한식으로 살 건가를 결정지어야 하는 중대한 고비에 서있다.

거짓말과 사기가 인류최대의 적인 것처럼, 대한민국 최대의 적은 민노총과 전교조다.
그들은 끝까지 북한식으로 살기를 강요한다. 저들은 대중을 조종하는 최고의 무기는 ‘증오와
분노’라는 괴벨스의 선동전술을 교본삼아 대중을 선동하고 민중혁명의 불쏘시개로 삼는다.

어린 학생들 손에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는 끔찍한 현수막을 들려준 세력이 누구겠는가? 대한민국 식으로 살기 원하는 세력은 결코 아닐 것, 그러면 북한식으로 살기 원하는 세력 아니겠는가.

문제는 대한민국을 바로 알리는 일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종북 좌경세력에 의해 왜곡 날조된 역사교육을 바로 잡는 일이다. 어린 학생들, 젊은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책임은 악마의 얼굴을 보고도 침묵하는 어른들에게 있다.

태극기 민심은 악마를 악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단결, 도덕성, 용기, 결단, 의지 등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라는 귀중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싸울 의지가 없는 비겁한 국민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는 것이 역사’라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언제나 정의와 사랑 편에 서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역사”라는 신념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는 언제나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국민에게 발전과 영광을 안겨준다”는 신념으로 조국근대화의 길을 열어 오늘의 영광을 가져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써 이루어 놓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 화’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종북 좌경화 역사교육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광화문 촛불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결과는 빤한 것, 중고생들에 의해 혁명정부가 세워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너희가 대한민국을 아느냐?”고 다시 한 번 외쳐보자.
대한민국을 제대로 알리는 데 양심 있는 어른들이 나서자.
대한민국을 바로 알면 촛불은 제풀에 사그라지고, 북한을 바로 알리면 종북 좌경 세력은
태극기 민심에 무릎을 꿇게 마련이다.

오늘의 국가혼란은 ‘바른 역사교육 부재’에 있다.
바른 역사 교육에 국가의 운명을 걸 때다.
탄핵기각을 부르짖는 그 열정과 용기로 ‘바른 역사교육’을 외치자.
대한민국이 살 길 ‘바른 역사교육’에 있다.

“너희가 대한민국을 아느냐?”고 다시 한 번 크게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