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그뜨와 우리의 당황과 놀라움을 수습한 것은 몽골 통역이었다. 우리 뒤를 반사적으로 쫓아왔던 몽골 통역이 무대 위의 난처한 상황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사태를 수습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우리 가운데 그녀와 가장 가까이 있던 나를 불렀고, '사랑해'라는 노래를 할 줄 아냐고 물었고, 내가 한국 사람치고 '사랑해'라는 노래 모를 사람 없다고, 그 때 부르지 않았느냐고 하자 알았다고 하면서 지만이와 성규와 오르그뜨 곁으로 가서 나란히 서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잡고 우리와 오르그뜨를 소개했다.

    오르그뜨는 자기네 몽골예술단 단원이고, 우리는 특별초빙된 한국인 아카펠러 트리오 라고. 자기네 예술단원과 한국인 아카펠러 트리오가 함께 '사랑해'라는 한국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몽골 가수와 한국 가수가 함께 노래하는 특별한 무대이니 박수도 특별한 박수를 부탁한다고….

    뒤의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음악밴드에서 '사랑해'의 반주가 나오고, 이윽고 오르그뜨가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도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만이와 성규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는 입만 뻥끗거렸을 뿐,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해'라는 노래를 모른다거나, 노래를 못 불러서가 아니었다. 내 어렸을 때의 꿈은 가수였다. 어떻게 살다보니까 어렸을 때의 꿈과는 전혀 엉뚱한, 다른 길로 접어들어서 그렇지, 어렸을 때 가수가 꿈이었던 나는 곧잘 노래를 했다. 나를 칭찬해주는데 인색한 와이프도, 내 노래 실력 만큼은 인정해주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면 잘 불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가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은, 두려워서였다. 이렇게 많은 청중들 앞에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른다는 게 나는 웬지 낯설고, 기이했다. 나는 그 낯섦과 기이함을 극복할 수 없었고,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누가 가르쳐준 느낌이 아니고, 내가 나에게 부여한 느낌 같았지만, 나는 그 느낌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자승자박은 그 어떤 압박보다 강한 것일 수 있었다.

    오르그뜨는 정말이지 노래를 잘했다. 근자에 내가 들은 노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느낌이었다. 근자에 내가 들은 노래라면, 예산의 그 분수대 앞에서 유혹하는 꽃뱀들의 노래소리였다. 꽃뱀들의 노랫소리가 천상의 목소리였다면, 오르그뜨의 목소리는 철두철미 인간의 목소리였다. 인간의 목소리가 천상의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일인가. 때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노래를 듣는 대상이 인간인 경우라면. 모든 존재는 다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거니까. 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있던가.

    나는 오르그뜨, 그러니까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줄은 몰랐었다. 보기드문 미인이요 젊었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지만, 노래를 잘 한다는 얘기는 집안의 누구로부터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오르그뜨라면….

    나는 성규가 장가를 잘 들었다는 생각이었다. 아, 이 생각은 전에 이미 했던 생각이었다. 이제 든 생각은, 성규가 왜 굳이 도망간 자기 아내를 찾을려고 애를 쓰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아내라면, 기필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오르그뜨의 노래가 끝나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 몰라도, 오르그뜨의 노래를 듣는 동안 만큼은 나는 꼭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노래가 끝났다. 나는 오르그뜨에게 앵콜을 청하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내 마음의 발로였다.

    그러나 나는 굳이 앵콜을 청할 필요가 없었다.

    청중들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고, 이어서 여기저기서 앵콜 앵콜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청중들은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당연히 오르그뜨의 노래에 감동을 받은 거였다. 지만이와 성규의 노래에 감동을 받았을 리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청중들의 박수소리와 앵콜 소리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한 곡조 더 서비스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듯 했다.

    몽골 통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한 곡조 더 청해 듣기로 하지요. 원래 다음 순서가 준비되어 있어 앵콜은 받을 수 없는 거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국 아카펠라 트리오와 혼성을 하는 날이니 앵콜을 받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헌데, 어떤 노래가 좋을까요."

    어떤 노래가 좋을까요 하는 몽골 통역의 물음이 청중들에게 하는 건지 무대 위의 우리에게 하는 건지 헷깔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헷깔렸는데, 성규는 그게 우리에게 묻는 거라고 이해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성규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극장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저는 몽골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여기 지금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몽골예술단원들처럼 몽골인이지요. 제 아내는 어여쁘고 마음씨 곱고 노래도 잘 합니다. 저는 제 아내를 만난 게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 이보다 더 큰 행운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행운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제 마음 속 깊은 바램입니다. 헌데, 그런 제 아내가 얼마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을 나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무런 메시지도,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간 거니까요. 저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고, 아내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매우 슬프고, 그래서 슬픈 노래를 한 곡 부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갑자기 성규의 말이 끊겼고, 극장 안이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러나 잠시였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곧이어서 전체 청중이 박수를 치는 듯 극장 안이 박수소리로 꽉 차버렸다. 어디선가 괜찮습니다 라는 남자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제가 아내에게 가르쳐주고, 아내와 함께 불렀던 노래입니다. 죽은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입니다."

    성규가 노래를 하려는데, 몽골 통역의 목소리가 성급히 성규를 제지했다.

    "아니, 그 노래는 우리 밴드가 알 수 없는 노래일 텐데요. 밴드 없이 노래가 가능하시겠나요."

    성규가 괜찮다고 하는데, 성규의 괜찮다는 코멘트를 이번에는 오르그뜨가 잘랐다.

    "제가 그 노래를 아니까 제가 반주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어눌하게 말하고는 오르그뜨가 뒤의 일렬로 늘어선 밴드의 전자피아노 앞으로 가 원래 연주자와 잠시 자리를 교체했다.

    오르그뜨의 전자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르그뜨는 노래만 잘 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악기도 잘 다루는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여자였다. 하긴 몽골예술단의 음악단원인 듯 하니, 노래나 악기를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을 건 당연한 일일 듯 했다. 그렇지 않다면 몽골예술단원이 되지 못하였을 테니까.

    헌데, 오르그뜨가 진짜 몽골예술단원의 일원이 맡기는 맡는단 말인가 이건 정말이지 금시초문이고 의외가 아니냐 말이다….

    반주에 맞춰, 성규의 노래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에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도 낯설고 멀기만 한지
    저 여린 가지 사이로
    혼자인 날 느낄 때
    이렇게 아픈 그대 기억이 날까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
    내 하나뿐인 그대 오직 그대만이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

    성규의 노래는 슬펐다. 애절했다. 김현식의 노래가 원래 슬퍼서라기 보다, 성규의 마음이 그렇게 슬퍼서인 듯 했다.

    슬픈 노래는 감동적이었다. 나는 성규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 감동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성규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나만이 따라부른 게 아니었다. 지만이도 어느 순간부터 따라부르고 있었다 지만이도 성규의 노래에서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

    성규의 노래에서 감동을 먹은 건 나와 지만이만이 아닌 것 같았다. 청중들도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 객석 여기저기서 성규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따라부르는 청중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두 사람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지더니, 급기야는 청중들 전체가 따라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청중들 전체가 따라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 과장이겠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렇게 들려오고,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왔다. 청중들 전체가 따라부르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따라부르는 사람이 따라 안 부르는 사람보다 두 세 배는 더 많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감격이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감동해 객석의 청중들이 모두 우리 노래를 따라부르다니. 물론,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고 성규가 부르는 노래였지만. 그러나 적어도 나와 지만이도 성규와 같은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감격을 받았고,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고, 어린시절의 꿈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가, 싶기도 했다. 어린시절의 꿈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정말이지 이건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꿈만 같은 일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갑자기 끊겨버렸다.

    갑자기 반주소리가 뚝 멈추었다. 반주소리가 뚝 멈추는 바람에 우리도 우리의 노래를 그만 멈추어야 했다. 청중들의 노래소리도 멈추었다.

    당연히 무슨 일인가 하고 밴드가 있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반주를 멈춘 오르그뜨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무대 뒤로 황급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오르그뜨는 아무래도 흐느끼고 있는 듯 싶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스피커를 타고 성규의 목소리가 들려나오고 있었다.

    "노래를 끝까지 못들려 드릴 것 같습니다. 반주자가 갑자기 반주를 끊고 달아나버리는 바람에 부득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로써는 끝까지 들려드리고 싶었는데…. 실은, 지금 반주를 하다 말고 도망가 버린 반주자가 제 도망간 아내입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예정에도 없는 무대에 서게 되고 초청가수가 되게 된 게, 도망간 제 아내를 찾으러 온 덕분입니다. 이제 제 아내를 찾았으니 그만 노래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인 것 같으니까요. 거듭 죄송합니다."

    말을 끝낸 성규가 돌아섰고, 무대 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지만이도 돌아섰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성규의 뒤를 따랐다.

    갑자기 객석쪽이 떠들썩하니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의 소리치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여러 소리가 혼란스럽게 겹쳐 잘 들려오지 않았지만, 어떤 소리는 용케도 살아남아 선명하게 들려왔다.

    "힘내라 힘."
    "아내는 남편에게로 돌아가라."
    "몽골 아내는 예쁘다. 예쁜 몽골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라."
    "…"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청중들이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고, 마치 운동장에서 운동선수들을 응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흔들어대면서 소리치고들 있었다. 도대체 누구를 응원하느라 청중들이 저러는지 순간 낯설고 괴이쩍었다. 그러나 낯설고 괴이쩍었지만, 기분은 무척 좋고 흥분되었다.

    오르그뜨는 대기실의 한 귀퉁이 의자에 앉아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오르그뜨의 앞에 있는 벽면 거울이 오르그뜨에게로 다가가는 성규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 뒤로 나와 지만이의 모습도 비춰지고 있었다.

    울고 있는 오르그뜨의 곁으로 다가간 성규는, 한동안 장승처럼 서 있었다.

    장승처럼 서 있는 성규의 곁으로 나와 지만이도 다가갔고, 역시 장승처럼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오르그뜨, 날 좀 봐 봐."

    한동안 장승처럼 물끄러미 서 있던 성규가 오르그뜨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성규의 말에 오르그뜨는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탁자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 울음이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왜 도망쳤는지는 묻지 않겠어. 다 나한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얘기를 해 줘야지. 그래야 내가 고칠 수가 있잖아. 이런 식으로 말도 않고 도망가 버리면…"

    성규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성규도 감정이 좀 복받치는 모양이었다. 오르그뜨를 찾다 찾다 결국 못 찾고 전혀 에기치도 못한 장소에서 오르그뜨를 만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오르그뜨를 찾아서가 아니라 케이사모란 놈을 찾아서였으니까.

    나도 감정이 좀 시나브로 했다. 오르그뜨를 찾은 것은 잘 된 일이었고, 그게 우리의 궁극적 목표이긴 했지만, 케이사모를 찾으러 온 마당에서 오르그뜨를 만나게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좀 엉뚱하긴 한 일이었다. 하여간 요즈음 우리에게는, 그러니까 우리가 오르그뜨를 찾자 하고 뭉친 이후로는 엉뚱한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오르그뜨, 우린 다시 시작해야 해. 이렇게 살아보지도 않고 끝낸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야. 내가 몽골에서 오르그뜨 당신을 데려올 때 이렇게 쉽사리 헤어지자고 데려온 게 아니었어. 난 내 인생이 이렇게 무너지게 놓아둘 수는 없어. 잘못이 있다면, 내가 고칠게. 기필코 말이야."

    성규는 말했고, 오르그뜨는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울기만 할 뿐이었다.

    오르그뜨가 아무 반응이 없이 여전히 울고만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순간 의구심이 일어나고 말았다. 오르그뜨가 성규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오르그뜨는 몽골 여자였고, 한국에 온 지 꽤 되었다 하더라도, 한국말을 다 알아듣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전혀 못 알아들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성규와 오르그뜨 사이에 통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한 번 통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필요성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부각되어오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쉽사리 발전했다.

    성규와 오르그뜨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오가야 했다. 오르그뜨가 왜 집을 나갔는지. 여전히 집을 나간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지. 성규는 오르그뜨를 설득해 집으로 데려가야 했고, 오르그뜨는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해야 했다. 두 사람은 부부였고, 오르그뜨가 도망갔다고 해서 그 사실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성규와 오르그뜨 사이에서 이런 복잡한 대화가 오고가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복잡한 대화가 오고가고 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리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오르그뜨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려는 성규의 바람은 이루어지기 힘들 일이었다.

    물론 완력을 쓸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오르그뜨를 강제로라도 끌고 청양 성규의 집으로 데려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가기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봤자 오래 못 갈 일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또 야반도주한다는 것이었다. 강제로 오르그뜨를 끌고 성규의 청양 집으로 데려간다는 데에는 나는 반대였다.

    지금 이 순간 통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무엇보다도 몽골 통역이 떠올랐다. 나는 그 몽골 통역을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몽골 통역은 여전히 무대 위에 있는 듯 했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돕고 있는 몽골 통역을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마음은 바쁜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공연이 왜 이렇게 긴 거야 하고 푸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은 공연은 그렇게 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