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느라 바빠 못 배운 게 한” 태극기집회 참석 시민들의 이야기
  •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먹고 사느라 바빠 못 배운 게 한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왜 지켜야 하는지, 사회주의가 답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구호인지 말해주고 싶은데...우리는 다 한 번씩 굶어본 사람들일거에요. 보릿고개 넘느라 배우지 못한…."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의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75세 정씨는 할 말이 있다며,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던 기자를 직접 찾아왔다. 

    정씨는 "나는 박사모 회원이 아닌데 언론에서 태극기를 들면 다 박사모 회원이라고 써서 답답하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씨는, 자신은 태극기집회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여기 나온 사람들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태극기를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씨는 "TV를 보며 촛불집회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직감하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며 촛불집회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자신이 조금 더 배웠더라면 지금의 태극기 현상을 젊은 세대들에게 이해시켰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태극기집회'의 주축인 50~80대 중·노년층은 대게 정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씨 옆에 서있던 이씨(58)는 정씨의 말에 공감한다며, 자신이 직접 '태극기 현상'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인터뷰에 응했다. 

    이씨는 '태극기집회' 참석 인원이 늘어나게 된 원인을, 촛불집회의 '반국가·반체제적 구호'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폄하 혹은 부정'에서 찾았다. 

    촛불집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국정 역사 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낙인찍고, 한국 근현대사를 '폄훼'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

    이씨는 "우리는 대부분 한번쯤 굶어본 세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원래 이 나라가 잘 살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유민주주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촛불집회에서는 '사회주의가 답'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심각한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촛불집회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시대를 전부 부정하고 있다"며 "민주화 세대가 대한민국 역사의 시작인 것처럼 선동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국제시장 세대’는, '촛불집회'가 민주화 시기 이전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있는 현실에, 강한 우려와 함께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호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호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의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뉴데일리 강유화
    ▲ 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의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뉴데일리 강유화

    다른 참가자인 임모씨(78)는 "반미, 친북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우리가 피땀 흘려 세운 나라를 부정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임씨는 "우리 세대는 6.25도 겪고, 4.19 민주화도 봤다. 젊은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고생한 덕분에 이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도 봤다. 그런데 촛불은 하루아침에 이 나라가 세워진 줄 알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역사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광장에 나오겠느냐"며, "촛불만 국민이고, 자기 세대들만 대한민국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나라가 잘못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70대 이모씨(73) 또한 "촛불집회는 반체제성격이 강하다"며 "구국 차원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태극기집회는 고령층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곳곳에는 '샤이(shy) 보수'라 불리는 20~30대 청년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30대 부부, 10대 자녀와 함께 나온 40~50대 시민 등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의 연령층이 넓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쥐고 집회에 동참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자주 연출됐다.

  •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외국인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외국인들.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각계각층이 참석한 만큼 집회에 참석하게 된 배경도 다양했다. 

    고등학생 자녀와 집회에 참석한 전씨(56)는 "아들에게 태극기집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자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거부하기에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직접 보라고 설득했다"며, "아래 세대에게 우리 생각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들이 왜 이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왔는지 한번쯤 생각해주길 바랐다"고 했다.

    전씨의 자녀 전군(18)은 태극기 집회에 대해 "그냥 신기하다"며 짤막한 소감을 전했다. 또래의 친구들은 태극기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친구들끼리 정치이야기는 잘 안 한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 건너건너 많이 듣기는 하는데 (학업 때문에) 바빠서 잘 모른다"고 했다.

    태극기를 든 20~30대 청년들의 경우, 고령층과는 조금 다른 참석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촛불집회에 나오는 구호에 실망해 태극기집회에 나오게 된 경우가 많았다.

  •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청년들의 모습.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청년들의 모습.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30대 조모씨.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30대 조모씨. ⓒ뉴데일리 강유화 기자

    30대 조씨(31)는 "촛불에 가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석기 석방, 사회주의가 답이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며, "내 가족과 자식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물려줘야 겠다는 생각에 집회에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 해체 구호도 이해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누구든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며, "마치 자신들은 그렇지 않은 척 하는 이중적 태도가 싫다"고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 근처에서 '졸속탄핵 원천무효'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던 20대 청년 2명은 "우리는 탄핵을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주장하는 조기 탄핵은 정권찬탈을 위한 세력의 구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 또한 촛불집회에 이석기 석방, 사드배치 반대 등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과는 무관한 구호들이 나오는 사실에 의문을 나타냈다. 

    한편 이날 태극기 집회에는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시민과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강유화
    ▲ 4일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한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시민과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데일리 강유화


    '태극기 시민'들은 전 의원을 찾아가, "이 곳에 나와줘서 고맙다", "꼭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전희경 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제대로 못해, 어르신들을 광장에 나오게 한 것 같아 죄송하다"며 "요즘 마치 태극기집회를 지나간 세대의 집회처럼 매도하는 언론이 있는데, 이분들이야 말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대로는 나라가 잘못 간다는 확신으로 나오신 분들이다. 정말 행동하는 분들이자 이 시대의 진짜 청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극기집회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별할 수 있는 장이다. 젊은 분들도 직접 나와 진실의 세상을 보고 태극기물결에 합류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JTBC의 태블릿PC 조작보도 의혹을 꼬집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JTBC의 태블릿PC 조작보도 의혹을 꼬집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4일 오후 서울 도심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16차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고영태 녹음파일’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