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참관자 제보 "소추안 위법에 변호인단이 묵인 합의? 있을 수 없는 일" 주장
  •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 사진 공동취재단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 사진 공동취재단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을 맡은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국회 소추안 의결과정에서 벌어진 위법 사실을, 주요 쟁점사안으로 다투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대통령 변호인단 이중환, 이동흡 변호사 등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강일원 재판관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법정 답변을 한 사실이 밝혀져, 그 배경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A씨는, 5일 저녁 이런 내용을 본지에 제보했다.

    A씨는 “강일원 재판관이, 대통령 측 변호인단 소속의 일부 변호사가 법정에서 한 의례적 답변을 근거로, ‘피청구인 측 변호인단 대표가 국회 소추안 의결과정과 관련된 사안을 다투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의 제보내용 및 탄핵심판 변론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들의 진술, 심판과정을 녹화한 동영상 등을 살펴보면 강일원 재판관은 탄핵심판 변론준비기일 도중 대통령 측 변호인 중 한명인 이중환 변호사에게 “국회의 소추안 의결과 관련된 사안은 쟁점사안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즉 다투지 않는 것으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강 재판관은 대통령 측 변호인단 소속인 이동흡 변호사에게도 ““변호사님, 쟁점정리 할 때는 절차에 관해서 다투지 않기로 하는 합의도 할수 있는 거죠?”라는 질의했으며, 이동흡 변호사는 “예, 제가 판사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강 재판관은 이를 근거로, 소추안 의결과정에서 국회가 저지른 법률적 하자를 지적하는 대통령 측 변호인들의 항변을 부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무엇보다 강 재판관은, 변호인단 대표와 ‘합의한 사안’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변호인들의 변론을 배척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강 재판관은 변호인단 대표와 합의한 사안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분노했다.

    그는 “강 재판관이 대표라고 말하는 이중환 변호사는 대표가 아니라 간사라고 하는게 맞다. 변호인단에 연로하고 기수가 높은 선배들이 많다보니 이 변호사가 대외적으로 많이 나섰지만 그렇다고 이 변호사를  대표라고 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A씨는 이어 “이 변호사가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을 한 것도, 강 재판관 의사대로 국회 소추과정의 법적인 하자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이뤄지는 의례적 답변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우리나라에서는 법정에 선 변호인이, 재판관이 하는 말에 ‘노(NO)’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 법조계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중환 변호사나 이동흡 변호사의 발언만을 근거로 국회의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씨는 “법정에서 이중환 변호사는 대표도 아니었고, 더구나 국회가 저지른 위법을 다투지 않겠다는 합의를 한 사실은 더더욱 없다”면서 강일원 재판관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우리나라 법정 문화가, 변호사가 ‘노(NO)’를 못하는 문화다.
    재판장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니까 마지못해 억지로 알겠다고 한 것이지, 그건 합의한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헌재는 합의를 했다고 자꾸 주장한다.“

    앞서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소추안에 기재된 탄핵사유가 13개인데도, 국회가 각각의 탄핵사유별로 투표를 하지 않고, 이를 한데 묶어 단 1회의 투표로 탄핵소추여부를 결정한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검찰과 특검이 수사를 하는 도중에, 국회가 신문기사와 검찰의 조서만을 근거로 탄핵을 의결한 사실 역시, 헌법의 기본원리인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부적법하게 이뤄진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각하결정을 내리는 것이 법리에 맞는다고 항변했다.

    A씨는 “합의라고 한다면 문서가 있어야 하고, 그 합의가 유효하려면 사건의 당사자인 박 대통령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변호인과의 합의’ 사실을 강조하는 강 재판관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동의를 했어야 한다.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이걸 합의한다는 건 재판을 포기한다는 건데 합의할 리가 있는가.”

    나아가 그는 “국회 소추절차의 위법 여부를 다투지 않겠다는 건, 재판권의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합의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합의라는 건 개인의 재산권 분쟁에 관해서 하는 것이지, 헌법이나 형사재판에서는 그런 합의가 있을 수 없다.
    헌법상의 권리는 당사자라고 해도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는 권리다. 강일원 재판관은 지금 국민을 속이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중환 변호사는, 변론준비기일에 위와 같은 내용의 발언을 한 사실이 있다면서도, 강 재판관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입장을 나타냈다.

    “절차에 관한 문제는 직권조사사항으로 재판부의 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가) 사실인정의 진검승부를 하라고 하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직권조사사항은 언제든지 다시 다툴 수 있는 것입니다.”

    - 이중환 변호사 

    본지는 강일원 재판관과 이동흡 변호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취재를 요청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과의 면담 혹은 통화는 어떤 기자와도 불가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