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소장파'… 총사퇴 결단이 연대·연합의 밑거름될까
  •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1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중앙당창당대회에서 당기를 휘날리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 1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중앙당창당대회에서 당기를 휘날리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제나라 환공의 패업을 도운 관중(管仲)이 늙어 병에 걸렸다. 친히 문병을 온 제환공은 "중보(仲父)의 병이 이렇듯 심한 줄 몰랐다"고 한탄하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누구와 더불어 국사를 의논해야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관중이 탄식하며 쉽게 거론을 못하자, 환공이 먼저 "포숙(鮑叔)은 어떠냐"고 말했다. 그러자 관중은 "포숙은 선악의 구별이 지나치게 분명하다"며 "선을 좋아한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악을 미워하는 것이 심하니 누가 그밑에서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진짜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창당한 바른정당의 정병국 초대 당대표가 10일 전격 사퇴했다. 갑작스런 지도부 총사퇴의 배경을 놓고 분분한 분석이 오간다.

    60일이라는 급박한 대선 레이스가 공식 시작됨에 따라, 각종 연대나 후보단일화의 논의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관계자에 의해 부인되긴 했지만 '김종인 대표 영입설'도 앞으로 거론될 수많은 정치공학적 논의의 한 갈래일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굳이 정병국 대표가 물러나야 할 것까지 있었을까. 5선 의원으로서 관록과 경륜을 갖추고 있다. 차기 대선의 방향타를 쥔 '경기의 아들'이다. 뭇 정치세력 간의 '연대 고리'가 될 것이 분명한 개헌(改憲)을 통해 수평시대를 열겠다는 확고한 신념 또한 갖고 있다.

    모자람이 없는 것 같지만 단 하나 결점이 있다면 정의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악(惡)을 지나치게 미워한다는 것이리라.

    연대를 본격적으로 테이블에서 논의하게 되면, 더러운 것도 짐짓 못 본 척하고 지저분한 것도 감싸안아야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것처럼, 넓은 호수와 저수지를 이루려면 3급수에서 사는 민물고기들도 함께 어우러질 수밖에 없는 이치다.

    일전 바른정당이 시·도당창당대회를 한창 진행할 때, 초대 당대표가 유력시되던 정병국 대표를 향해 "이제 '영원한 소장파'라는 칭호를 뒤로 하고, 5선 의원의 정치력을 보여달라"는 당부를 한 적이 있다.

    소장파는 악을 미워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정치권의 구악(舊惡)을 격렬히 성토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소장파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병국 대표는 이미 5선 의원이고, 결국 당대표가 됐다.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다. 어느 정도 오탁(汚濁)해지는 것을 감수했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이 바뀌기보다는 내려놓고 '영원한 소장파'를 자처하는 백의종군의 길을 택했다. 아쉽지만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결단이다.

    범(汎)보수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곁에 조고(趙高)와 같은 간신배가 있어 나라를 망쳤다"고 일갈했다.

    조고는 춘추전국을 제패한 진(秦)나라를 망친 간신이다. 관중과 포숙이 있던 춘추시대 제나라에 비춰보면 수초(竪貂)·역아(易牙)·개방(開方)의 삼간(三姦)과 같은 종자다. 이들은 홍준표 지사가 표현한 이른바 '양아치 친박'인데, 쥐새끼와도 같은 이들 친박 간신배들을 몰아내지 않고서는 보수 세력의 회생도, 통합도, 또 대선 승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내쳐지는 무리들은 최소화돼야 한다. 비록 마지막에 삼간(三姦)과 같은 무리들의 선동에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하자고 연판장에 서명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60명에 육박한다지만, 웬만하면 보듬어안고 연대하고 통합해서 다가올 대선이 패권에서 또다른 패권으로 교체되는 것에 그치는 최악의 상황은 막으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누가 관중과 같은 인물이 돼서 그 대업을 이룰 것인가. 속내 같아서는 친박패권과 국정농단이 가능하게끔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무리들을 전부 내치고 싶을 것이 분명한 정병국 대표는 '새로운 얼굴' 관중을 위해 자리를 내어놓아 비우는 결단을 내렸다.

    사마천은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서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라는 관중의 말을 인용하더니 "포숙은 관중을 천거한 뒤에 자신은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관중을 받들어 항상 명대부(名大夫)로 세상에 알려졌다"며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재덕을 칭찬하기보다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포숙을 더욱 칭송했다"고 평했다.

    암담한 정국 속에서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 이런저런 서 말의 구슬들을 꿰어내는데 성공한다면, 그 공은 비단 '새로운 얼굴' 뿐만 아니라, 그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자리를 비웠던 정병국 대표에게도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백의종군이 60일 뒤에 패권교체를 막아내고 '국민의 승리'라는 소중한 결실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