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이제 정치인 박근혜를 우리의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자"
  •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대행이 13일 오전 확대중진회의 도중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대행이 13일 오전 확대중진회의 도중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헌법재판소의 인용 여부에 의원직까지 걸었던 탄핵 주도 보수정당 바른정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재 결정 불복 시사에 일제히 장탄식을 토했다.

    57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반응이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바른정당이 이러한 시도에 개탄하면서, 대선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범(汎)보수 진영은 다시 한 번 세포분열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다.

    바른정당은 13일 오전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처음으로 확대중진회의를 열었다. 본래 최고위원·중진의원연석회의의 형태로 열려야 하지만, 지난 10일 헌재의 결정 직후 '정병국 지도부'가 총사퇴한 관계로 최고위원이 없어져 확대중진회의 명목으로 개최됐다.

    이 자리에 모인 바른정당 지도급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날 삼성동 사저 복귀 때 보인 헌재 결정 불복 시사에 일제히 안타까움을 내뱉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야권이 보인 반응과도 다소 결이 달랐다. 비난이라기보다는 장탄식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국민들은 헌재 판결 존중과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원했는데, 대리인을 통해 분열과 갈등의 여지를 남겨 유감"이라며 "지금이라도 헌재 판결 존중과 국민통합의 의지를 밝혀달라"고 안타까워했다.

    유승민 의원도 "대통령이 승복해야 분열과 갈등을 막고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호소했는데, 마지막 기대까지 저버린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지지층에는 자제를 호소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른정당은 이번 대선이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로 가서는 궁극적으로 승산이 없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으로 가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87년부터 여섯 번의 대선을 치러본 김무성 의원은 지난달 8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내 선거 경험상 이번 대선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아닌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로 치러야 승산이 있다"고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분노가 어느 정도 매듭이 지어져야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혐오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분노가 더 큰 상태에서 57일이 속절없이 흘러가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기표소에 들어가게 된다면, '보수 대 진보'보다도 더 승산이 없는 '박근혜 대 반박근혜'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선은 '해보나마나'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승복을 선언하고 정치 무대의 뒷편으로 퇴장해줘야 지난해 10월말부터 시작된 국면이 비로소 정리되면서, 국민들은 이미 종언을 고한 과거 권력보다는 미래 권력에 누가 적합한지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3일 오전 확대중진회의에서 김무성 의원이 바라보는 가운데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3일 오전 확대중진회의에서 김무성 의원이 바라보는 가운데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이날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들께 용서를 구하되 억울한 점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에서 이해를 구하겠다고 했어야 한다"며 "그랬을 때 국민들에게 분열된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불구속 수사와 관용을 호소할 수 있었는데, 메시지가 국민의 바람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민들의 시선이 미래 권력으로 옮겨가야,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집권은 친박패권에서 친문패권으로의 '패권교체'에 불과하다는 점을 폭로해 차기 대선의 구도를 '문재인 대 반문재인'으로 맞출 수 있다.

    바른정당 김영우 의원이 지난 1월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남자 박근혜'가 돼 '제2·제3의 최순실 사태'가 벌어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이를 위한 '밑밥깔기'였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천만뜻밖에도 기대를 저버리고 헌재 결정 불복을 시사해 이러한 구도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복 시사는 소수의 강성 지지층만 결집해 끌고 가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날 삼성동 사저 앞에 모여든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도, 이른바 'TK 자민련' 계획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된 'TK 자민련' 계획이란 차기 대선에서 정권 창출을 포기하고 야당으로의 전락을 감수하되, 대구·경북과 노년층 등 핵심 지지 기반을 강하게 결속시켜 범보수 진영 내의 반대 세력을 '진보 5년' 동안 먼저 궤멸시키고 이후 '진보 정권 3년차'에 치러질 2020년 총선에서 정치적 재기를 노린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차기 대선을 사실상 방기하는 'TK 자민련' 노선으로 자유한국당 내의 강성 친박 의원들이 침로를 잡을 경우, 더 이상 한국당에 잔류할 이유가 없는 의원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여권 안팎에서 차기 대선에 임하는 전략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범보수 진영의 세포분열이 일어날 것을 점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도 이날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이 대통령을 파면하고 종지부를 찍었다"며 "오로지 대통령만 비호한 비상식적 친박사당에 불과한 자유한국당에서 이제는 나오라"고 손짓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자신을 스스로 밑거름 삼기보다는 소수 지지층만을 강하게 결집해 계속해서 친박 세력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로 자처한 이상, 차기 대선을 수권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고 보는 범보수 진영에서는 그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정당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날 회의에서 "이제 정치인 박근혜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서 떠나보내자"며 "그냥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체념적 태도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국민들과 함께 당장 눈앞의 안보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부패한 국정농단세력과 오만한 패권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