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한국당과 도모해야 하느냐" 제동… 호남 민심이 변수
  •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사진 가운데)가 공식 회의 석상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사진 가운데)가 공식 회의 석상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개가 짖어도 개헌(改憲) 기차는 힘차게 달릴 조짐이다. 더불어민주당 친문패권주의 세력의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야3당은 단일 개헌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헌특위 간사와 함께 모여 오는 5월 9일 대선일에 개헌안의 동시 국민투표 진행에 합의했던 3당 원내대표들은 16일 일제히 개헌 의지를 재천명하고 나섰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개헌 찬성 의원들,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TF를 구성해 단일안을 만들어 대선 전에 개헌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를 봤다"며 "이제 개헌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결단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대선 전에 개헌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역대 정권에서 그랬듯이 개헌은 또다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며 "다음 주까지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하면 대선 전 개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도 같은날 열린 확대중진회의에서 "조기에 개헌을 추진해도 될 정도로 의견 접근을 본 부분이 많아서 어제(15일) 바른정당·국민의당·한국당 원내대표와 개헌특위 간사가 모였던 것"이라며 "3당의 단일안이 거의 도출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식 회의가 없어 공개 모두발언 기회가 없었던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오전 중에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은 단일 개헌안이 만들어지면 각 당 의원총회를 거쳐 다음 주중 정식으로 개헌안을 발의할 예정"이라며 "이후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국민 공고와 국회 의결, 국민투표를 거치면 역사적인 개헌은 결국 이뤄진다"고 무게를 실었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전날 "누가 그럴 (개헌을 추진할) 권한을 줬느냐"고 역정을 냈고, 우상호 원내대표는 "한여름밤의 꿈같은 일"이라고 반발했지만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말대로 되레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하면서 개헌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개헌에 반대하는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한 비판 또한 이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표는 2014년 '개헌 논의를 막는 것은 월권이자 독재적 발상'이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이) 개헌에 반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반(反)개헌 입장이야말로 월권이며 독재적 발상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바른정당 김재경 전 최고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치르던 날, 날씨는 더웠는데 식장의 서늘했던 공기를 잊을 수가 없다"며 "국민이 준 권력이라는 큰칼을 잘못 쓰면 본인이 그 칼에 저렇게 다치는데, 문재인 후보는 이러한 폐단으로 점철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헌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당의 공식 회의 석상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이 당의 공식 회의 석상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의 '누가 정치인에게 개헌 권한을 줬느냐'는 반발에 대해 "헌법과 국민이 개헌에 대해 국회에 권한을 주고 있는데, 문재인 전 대표는 헌법을 읽어보기나 했느냐"며 "차라리 노골적으로 '개헌하기 싫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구차하게 말을 돌리느냐"고 비판했다.

    이렇듯 정치권 내에서 개헌 전선(戰線)은 점차 명료해지고 있다. 범(汎)보수에 해당하는 바른정당과 한국당은 개헌 입장에 섰으며, 민주당 친문패권주의 세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편에 섰다. 변수는 민주당내 양심적 개헌 세력과 중도 성향을 대표하는 국민의당이다.

    이 중 민주당 내의 양심적 개헌 세력은 3당이 얼마나 단일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끌어낼 수 있다고 보면, 역시 국민의당이 개헌 정국의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와 김동철 개헌특위 간사 등 당의 주류를 형성하는 호남 의원들은 개헌 추진에 적극적이다.

    반면 당의 대표적인 유력 대권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는 한국당과 함께 전선을 형성하는 게 껄끄럽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전날 "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공공연히 헌법 불복을 외치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과 개헌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는 대권 가도에 있는 본인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의 민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호남 민심은 바른정당과의 연대까지는 몰라도 '도로친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당과의 연대에는 뚜렷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 민심에 누구보다 예민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이날 취재진과 만나 "우리가 한국당과 함께 한다면 지지층에서 뭐라고 보겠느냐"며 "게나 고동이나 함께 할 것인가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박지원 대표는 "아무리 정치라고 하지만, 우리가 한국당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이 정국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요일에 의원들에게 (개헌안을) 보내서 읽어보고, 월요일 의총에서 결정하자는 것은 빠르다"고 제동을 걸었다.

    결국 국민의당이 앞으로 어떻게 운신하느냐는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민심의 향배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 민심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 척결에는 환영이지만, 개헌에 친박 한국당이 같이 한다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균형추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정국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광주 지역 53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분권형헌법개정 광주전남주권회의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개헌안을 대선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일정을 (한국당을 포함한) 3당이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실망했다"면서도, 민주당을 향해서도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 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지 말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밝히라"고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