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의 소설 '날개' 마지막에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는 구절이 있다. 제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꿈 꿨는지 모르겠지만 이 구절이 정말 좋더라. 그걸 붙들고 여기까지 왔고, 뮤지컬 '스모크'가 탄생됐다."

    추정화 연출은 지난 23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진행된 뮤지컬 '스모크' 프레스콜에서 이 같이 말하며 비운의 천재 시인 이상의 삶이 아닌, 그의 고통과 절망, 희망에 주목했음을 밝혔다.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뮤지컬 '스모크'는 순수하고 바다를 꿈을 꾸는 '해(海)',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超)',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紅)' 세 사람이 함께 머무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해 12월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인 후 3월 18일 정식 공연을 올렸다. 수정 과정을 통해 작품 속 대사와 가사를 간결하게 압축하며 극의 밀도를 높였고, 뮤지컬 넘버 역시 상당 부분 변화돼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상징적 소품과 영상을 활용한 새로운 무대 연출은 공연에 풍성함을 더한다.

    극본을 직접 쓴 추 연출은 "트라이아웃 당시 '연출가 혼자만의 세상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난해하다' 등 비난의 반응이 많았다. 처음에는 인정을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말이 맞더라"며 운을 뗐다.

    이어 "종이가 물에 흠뻑 젖어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시인 이상에 너무 빠져서 공연을 만들었던 것 같다. 본 공연은 더 극적이고 일반 관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따라갈 수 있도록 많이 바뀌었다. 다만, 작품에 담고자 했던 기본 결은 버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스모크'는 작품의 핵심 소재인 시 '오감도' 외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회한의 장'을 리봇해 소설 '날개', '종생기' 등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을 선보인 이상의 대표작을 대사와 노래 가사에 절묘하게 담아냈다. 

    추 연출은 "사람이 살다 보면 행복에 겨운 순간만 살 수 없다. 고통과 절망은 행복만큼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이상의 시를 읽다보면 모더니스트였고 위트와 패러독스(역설)를 즐겼으며 시대를 앞서갔다. 하지만 세상과 맞지 않은 절름발이 같은 예술가의 모습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점에 왜 이상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고통스럽거나 절망의 끝에 계시는 사람들이에게 '스모크'가 약이 되는 뮤지컬이 되길 바란다. 혼자만 아픈 게 아니라 다 아프다. 이 아픔을 견디다보면 언젠가 나비처럼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뮤지컬 '스모크'는 트라이아웃 공연 때 참여했던 배우와 새로운 캐스트의 합류로 완벽한 연기 앙상블을 이룬다. 시를 쓰는 남자 '초' 역에는 김재범-김경수-박은석이 분하며,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역은 정원영-고은성-윤소호가 번갈아 연기한다. 부서질 듯 아픈 고통을 가진 여인 '홍'은 정연-김여진-유주혜가 맡는다.

    JTBC '팬텀싱어' 이후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린 고은성 배우는 "본의 아니게 작품 연습에 100% 할애를 못한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예전보다 더 관심을 가져주시는데 '공연을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부담이 생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작품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뮤지컬 '스모크'는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5월 28일까지 공연된다.

    [사진=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더블케이앤필름앤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