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의 선택... 69년 전으로 돌아가자!
    해양문명,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반공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1948년 5월 10일! 이 땅 백성(百姓)들의 존재[생존] 방식과 삶의 방향을 바꾼
    역사적인 선택이 있었던 날이다. 흔히 ‘5·10 총선거’라고 한다.
      그 선택의 요지는
      ①수 천 년 동안 복속(服屬)되었던 대륙문명권에서 벗어나 해양문명을 받아들이려 했고,
      ②공산[전체]주의를 배격,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이 나라에 뿌리 내리고자 했으며,
      ③국제사회와 함께, 개방과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추구하고자 했다.

  •   이 선택의 결과로 남녘의 백성들은 ‘국민’(國民)이 되었다.
    고된 삶이었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시련과 질곡(桎梏)과 환희와 영광들이 함께했다.
    드디어 그 희망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여럿 평가를 요약하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꽤 살만한 터가 됐다!”

      반면에, 이 선택을 거부한 집단에 의해 볼모가 된 북녘의 백성들은
    ‘인민’(人民)이라는 미명(美名)의 노예(奴隸)로 전락하고 말았다.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닌” 처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로부터 하루가 모자라는 69년째 되는 날,
    이 나라는 다시 한 번 미래가 걸린 막중한 선택을 하게 된다.
    비록 우여곡절의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날이 잡혔다지만,
    아니 그래서 그 선택이 갖는 의미는 더더욱 각별하다.
      상황은 69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중론(衆論)이다.
    이 나라 국민의 존재와 삶의 방향을 확 바꿀 수도 있는 혁명적 정세이며,
    그 핵심에는 불꽃 튀는 이념 전쟁이 진행 중이다.

      반면, 많은 국민들 간에는 그 옛날과 달리 희망을 품기보다는
    곧바로 닥칠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어두운 예측들이 난무한다.
    그저 5월의 선택에 나설 주자(走者)들의 움직임과 찌라시가 되어버린
    ‘주류 언론’의 목소리만이 분주함을 더해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응답률이 한 자리 수를 겨우 넘는다는 이른바 ‘과학적(?)인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이
    상위(上位)에 이르는 분들은 전부 69년 전의 그 선택과 선택의 결실인 이 나라 현재까지의 역정(歷程)을 부정(否定)·회의(懷疑)·폄하(貶下)하거나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남녘과 북녘에서 그 선택을 거부·방해했던 세력과 집단의 방향이 옳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단다.

  •   ‘북악(北岳) 산장’의 큰 문에 성큼 다가가 계시다는 ‘안대재’[안경잽이 대권 재수생]를 비롯,
    충남의 ‘운출다’[운동권 출신 다크호스], 그리고 남한산성 밑의 ‘형막싸’[형수와 막말 싸움꾼] 등 ‘그 당’ 주자들은 누구에게 물어도 한통속이며, 바탕 이념과 역사관이 다르지 않다는 게 통설이다. 비교가 불필요하다는 얘기다.

      요즘 ‘주류 언론’에서는 저 분들이 서로를 비방하며 ‘난타전’(亂打戰)을 벌리고 있다고 요란을 떤다. 하지만 그 싸움은 개인의 정치적 욕망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보면 된다.
    ‘안대재’의 말씀이다.
      “선거 과정에서 으레 있는 일로 걱정할 것 없다... 늘 강조하지만 우리 당 후보들은 한 팀이다. 지금은 경쟁하지만 그 경쟁이 끝나고 나면 함께 힘 모아 정권교체를 이뤄내야 할 한 팀이다...”

      저 분들은 ‘반(反)공산·전체주의’를 언감생심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신에 정체불명의 ‘경제 민주화’를 짖어댄다.
    “한미동맹 강화” 뭐 이런 건 연목구어(緣木求魚) 수준이다.
      이 나라와 국민의 생존에 직결된 북녘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 방법과 관련해서는
    ‘대북 굴종’(對北 屈從)의 온갖 말장난만 퍼부어대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再開)해서 북녘 돼지새끼 뒷주머니를 채워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차하면, 대화로 풀 수 있다고 자신한다. 돼지새끼의 너풀거리는 바짓단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발 참아 달라!”고 호소하는 게 아마 대화의 본질이지 싶다.
      북녘 핵미사일의 위협에 맞서 ‘사드’를 배치하기로 동맹(同盟)과 합의를 했어도 딴죽만 건다. ‘사드’를 배치하자는데 ‘사대’(事大)할 궁리만 하지 않았던가.

      이런 정황은 이른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저들에게 밀린다는 ‘절안깡’[정치판에서 절대로 철수 안할 깡통]과 그 언저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존재감 부각에 안간힘을 쓰면서 여기저기 쑤셔대고 기웃기웃 해보긴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많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 가운데...

      ‘자칭(自稱) 보수(保守)’의 기치를 내걸고, 선거판에 분연히 뛰어든 용감한(?) 분이 있다.
    이름 바꾼 보수당(保守黨)의 ‘배포 큰’[肥大胃腸] 역을 맡은 목사(目四)님이 강력하게 뒤를 밀고 있단다.
      그런데 이 ‘배포 큰’ 목사님은 ‘훼방신학’(毁謗神學)을 공부하고 ‘해방신악’(害邦新惡)이 되셨는지 ‘태극기’를 무척 싫어하신다고 한다. 조폭(組暴) ‘용팔이’의 각목(角木) 정도로 취급하시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항간에서는 그 당을 ‘자한당’[自限黨 : 스스로 한계가 있는 당]이라고 부른단다. 그건 그렇다 치고...

      현직 도지사(道知事)이신 그 ‘깐모검’[깐죽이가 된 모래시계 검사님]께서도 “한미동맹 강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먼저 방문하겠다. 미국은 ‘사드’ 배치만으로 군사동맹이 확인됐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먼저 설명하고 설득할 나라는 중국이다. 다음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간에 중국이 첫 번째 과제이며, 아마 미국이나 일본이 이해할 것이다...”
      입이 가벼운 건지, 철딱서니가 없는 건지...

      이와는 다소 다른 사안이지만, 벌써부터 ‘깐모검’께서는 탐욕의 기득권 유지·확대·강화를 노리는 배신자(背信者)들과 합칠 속심이었다니,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물 건너 간 느낌이다.
    그 배신의 당 주자(走者)들이야 전부 정체불명의 ‘경제 민주화’ 주창자들 아닌가 말이다.

      이렇듯 정치공학적인 타산(打算)에 따라 틀을 만들어 놓으면, 국민들은 어차피 그 틀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정치 모리배들의 오만(傲慢)... 국민들, 특히 애국 보수층을 자신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개나 돼지로 여기는 이들의 작태에, 혁명적 정세를 맞고 있는 애국 국민들은 큰 분노와 실망감을 느낄 것이 자명하다.

      사정이 이에 이르니 69년 전의 선택을 거꾸로 뒤집는 일만 남았다고 느껴진다.
    하물며 선택의 시간까지는 불과 40여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딱하다. 그러나...

      드디어 이 나라의 활로(活路)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봄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   지난 초겨울 어간부터 ‘태극기 집회’에 나와서 애국을 외치던 젊은 투사(鬪士)가 선거판에 뛰어 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자한당’(自限黨)의 ‘배포 큰 목사님’ 일당에 의한 비겁한 뒷발 걸기와 ‘주류 언론’의 철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진태령’[진짜 태극기 대통령 후보]이 드디어 애국 국민들 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을 외치며 사즉생(死卽生)의 결기로 무장한
    ‘노전사’(老戰士)도 출정식을 마치고, 국민들과 본격적인 접촉에 나서고 있단다. 
      ‘영육삼’[영원한 육사 삼학년 생도]께서는 무능과 부패와 불신으로 점철된 기성 정치권 대신, 무소속을 택했다고...

  •   이 분들은 공통적으로 이 나라를 좀먹는 ‘탐욕의 좌우 기득권 세력’ 타파(打破)를 외치고 있다. 반역·이적세력 소탕을 약속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입각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창한다.
      “한미동맹 강화”를 역설하며, 북녘 핵미사일에 대응하여 “우리도 핵무장!”의 길을 열고자 한다. 특히, “북녘 체제의 붕괴와 자유 통일”을 전략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아마, 이 분들의 등장으로 판은 더욱 커지고 무척 거칠어질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필히 그래야만 한다. ‘대란대치’(大亂大治)... 그 속에서 이 나라의 바른 길을 선택하는
    묘수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국민들이 있다.
    69년 전의 선택도 국민이 되고자 했던 백성의 몫 아니었던가...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