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얻어야 '삼국정립'…10일 부터는 대공세 예고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그는 4일 상주, 구미, 대구를 방문하며 TK민심을 청취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그는 4일 상주, 구미, 대구를 방문하며 TK민심을 청취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중국 후한(後漢) 말인 208년, 조조는 원소를 이기고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뒤 동오의 손권을 칠 기회를 엿봤다.

    손견 때부터 가업을 닦아왔건만 동오는 아직 기반이 부족하고 손권은 어렸다. 조조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오나라가 믿는 구석은 수군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점과 제갈량이 일러준 대로 동남풍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조조군은 따로 떨어진 배를 한 데 묶는 방법으로 수전에 약한 군대를 관리했고, 이에 동남풍이 불지 않는 이상 손권군이 조조군을 상대로 이길 방법은 없었다.

    지난달 31일 자유한국당의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후보가 적벽대전을 앞둔 손권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홍준표 후보는 4일 첫 지방 일정으로 경북 상주-구미-대구를 돌며 민심을 청취했다. '보수의 심장' 영남에서 동남풍이 불어 충청과 수도권에 번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그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지금은 제가 경남도지사 신분을 갖고 있어 선거법 위반 시비 때문에 말을 다 못하지만, 10일 사퇴하고 그때 올라올 때는 이야기가 틀려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그때는 대구 경북 사람들에 내 불을 한 번 질러볼 게"라며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호남 둘이 싸우고 영남 내 혼자 하고 한번 해보자, 가자"라고 했다. 마치 동남풍이 본격적 불기 시작하면 불화살에 불을 붙여 '삼국정립'을 이루겠다는 투였다.

    홍 후보의 이날 행보는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쳤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후보로 확정된 것에 대해서는 "한 판 붙을 상대가 생겼다. 축하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비문연대'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1:1로 붙으려 하는데 무슨 그 연대를 묻느냐"고 맞받았다. 경북 상주에서는 50% 이상 지지세가 회복됐다는 진단도 내놨다.

    하지만 전장의 형세는 계속 불리한 소식만 들려오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안희정 후보의 지지율을 일부 흡수하면서 지지율이 올랐고, 급기야 양강 구도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이겼다는 일부 보도도 나왔다.

    그가 제시한 1차적 목표인 '보수 대통합'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그는 태극기 세력·친박세력은 물론, 분당해 새살림을 차린 바른정당 세력도 이탈 없이 끌어안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날 취재진이 유승민 후보에 대해 "큰집으로 돌아오라"면서도 "주적이 문재인인데 왜 나에게 이러느냐"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TK를 찾아 자신감을 피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홍 후보의 자신감은 '형세'를 놓고 따진 것이 아닌 '믿음'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나온다. 대선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형세와 상관없이 이기는 시나리오를 구상한 뒤 '배수의 진'을 쳤다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정치권의 구도는 지난 4.13 총선 구도가 계속되고 있다. 반문 정서가 팽배한 국민의당이 새롭게 호남을 차지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의석의 상당수를 가져가며 자유한국당에 치명타를 날렸다. 표면적으로 보면 자유한국당은 전국정당에서 영남·강원권으로 세가 줄었지만, 호남과 모두 '반문 정서'가 강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로 미뤄볼 때 결국 영남과 호남, 어느 쪽이든 문재인 전 대표를 한 지역에서 압도해야 문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다. 홍 후보로서는 TK, 그리고 PK 민심을 얻어 보수를 통합하는 것만이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수군의 강점을 지렛대 삼아 동남풍을 기다리는 손권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대목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은 '호남 민심'을 두고 앞으로도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4·13총선에서 "호남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언급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홍 후보에게는 경남도지사직을 사퇴한 직후가 많지 않은 기회인 셈이다.

    다만, 아직도 '영남 보수'와 '수도권 보수'의 간극이 커 보이는 점이 숙제다. 홍 후보는 지난달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을 잊어야 한다"고 했지만, 4일에는 "홍준표 정부가 드러서야 박근혜 대통령이 산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정치적 판결"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홍 후보가 TK 민심을 고려해 발언한 셈이지만 발언의 결이 지역마다 달라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홍 후보는 8일까지 전국을 순회한 뒤, 대구를 다시 방문키로 했다. 그때까지 보수의 불길을 전국에 뒤덮을 남동풍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홍 후보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