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영장실질심사 기준 모호...여론 재판, 봐주기 판결 등 비난 자초
  • 서울중앙지법 표지.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서울중앙지법 표지.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 당시 서울 도심에서 불법집회를 주도하고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한 혐의(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로 9년 동안 기소중지된 수배범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의 공정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서도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 형평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9년 동안 숨어 지낸 지명수배범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47·연수원 26기)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일, 김광일(43)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집회기획팀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권순호 부장판사는 "이미 증거가 수집됐고, 공범자의 형량을 고려했으며, 2010년 12월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이후 수사기관이 김씨를 소환하거나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시도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국민대책회의'에서 행진팀장을 맡아 도심 불법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로 들어가 같은 해 7월부터 4개월간 농성을 벌인 뒤, 10월쯤 잠적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왔다.

    김씨는 지난해 연말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정국이 혼란해지자, 그 틈을 타고 퇴진행동에 합류, 집회기획팀장을 맡아 광화문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무대 위에 올라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 경찰은 김씨를 노원구 노상에서 검거해 지난달 30일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씨가 무려 9년 동안 법망을 피해 숨어 지내는 등 도주우려가 크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을 영장 청구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법원은 공범자들에 대해 법원이 내린 선고형량을 고려하고, 체포영장 발부 이후 수사기관이 김씨를 소환하거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영장집행을 시도한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찰의 청구를 반려했다.

    법원이 김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누리꾼들은 상식 밖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주의 위험성은 주거 부정 못지않게 중대한 구속사유라는 점에서, 9년 동안이나 검경의 수배를 피해 숨어서 지낸 기소중지자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원이 제시한 영장기각 사유도 석연치 않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2010년 12월 체포영장 발부 이후 김씨를 소환하거나 영장을 집행한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런 사유만으로 9년간 지명수배 상태에 있던 피의자의 도주 우려를 무시하거나 혹은 간과했다는 건 논리의 비약이거나 궤변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선 수사기관이 종적을 감춘 기소중지자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검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정을 고려한다면, 법원의 결정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가 작심하고 종적을 감춘다면 소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소중지자(지명수배범)의 수와 한정된 경찰력을 고려할 때, 영장집행 시도를 한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이다.

    상식적으로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 나오면서, 법원이 야권 후보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대선정국과 촛불에 우호적인 언론의 편향적 태도를 의식해, 알아서 몸을 낮춘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아이디 ‘jja****’를 쓰는 누리꾼은 “9년 동안 이나 도피하고 다녔는데 도주우려가 없다, 개가 웃을 일”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누리꾼 king****는 “대한민국 혼란, 국민들 선동, 이런 쓰레기가 기각이라니 말 다했다. 다음 정권 줄서기냐 판검사도”라는 글을 남겼다.

    아이디 ‘하늘***’를 쓰는 누리꾼도 “광우뻥, `9년 도피생활` 했는데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영장기각이라...범인과 판사의 유유상종”이라며, 법원의 원칙 없는 영장실질심사 기준을 꼬집었다.

    김씨의 영장을 기각한 권순호 부장판사는 1970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7년 사법연수원을 26기로 수료했다.

    2000년 서울 서부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중앙지법, 대구지법 경주지원 김천지원, 서올고법 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국제심의관, 창원지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지냈다. 2015년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거쳐 올해부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를 맡고 있다.

    권 부장판사는 앞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 “범죄 사실과 이미 확보된 증거, 피의자의 주거, 직업 및 연락처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