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탄에 빠진 국민 "나라 구하라"는 부름에 등장… 향후 '역할'은
  • ▲ 이언주 의원이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 탈당과 국민의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이언주 의원이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더불어민주당 탈당과 국민의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백년전쟁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해 수도 파리까지 내준 채 프랑스 왕국의 운명이 바야흐로 풍전등화이던 1425년, 프랑스의 한 13세 소녀 앞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전했다.

    3년 동안이나 고민하던 소녀는 16세 되던 1428년, 마침내 하늘의 명령에 순명하기로 결단하고 떨쳐일어났다. 오를레앙을 포위하고 있던 영국군을 격파하고, 한 달 간의 '기적의 진격'을 통해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아르크의 성녀' 잔 다르크의 이야기다.

    서울대 불문과를 나온 이언주 의원이 6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둔 가운데, 수 개월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대세론을 질주해온 대선 후보가 있는 당을 떠나 더 작은 소수야당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우리 정당사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16세 소녀 잔 다르크로 하여금 조국을 위해 떨쳐나서게 한 것은 하느님의 계시, 즉 천명(天命)인데, 이는 중세적인 해석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자면 곧 국민의 명령이라고 봐야 한다. 약탈을 통한 현지조달에 의존하던 영국군의 전술에 고통받던 프랑스 백성들이 잔 다르크를 불러낸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이었던 셈이다.

    이언주 의원의 이날 탈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이언주 의원을 탈당시킨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정권 4년 동안 친박패권정치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을 받아왔다. 여기에 다시 패권주의정권 5년이 들어서며, 패권에서 또다른 패권으로 패권만 옮겨갈 뿐이라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삶의 희망을 찾을 길이 없다.

    친박패권주의와 친문패권주의는 국민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대적 공생 관계를 통한 한줌의 권력 유지에만 집착했다. 이언주 의원이 이날 "양당 체제가 빚어낸 여러 가지 폐해들이 있다"며 "내가 경험한 정치현실은 사회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극단적인 대립을 통한 반사적 이익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토로한 것은 이를 가리킨다.

    가장의 실직과 해고·부도에 온 가족이 거리로 나앉고, 어린 자녀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단란했던 가정이 파탄나는 현실에 친박·친문패권주의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은 알량한 권력 파워게임 뿐이다.

  • ▲ 이언주 의원이 6일 오후 국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로부터 입당을 환영하는 꽃다발을 받고 있다. 과연 이언주 의원은 34일 뒤 이 꽃다발을 반대 방향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그의 역할과 활약이 주목된다. ⓒ뉴시스 사진DB
    ▲ 이언주 의원이 6일 오후 국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로부터 입당을 환영하는 꽃다발을 받고 있다. 과연 이언주 의원은 34일 뒤 이 꽃다발을 반대 방향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그의 역할과 활약이 주목된다. ⓒ뉴시스 사진DB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권력의 오르막길을 걸을 때, 수많은 중산층 국민들의 삶은 파탄나 영세 서민으로 전락했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지역선대위 발대식에 얼굴을 나타내는 '친박 핵심' 인사가 경제부총리였을 때, 우리 기업들은 파산과 부도로 내몰리고 국민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이날 탈당 성명에서 이언주 의원의 "아버지의 부도로 온 가족이 고통받았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는 나는 경제적 빈곤·양극화·불공정·각종 불합리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해서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 내 소명이라 생각했다"는 말이 국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의 아우성에 호응해 잔 다르크와 같이 홀연히 등장한 이언주 의원의 존재는, 도도한 것처럼 보였던 패권교체의 물줄기를 틀어놓는 쾌거라고 평가할 만하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탈당시키는 전대미문의 사례를 보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지난 4일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대선이 30여 일 남았지만, 남은 30여 일 동안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호언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제 남은 30여 일 동안 일어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언주 의원이 맡을 역할은 어떤 것일까.

    잔 다르크에게는 한 달이면 충분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반 년 넘게 포위돼 있던 오를레앙을 구하고, 1429년 6~7월 한 달 간의 '기적의 진격'을 펼쳤다. 이를 통해 단숨에 랭스를 해방시키고, 전통적으로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을 행하게끔 돼 있는 이곳 랭스 대성당에서 샤를 7세를 프랑스왕으로 대관하는데 성공했다.

    이날로 대선까지 34일이 남았다. 국민의 뜻에 순명해 분연히 떨쳐일어난 이언주 의원은 과연 34일 동안 '제2의 안풍'의 진원지 호남에서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수도권까지 '기적의 진격'을 펼쳐낼 수 있을 것인가. 패권주의 아래에서 신음하던 국민들을 해방시키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대관'할 수 있을까.

    이언주 의원은 "내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만약 내 역할이 있고, 대한민국 정치 변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향후 34일 동안 그가 펼쳐낼 '역할'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