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한국당·親文 세력 동시에 '발끈'…후폭풍으로 될 일도 안될 우려
  •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바른정당 원외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이종구 정책위의장이 말을 유승민 후보와 김무성 의원이 듣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바른정당 원외당협위원장 간담회에서 이종구 정책위의장이 말을 유승민 후보와 김무성 의원이 듣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대선 완주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수면 위에서 공개 논의되고 있다.

    당의 공식 대선 후보의 진퇴를 둘러싼 논의가 여과 없이 '공론화'되고 있는 것은 공론화를 하는 측이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더욱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반사 효과를 보는 상대 정당 측의 여러 리액션을 불러일으켜 가뜩이나 엉켜 있는 대선판만 한 가닥 더 꼬이게 할 뿐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바른정당 이종구 정책위의장은 16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사견을 전제로 "(투표용지가 인쇄되는) 4월 29일까지 기다려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유승민) 후보에게 사퇴를 건의해야 한다"며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원총회를 열어 당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롭거나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친박패권에서 친문패권으로의 패권교체 저지'를 주장하는 바른정당 의원들 사이에서 일방향 '드롭(후보 사퇴)'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힘겹게 맞서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구상이 힘을 얻고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바른정당 의원 20여 명은 앞서 14일에도 조찬 회동을 갖고 유승민 후보의 후보등록 여부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의원은 심지어 유승민 후보가 후보등록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승민 의원은 이튿날 과천 중앙선관위를 직접 찾아 후보로 등록하면서 "사퇴는 없다"고 일축하고 "그런 (사퇴) 이야기를 할 것이면 실명을 대고 떳떳하게 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후보등록 바로 다음날에 당의 정책위의장인 이종구 의원이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후보의 진퇴 문제까지 공론화한 것은 정치권에 던지는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본지와 접촉한 정치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이야기가 비밀은 아니지 않았느냐"면서도, 공론화가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이루어진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구 여권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바른정당 내부에서 유승민 후보의 대선 완주에 회의론이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라면서도 "29일까지 기왕 기다려볼 것이었으면 그 때까지는 말도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유승민 후보 입장에서는 물러나기가 더 어렵게 됐다"고 혀를 찼다.

    유승민 후보는 전날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후보등록을 마친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바른정당을 창당한 직후 쓸데없이 바깥에 힘을 기울이다가 오히려 전력이 약화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것이 사실 유승민 후보 측의 솔직한 인식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영입에 당의 명운을 걸었다가, 다시 그 다음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끌어들이려 하고, 심지어 김무성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의 대선불출마 번복설까지 나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유승민 후보에게 전력을 실어줬더라면 지금 당과 후보의 지지율이 이 지경까지 떨어졌겠느냐는 게 유승민 후보 측의 속내다. 대권 도전이라는 것은 정치인의 필생의 꿈이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다보니 한 번 뛸 때 제대로 뛰지 못하게 되면 그 회한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당의 공식 후보로 선출되고 후보 등록까지 마쳤는데 다시 진퇴 문제가 공론화된다는 것은, 유승민 후보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지상욱 유승민캠프 대변인단장은 이날 저녁 예정에 없던 취재진과의 만남을 잡아 "이 시점에서 사퇴를 운운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언동"이라며 "정치 이전에 기본이 안 된 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이종구 의장의 '공론화'에 강력 반발했다.

    이달 29일까지 공론화를 하지 않고 물밑에서만 조심스레 논의했더라면, 정말 지지율이 정체됐을 경우 차라리 유승민 후보 본인이 '대승적 결단'을 통해 스스로 '드롭'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후일을 기약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론화가 먼저 되고 의총이 열리는 등 소란이 일면서 마치 끌려내려오듯이 대선 후보를 그만두게 되면 정치인생에 치명상이 된다는 점에서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또, 이렇게 되면 29일까지 지지율 정체가 계속되더라도 "그게 다 누구 탓이냐"라는 '책임론'이 남게 된다. 후보 본인의 자질 부족인지, 진퇴론을 공론화하며 후보를 흔든 당의 동료 의원들 때문인지 서로 탓을 하기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더라도 아름다운 '드롭'은 불가능하게 된다.

    공론화 과정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히 유승민 후보가 물러나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밀어주자는 것이기 때문에, 바른정당 내부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파장이 일게 되는 것이다.

    이종구 의장은 이날 오찬간담회에서 "마라톤도 42㎞를 뛰지만 35㎞까지 버티면 계속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서 드롭한다"며 "29일이 35㎞ 지점인데, 드롭해서 판을 바꿀 수 있다면 사퇴도 고려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며 "바른정당·국민의당 그리고 자유한국당 내의 비박계 의원들까지 100여 명의 의원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가야 승산이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집권 저지를 목표로 삼는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없고,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공론화된 후폭풍이 더 큰 것이고, 오히려 더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박빙의 가상 양자 대결을 이어가고 있는 문재인 후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시나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간 바른정당이 한국당과의 연대 카드는 버렸고, 국민의당과의 연대 여부만 남아 있다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 솔솔 흘러다녀도 '설마, 설마…' 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에서 들어도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다. 특히 한국당 내의 비박계 의원까지 거론했기 때문에 민감성은 더욱 커진다.

    섣부른 공론화의 부작용은 이미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친문(친문재인) 성향 네티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조직적으로 이종구 의장의 발언을 매도하면서, 유승민 후보의 완주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당도 나섰다. 한국당 정준길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중진의원이 기자들을 만나는 사석에서 해서는 될 말과 안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 것은 보수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바른정당은 이번 일을 깊이 반성하고 보수대단결에 대승적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으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