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누구에게 키스할까! 누가 나를 열렬하게 만들 수나 있나. 누가 미치도록 키스하고플까. 내가 하지. 왜? 이젠 나만을 위한 시간이잖아? 그러니 나를 위해 내가 키스하겠다. 내 손에, 내 손가락에, 내 팔뚝에… 내가 나를 키스하지! 내가, 나를, 키스나 하지."

    연극 '미친키스'에서 남자 주인공 장정이 여동생의 시신 앞에서 절규하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에서는 고통과 허무함, 무기력함이 그대로 묻어났으며, 나아가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미친키스'가 조광화 작가 겸 연출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조광화展(전) '남자충동'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1998년 초연된 이후 2007, 2008년 공연됐으며, 현대인들의 관계에서 오는 고독과 사랑에 대한 왜곡된 열정, 집착과 파멸을 그린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흥신소 직원인 장정은 그와 결혼을 약속한 신희와 소중한 여동생 은정, 새로운 여인 영애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자신과 그녀들의 삶을 파멸로 몰아간다.

    조광화 연출은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티오엠(TOM) 1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몇년 사이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지독한 사랑, 격한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많았지만 지금은 농도 짙은 에너지를 힘겨워하는 시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미친키스'는 그간 엄기준, 김소현, 김무열, 박호산 등 인기 스타들이 출연했으며, 이번 공연 역시 화려한 캐스팅이 눈에 띈다. '장정' 역은 '폴 포 러브' 이후 7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배우 조동혁과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깊은 감성 연기를 보여준 이상이가 맡는다. 

    극중 장정과 얽히게 되는 두 여인 '신희'와 '영애'는 각각 전경수-김두희, 정수영-김로사가 연기한다. 사랑을 갈구하는 영애의 남편인 대학교수 '인호' 역은 손병호-오상원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는 장정의 여동생 '은정'은 신예 이나경이 열연을 펼친다. 

    조동혁은 "조광화 연출의 작품이라 결정했다. 7년 전 '폴 포 러브'에서 함께 작업했는데, 또 불러주면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했다"며 "3월에 스케줄이 많아 연습량이 부족해 간신히 첫 공연을 올렸다. 지금도 혼나면서 고민하고 있다. 계속 발전하는 좋은 장정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하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이상이는 "캐스팅 제안을 받고 장정의 허무함과 외로움에 공감을 많이 했다. 조광화 연출과 호흡하면서 많이 배우고 재미있게 공연에 임하고 있다"며 소감을 전했다.

  • 손병호는 전작 '남자충동'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철없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이씨'를 연기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성공한 대학교수로 겉보기엔 부족함 없어 보이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허무함 속에서 자기 속의 열정을 찾으려는 '인호'로 분한다.

    "대본을 읽고 에로틱한 느낌을 받았다.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되는 무대인 것 같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 고독에 대한 이야기다. 관객들이 바라볼 때 5명의 배우들 눈물 중에 자신과 맞닿은 눈물이 있을 것이다."

    조광화 연출 연극의 특징인 음악과 안무의 적절한 효과가 빛을 발한다. 황강록 작곡가의 음악은 연주자 김미미에 의해 극 전체를 휘감으며, 안무가이자 배우 심새인으 초현실적인 캐릭터 '히스'로 등장한다. '히스'는 주로 대사보다는 안무를 통해 인물들이 겪는 내적 갈등이나 고민 등을 극대화시켜 표현해준다.

    조 연출은 "히스나 악사의 역할을 부각해 분위기와 이미지, 스타일에 방점을 찍어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배우들은 각자의 성격과 캐릭터, 기질에 맞게 자연스럽게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아코디언 음악은 쿵짝쿵짝 경쾌하고 신나게 들리지만 역설적으로 쓸쓸하다. 이중적인 음감을 이용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극중 인물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는 조광화의 극적 장치이자 그가 가지고 있는 연출가로서의 고집이다. "예민한 작품이라 매일 배우들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극이 많이 흔들린다. 배우들이 좀 더 집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길 원했고, 그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바로 맨발이다."

    연극 '미친키스'는 5월 21일까지 공연한다.

    [사진=프로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