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심정으로 "단디하겠다, 밀어주이소"와는 대조적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1일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국민승리유세에서 부산시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1일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국민승리유세에서 부산시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국회·정당출입기자들끼리의 모임이 있었다. 한 경제지의 정당출입기자에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니 부산이라 답했다.

    "부산 출신인 줄은 전혀 몰랐다. 부산 사람들은 사투리를 못 떼던데…"라고 의아해하니, 씩 웃으면서 "부산인데예~" 하는데 영락 없는 부산 사람이었다.

    부산말이 떼기도 어렵지만 굳이 떼려고 하는 경우도 드문 것 같다. 무뚝뚝한 듯 하지만 특유의 정감이 어려있기 때문이다. 서울말로 정색하고 "죽여버리겠다"고 하면 형법상 협박죄도 당장 성립이 될 듯 하지만, "죽이삔다"고 하면 되레 부드럽게(?) 다가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일까. 부산말이 부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는 경우도 많다.

    상대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졌을 때, 롯데 팬들이 내지르는 "마!"는 뭐라 한마디로 번역(?)하기조차 어렵다. 부산 연고팀을 응원하는 팬들만이 쓸 수 있는 특권이다. "떽!"이나 "뭐여", "좀(쫌)!" 등이 다른 팀 팬들에 의해 개발돼 쓰이고 있지만, '원조'의 미묘한 뉘앙스를 따라갈 방법이 없다. "아주라"도 같은 사례일 것이다.

    이처럼 정감이 어려 있는 부산말이기에, 부산을 고향으로 자처하는 두 유력 대권주자에게는 더욱 각별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번 대선 캠페인을 치르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국민의당 안철수 두 후보는 각자 나름 결정적인 국면에서 고향인 부산말을 사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부산을 찾을 때마다 "단디하겠다"며 "밀어주이소"라고 호소했다. 첫 등장은 지난달 28일 국민의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였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단디하겠다, 밀어주이소" 호소에 향우(鄕友)들의 응답이 있었다고 본 것일까. 본선에 진출한 지금, 다시 한 번 이 마법의 부산말이 등장했다.

    안철수 후보는 21일 저녁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열린 국민승리유세에서 "부산시민 여러분, 압도적인 지지로 나를 선택해달라"며 "단디하겠다, 화끈하게 밀어주이소"라고 외쳤다.

    사용된 대목을 보면 경선이든 대선이든 절박한 순간이었다. 경선 초창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입지야 지금 돌이켜보면 비참했던 시절이었다. 완전국민경선을 거치며 "안철수의 시간"을 맞이한 지금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디하겠다, 밀어주이소"는 비참했던 그 시절, 고향주민들을 향한 절박한 호소였다.

    본선에 진출한 지금, 이 말이 다시 등장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공교롭게도 지난 18~20일 설문을 거쳐 이날(21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11%p나 뒤처졌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일 강원 원주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두 팔을 번쩍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원주(강원)=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일 강원 원주 유세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두 팔을 번쩍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원주(강원)=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자신의 고향인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10%p 뒤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되는데, 아무튼 안철수 후보가 다시 한 번 절박한 심정으로 마법의 주문처럼 부산말을 사용할 계기가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부산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 지난 2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후보는 아들 준용 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취업 의혹과 관련해 "부산 사람들은 이런 일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며 "마, 고마해"라고 말했다.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감어린 부산말이 졸지에 대선후보 검증을 피해가기 위한 용도로 변모했다. 아무리 "마!"라고 외쳐도 발빠른 주자가 출루했을 때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지 않을 수 없듯이, 유력 대권주자가 출마했을 때 가족에 대한 검증은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는 정당과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는 여기다 대고 "마, 고마해"라고 한 셈이다. 관중석의 팬이 그랬으면 혹 모르겠으되 문재인 후보는 검증을 받아야 할 당사자다. 주자가 견제구를 받아 귀루한 뒤에 마운드의 투수를 향해 "마, 고마해"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같은 당의 문희상 의원조차 지난 17일 의원회관에서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에서의 검증은 '마, 고마해'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갈 수 없다"고 했을 정도로 부적절한 언사라는 지적이다.

    "마, 고마해"라고 해서 혹 의혹이 잦아들었으면 모르겠으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문재인 후보의 "마!"가 있은지 20일이 흘렀건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충북혁신도시의 한국고용정보원을 방문하려 했지만, "원장이 출장 중"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가보지도 못했다.

    자연인 주승용 씨가 혼자 사사로운 일이 궁금해서 찾아가겠다는 게 아니라,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대표이자 그 대의대표들이 40명 모여있는 제3교섭단체의 원내대표로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안을 알아보러 가겠다는 데 이런 식으로 만남이 거절당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매우 의아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5일 일부 인터넷매체가 "문재인 아들 특혜채용 논란은 허위"라는 식의 기사를 송출하자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 일괄 이의신청을 했다.

    이 이의신청은 거의 전부 인용돼 K뉴스·O뉴스 등 2개 인터넷매체가 경고 조치를 받고, 21개 언론사가 주의 조치를 받았다. 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이를 설명하면서 "문재인 후보 아들의 부정취업 특혜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마, 고마해"의 위상만 졸지에 이상해졌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절박한 심정으로 고향주민들을 향해 "나를 도와달라, 지지해달라"며 고향말을 사용하는 것과, 검증에 몰려 있을 때 그 검증을 회피하기 위해서 고향말을 사용하는 것. 과연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고향 부산시민들은 부산말의 이러한 상반된 용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