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사드 비용 10억 달러' 관련 공세는 '팩트' 안중에 없는 모습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8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난 토론에서 인용한 OECD 통계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8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난 토론에서 인용한 OECD 통계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19대 대선부터 후보자 토론회에서 부정확한 자료 인용이나 거짓말을 가려내겠다며 각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시작한 팩트체크를 일부 후보가 악용하면서 오히려 유권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최대의 논란에 휩싸인 공약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과 관련해, OECD 통계자료 인용을 놓고 지난 토론회부터 시작됐던 공방전이 팩트체크로 수습되기는 커녕 되레 연장전을 야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8일 KBS·MBC 양대 공영 지상파 방송을 통해 생방송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지난 번 토론 때 심상정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공무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며 OECD 평균은 21%인데 우리나라는 7.6%라고 했는데, 그 뒤 언론사 팩트체크를 보면 그게 틀리다고 나왔다"고 질타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사립학교 교원이 문제인데 그 숫자를 어떻게 하느냐가 변수"라고 시인하면서도 "내가 제시한 숫자는 잘못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엉뚱하게도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의 문답 과정에서 "팩트체크에 의하면 OECD 통계가 기준은 똑같은데 일부 세부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더라"며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더라도 10% 남짓이라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심상정 후보는 "따로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그럴 것 같다"고 화답했다. 정작 지난 번 토론 상대방이자 이번 토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안철수 후보의 발언권이 봉쇄된 상황에서, 두 후보끼리 북을 치고 장구를 친 것이다.

    '연장전'의 발단이 된 공방전은 지난 25일 실시된 종합편성채널 JTBC 토론회에서 시작됐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당시 "OECD 국가가 공공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있다"며 "OECD 평균은 21%인데 우리는 7.6%로 3분의 1밖에 안 된다"고, 공공 부문 일자리 대폭 창출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순수 공무원만 놓고 보면 OECD보다 적게 보일 수 있지만, 공기업이나 위탁민간기업이 다 빠져 있는 숫자"라며, 재정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조세부담률이 크게 낮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도 문재인 후보는 다른 후보자와의 토론 순서에서 뒤늦게 나서서 "OECD 통계는 똑같은 기준으로 한다"며 "OECD 평균은 21.4%이고 우리나라는 7.6%인 것"이라고 끼어들었었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8일 방송된 대선후보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니계수 인용에 대해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8일 방송된 대선후보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니계수 인용에 대해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이후 복수의 유력 매체가 사실 검증, 이른바 '팩트체크'에 나선 것을 보면, 결론적으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적이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에 가입한 선진국가는 국가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일자리는 공공 부문 일자리로 본다. 공공의료 병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 등도 공공 부문 일자리가 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행정자치부는 공무원·군인과 서울대 등 비영리 공공기관, 사회보장기금 단체만 공공 부문 일자리로 집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OECD 국가가 공공일자리를 대폭 늘리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은 2010년 9만 명의 공무원을 감축했으며, 프랑스의 신임 대통령으로 유력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공무원 수를 12만 명 감축하겠다"고 공약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팩트체크가 옳으니 그르니 하면서 서로의 입장에 따라 견강부회하고, 잔가지를 가지고 연장전을 벌이는 행태가 연출된 것이다. 지난 토론에서 누가 옳은 지적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가려지지 못한다면, 팩트체크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정 후보는 팩트체크를 직접 자료를 들어 반박하기 곤란한 내용에 대해 신뢰성을 폄하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날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면 최고로 나빴던 때가 노무현정권 때"라며 "이명박~박근혜정권을 거쳐 현재 지니계수가 2002년도와 비슷하게 내려왔다"고 밝혔다.

    그러자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이 발언을 한 당사자인 홍준표 후보가 아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문답에 앞서 "홍준표 후보가 이야기했던 지니계수는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니계수가 구체적으로 어떻다라는 자료와 근거를 들어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팩트체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한 마디만 던짐으로써, 마치 홍준표 후보가 무슨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신뢰성에 흠집을 내는 전술을 사용했다는 분석이다.

    토론회 직후 복수 매체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발언은 큰 흐름에서 보면 사실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나타난 지니계수 통계를 살피면,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노무현정권 5년 동안 지니계수는 2003년 0.283, 2004년 0.293, 2005년 0.298으로 점점 나빠지기만 하다가, 마침내 집권 4년차인 2006년에는 0.305로 0.3의 벽을 깬 뒤 2007년에는 0.316에 이르렀다.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8일 방송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사드 비용 관련 가정적 공세에 선을 긋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28일 방송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사드 비용 관련 가정적 공세에 선을 긋고 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이러한 흐름은 이명박정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반전됐다. 이명박정부 3년차인 2009년 0.320을 찍은 지니계수는 이후 하락세로 반전돼 2010년 0.315, 집권 마지막해인 2011년에는 0.313으로 내려갔다. 노무현정권으로부터 인계받았던 수치(0.316)보다 낮아진 것이다.

    박근혜정부 들어서서는 지니계수는 첫 두 해(2012~2013년) 각각 0.310과 0.307로 낮아졌다가, 집권 3년차인 2014년 0.308로 반등하는 등 등락의 기미를 보였다.

    이를 놓고 보면 지니계수의 흐름이 최고로 나빴던 때는 노무현정권 때라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의 맥락은 틀리지 않다. 노무현정권 때에는 한 해로 거르지 않고 지니계수가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첫 3년에 하락세가 지속됐지만 흐름이 둔화됐다. 초창기에는 이전 정권 경제정책의 실정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집권 중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고 악화되던 양극화의 흐름을 되돌려, 결국 집권 마지막해에 이전 정권에서 인수받았던 수치보다 나은 지표를 기록했다면 이것을 "최고로 나빴다"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팩트체크를 상대 후보 발언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활용한 특정 유력 후보는 되레 자신의 발언 순서에는 이미 밝혀진 팩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10억 달러를 내더라도 사드를 찬성하느냐"며 "10억 달러를 만약에 부담하게 된다면, 국회 비준 절차 없이 합의대로 이행해야 한다고 보느냐"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밝혀진 팩트와 다르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국방부에서 언론을 상대로 설명한 바에 따르면, 한미 간에는 사드 운용의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기로 공식적으로 합의하고 약정 문서까지 만들어 교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이 배치한 사드 체계 장비와 운용·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원칙을 담은 약정서를 작성하고, 이에 국방부 국장급 인사와 주한미군사령부 기획참모부장이 각각 서명했다. 이 약정서는 국문과 영문으로 각각 작성돼 군사기밀 문서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정서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관련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상위 개념인 협정을 참조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부지와 기반시설만 제공하면 되며, 무기 체계의 전개 및 운용·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미국에서 내기로 이미 다 합의가 돼 있다"며 "국방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우리가 부담할 일이 없다"고 단언해, 문재인 후보의 공세에 말려들지 않았다.

    사실과 다른 가정에 기반한 공세에 보다못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도중에 나서서 "한미 간에 이미 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10억 달러를 낼 일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 출신이라 뭔가 다른 것을 노리고 친 것"이라고 즉석 '유승민발(發) 팩트체크'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