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安, 누가 돼도 정권교체' 절망 속 한 줄기 빛, 크게 보였을 수도
  • ▲ 구 여권 의원 12인이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구 여권 의원 12인이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구(舊) 여권 의원 12인이 바른정당을 집단탈당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 선언하기로 함에 따라, 이들이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이 시점에 왜 이렇게 무리한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을 감행했는지 시점 선택의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표현도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일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선을 불과 일주일 남긴 가운데 명분없는 이합집산이 일어난 것은 국민들이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가능성도 없어보였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무생물이어야 마땅할 시체가 벌떡 일어나 좀비마냥 휘적휘적 걷기 시작한 것 같아, 되레 "정치는 생물"이라는 금언과 배치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탈당선언을 한 당사자들도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수모를 겪게 될 것을 예상치 못하지는 않았을 터다. 그 자신 낯짝을 들고다닐 처지가 되는지 의심스러운 정치인으로부터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자괴감도 들 것이다.

    여러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대선 선거일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으니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지 않고 '제3지대'에 무소속으로 남아있으면서, 계속해서 반문(반문재인) 3자 단일화를 추진하고 압박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또,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가 되는 상황이다. 새로 출범한 정권이 역점추진사업을 입법하려면 원내 제세력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에, 33석 바른정당의 몸값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운신을 좀 더 신중히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국의 상황이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순천자는 존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는 옛말대로 흐름에 몸을 맡겨 거취를 유연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민심을 거스르고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행태를 취했다. 이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누가 봐도 명분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봐도 이상한 행태를 왜 취했을까.

    정치는 명분과 실리다. 명분이 없는 정치 행동을 굳이 결행했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실리가 있을 것이다. 그 실리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실리가 이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지지율을 상승세로 견인해온 게 이들 12인의 바른정당 탈당과 지지 선언을 이끌어낸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 ▲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복도로 나와 미소짓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탈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복도로 나와 미소짓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혹시 홍준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홍준표 후보가 당선돼서 자유한국당이 집권여당의 지위를 되찾을지도 모른다고 보고, 숟가락을 얹기 위해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도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운신을 했다는 분석이다.

    홍준표 후보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지가 여론조사전문기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하루 동안 설문을 거쳐 30일 보도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준표 후보는 20.8%의 지지율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21.5%)를 오차범위 내에서 추격하기도 했다.

    만에 하나 이러한 상승세가 계속되는 한편 지금까지 그러한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30% 중반대로 내려앉는다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전통적인 야권 성향 표심을 잠식하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역전승을 이루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는 상상의 나래는 펼쳐볼 만하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표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공고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서로의 지지율을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의 양상이었지만, 앞으로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홍준표 후보가 한 자릿수라는 워낙 낮은 지점에서 대선 캠페인을 시작했기 때문에, 흩어졌던 지지층이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일정 지점까지의 지지율 상승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15~20% 선을 돌파하기 시작하면 지지율 상승 추세는 둔화될 수밖에 없고, 어느 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지지율 상승에 한계에 봉착하는 상황이 온다.

    그럼에도 현재의 지지율 상승 기조가 계속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란 법은 없다. '짝사랑'의 상대방은 실제보다 더욱 예뻐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구 여권 인사들은 지금 집단적인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다보니,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서 10%대로 올라온 것도 상대적으로 큰 희망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탈당과 분당, 창당과 합당을 반복해온 구 야권계 정당의 인사들과 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의원들은 체질이 다르다. 온실이 아닌 곳을 배겨내지 못해내는 체질이다.

    그런데 대선 국면은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다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정권이 교체되고 구 여권은 10년 만에 '시베리아' 야당으로 다시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

    절망감 속에서 현실부정을 거듭하고 있던 찰나, 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 올라 2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게 되자 '혹시 이러다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될만도 하다.

  • ▲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2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집단탈당 문제를 함께 모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2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집단탈당 문제를 함께 모의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빚더미에 올라앉은 사람이 토요일 저녁 8시가 다가오면, 흡사 구매 마감시한에 걸릴까 안절부절하면서 인근 복권방으로 달려가 로또를 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구매한 로또는 뭔가 반드시 당첨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반면 다른 지점에서 운신의 동기를 찾으려 하는 견해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까지는 어렵다는 것은 이미 널리 퍼져있는 보편적 인식이다. 한국당 내에서조차 당선을 바라고 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공공연히 있는데, 하물며 보다 객관적인 당 밖의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탈당 의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들의 급작스런 바른정당 탈당과 한국당 복당 신청은, 대선 이후 펼쳐질 한국당의 당권 경쟁과 결부돼 있다는 시각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이후 당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친홍(親洪)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려는 홍준표 후보와, 당권 탈환에 절치부심할 친박(親朴)계 사이에서 일대 결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진작부터 회자되고 있었다.

    이번에 탈당한 바른정당 의원들 중에서는 홍준표 후보와 친분이 두터운 의원들이 많다. 홍준표 후보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에 원내대표단에서 호흡을 맞춘 사람들도 널리 포진해 있다.

    대선 이후의 당권 경쟁을 노리고 우호 세력을 확충하려는 시도였다면, 당내 친박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복당 심사를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설명이 된다.

    박근혜정권을 이 지경으로 망쳐놓은 원죄가 있음에도, 홍준표 후보를 대선을 치른 뒤 토사구팽하고 후안무치하게도 다시 당의 전면에 나서려 하는 진박(眞朴) 세력이 당내 지분 희석을 막기 위해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대선 선거일이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가능성은 여러 갈래이지만, 이후 흐름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판명나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바른정당 탈당 의원 12인의 탈당 선언문 전문을 통해 그 행간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 ▲ 자유한국당 박대출 이우현 김태흠 이완영 의원이 2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오전 바른정당 탈당을 선언한 12인 의원의 복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자유한국당 박대출 이우현 김태흠 이완영 의원이 2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날 오전 바른정당 탈당을 선언한 12인 의원의 복당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탈당 선언문 전문]

    보수단일화를 통한 정권 창출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오늘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은 보수단일화를 통한 정권 창출을 위해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1월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걸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는 의기로 바른정당을 창당하였습니다. 그런 저희들이 오늘의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깊은 고뇌와 함께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안보가 위급하고 중차대한 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국민적 여망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울러 저희들이 그동안 추구했던 개혁적 보수의 길도 중단 없이 계속 추구하겠습니다.

    국민여러분!

    보수를 사랑하고 성원하시는 많은 국민들께서 "보수의 분열은 있을 수 없으며, 친북좌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보수는 단결해야 한다"는 준엄한 요구를 하셨습니다. 이에 저희들은 유승민 후보에게 보수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의총으로, 당대표권한대행의 면담을 통해, 그리고 다수 의원 의견의 형식 등 그간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더욱이 어제는 3인의 공동선대위원장단이 유승민 후보를 만나 최종적으로 보수단일화를 설득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7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홍준표 후보의 승리를 위해 보수가 대통합해야 합니다. 친북좌파패권 세력의 집권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보수궤멸'을 운운하는 친북좌파 패권 세력에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기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홍준표 후보와 함께 지금까지 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지켜온 보수 세력의 집권을 위해 지나간 과거와 서로에 대한 아픈 기억은 다 잊고 대동단결하기를 이 자리를 빌려 촉구하는 바입니다. 

    오늘 바른정당을 탈당한 저희 13명은 홍준표 후보와 보수의 집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