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왜 다시 전쟁 불렀나

모든 분열을 끝내기 위한 분열, 모든 적폐를 끝내기 위한 적폐

적폐는 적폐청산 불가능, 대선 승리 이유만으로 보복하려 한다면…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5.09 06: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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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부터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 시도라는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의회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마침내 5·9 대선 선거일의 날이 밝았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로부터 어언 반 년여, 극심한 국론분열과 혼란 끝에 우리 국민은 하나의 변곡점에 도달했다.

출마한 모든 후보들이 자신이야말로 국론분열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룰 적임자이며, 적폐를 청산할 적임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그대로만 된다면 누가 대통령으로 뽑혀도 통합된 국민, 적폐없는 새 세상에서 살 수 있을 듯 하니 국민으로서는 홍복(洪福)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일 아침까지 찍을 후보를 결정치 못한 듯한 국민이 많아보이는 것은 왜일까. 본능적으로 국론분열이 끝나지도, 적폐가 청산되지도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개전하자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으로 유명한 영국의 SF 작가 조지 웰스는 신문 기고를 통해 이 전쟁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유럽 열강은 반 세기 전부터 끝없이 자잘한 전쟁들을 치르고 있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시작으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파쇼다 사건, 보어 전쟁, 러일 전쟁, 모로코 위기, 발칸 전쟁 등이 불과 몇 년 간격으로 계속됐다.

영국인 웰스는 이 모든 전쟁 책동이 다 제국주의 세력인 독일 때문에 일어난다고 비판하며, 독일제국주의를 이번 전쟁을 통해 완전히 끝장내, 모든 전쟁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이번 선거를 통해 모든 분열을 끝장내고, 모든 적폐를 끝장낼 수 있을까.

유럽 열강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끝난지 불과 20년 만에 더욱 비참하고 참혹한 새로운 세계대전에 돌입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제국주의 독일을 쳐부순 영국·프랑스 그 자신들도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니, 어떻게 모든 전쟁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었겠는가.

마지막 인도 총독으로 널리 알려진 아치볼드 웨벨 경은 1차대전이 종전한 뒤, 같은 제국주의 세력이면서도 단지 승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패전국 독일의 식민지를 모두 빼앗고 무거운 배상금을 물리는 등 가혹한 보복으로 일관한 베르사유 조약을 강요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평화를 끝내기 위한 평화"가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같은 이치로, 국론분열을 끝내고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그 대선후보 자신이 실은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거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그 후보 스스로가 적폐라면 모든 분열을 끝내고 모든 적폐를 청산한다는 것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모든 분열을 끝내기 위한 분열" "모든 적폐를 끝내기 위한 적폐"처럼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작금의 국론분열은 친박패권주의 세력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국정을 농단했기 때문인데, 또다른 패권주의 세력이 국론분열을 끝장낸다는 것은 언어도단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분열세력이 분열을 끝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국정농단에 결정적으로 격분하게 된 계기는 대입 부정비리부터 시작해 온갖 추악한 짓을 서슴지 않은 최순실 씨와 그의 딸 정유라 양이 "돈도 실력"이라며 "니네 부모를 원망하라"는 가당치 않은 말을 내뱉은 탓이 크다.

그런데 그로 인해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대선후보들의 자녀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다. 만일 특정 대선후보의 자녀가 입시비리에 버금가는 취업비리나 기타 비리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끝내 명명백백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은 적폐 문제에 있어서는 또다시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더라도 여소야대 국회에서는 대통령 자녀의 비리 의혹을 끊임없이 국회 상임위에서 추궁할 것이다. 또, 기회를 보아 국정조사나 국회 청문회를 추진하려 할 것이다.

대통령 자녀의 문제는 집권여당 원내지도부가 재량껏 양보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여야 간의 극한 대치가 불가피하다. 핵심 추진 입법 과제가 발목이 잡혀 있는 가운데, 대통령은 국회를 소리높여 비난하며 모든 것을 '국회 탓'으로 떠넘긴다. 우리 국민이 지난 몇 년간 봐왔던 모습들이 그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하물며 본질은 같은 적폐인 주제에, 단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이유로 패배한 적폐에게 청산이라는 보복의 칼날을 들이민다면, 나라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이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입시비리든 취업비리든 본질은 적폐로 다르지 않다. 적폐가 모든 적폐를 끝내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적폐를 끝내기 위한 적폐"라는 말처럼 허망한 말이 달리 또 있을까.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선전포고됐을 때, 각국의 왕궁과 의회 앞에는 대규모의 군중들이 몰려나와 환호를 질렀다. 그 환호가 환멸로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칫하면 이번 5·9 대선이 진정으로 국론분열이 종식되고 진심으로 적폐청산을 원했던 국민들의 바람을 정면에서 배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같은 우려를 기우(杞憂)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현명한 한 표 행사에 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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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 시도라는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의회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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