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민주 우파, 성찰의 시간을 갖자

     보수라는 이름을 자임하고 그 이름으로 불려온 정치-사회 세력과
    그 세력을 대표하는 세대(노년층)가 이 이번 대선에서
    '진보'를 자임하는 세력과 기타 상당수 비(非)좌파 및 중도 유권자들에게 크게 배척당했다.
    이는 보수 정치권과 보수 시민사회의 정치-사회-문화 영향력이
    한 층 더 심대하게 실추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태는 가까이는 박근혜 정권의 '게이트'와 통치력-리더십의 결함이 부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고, 멀리는 1987년의 ‘민주화 이후’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보수 세력이 보여준 철학의 빈곤, 신념의 박약, 위기의식 부재(不在), 싸울 줄 모르는 체질, 소통부족, 안일함, 웰빙 체질, 국가관리-정권관리상의 허점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보수 정치권과 보수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아직은 급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특히 보수 정치권은 그들 자신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으로선 우선 보수 유권자들부터라도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무(慰撫)하고 격려하는 회복기를 가져야 할 때일 것 같다.

  •  그러나 보수도 이제는 하나가 아니다.
    60대 이상의 보수는 이번에 호되게 당한 보수다.
    반면에 안철수, 유승민 등으로 분산된 40-50대 '이탈 보수'는 당했다기보다는
    분가해 버린 보수다. 따라서 이들 '이탈 보수'는 마음의 상차가 그렇게 클 이유는 없다.
    그러면서도 '이탈 보수' 표도 사표(死票)가 되었기 때문에 그 나름의 허전함은 있을 것이다.
    이래서 이들도 치유해야 할 부분이 없을 순 없다.

     치유 과정은 받아들이는 자세로부터 시작한다.
    초래된 현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횡액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이 만든 실패라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특히 보수 정치권이라는 사람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자성해야 한다.
     탈북인사 이애란 박사의 소감을 들어보자.

     "며칠이지만 자유한국당에  합류해 선거를 도우면서 기절할 뻔 했고 엄청 싸웠습니다.
    목에 깁스하고 짜증만 내면서 대변인실이라는 데는 칼퇴근에 휴일은 출근도 하지 않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거대하기만 하고 느려터진 배부른 돼지들만 모인 곳에서
    저는 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렇게 보수의 자화상을 돌아볼 때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알아낼 수 있고,
    그걸 알아내면 치유의 대상을 특정할 수 있다. 이것만 특정되면 그 다음부터는
    치유의 방법을 차근차근 밟아 가면 된다.
    자체반성, 과감한 자정(自淨)과 시정, 회복과 재건, 새 출발이 그것이다.

    이 치유 과정은 바닥을 칠 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유턴의 두 단계로 구성된다.
    바닥을 칠 때까지는 고통을 감수하는 과정, 다시 올라오는 것은 절망을 딛고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역설적 과정이다.

     자유 민주 국민은 이제 침잠(沈潛)하자. 그리고 치유하자.
    치유를 거치면 보다 성숙하고 성장한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인생과 역사 자체가 이 과정이다.
    무엇이 잘못 됐기에 이런 업보가 있었던 것이다.
    이걸 직시하고 극복하는 치유 없이 한국 자유 민주 진영의 소생은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실패를 잘 새김질 하면 새로운 희망이 싹틀 수 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2017/5/11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