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취임 한달… '성공한 대통령' 향한 '청신호'는 무엇?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의 자신의 책상 앞 라운드 테이블에서 참모들의 조언을 들으며 서류에 서명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의 자신의 책상 앞 라운드 테이블에서 참모들의 조언을 들으며 서류에 서명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헌정 사상 첫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 없이 임기를 시작했음에도, 첫 한 달 동안 여러 파격적 행보를 선보이며 지지율 상으로 순항하는 중이다.

    다만 임기 극초반의 지지율이 '성공한 대통령'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41.4%에서 시작한 지지율을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 초반 과감한 개혁 행보로 94.0%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다.

    1997년 5월 소통령으로 불렸던 차남 현철 씨가 구속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고, 지지율은 임기 말인 1997년 12월 7.0%까지 추락했다. 비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87년 체제 성립 이후로 '성공한 대통령'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념과 세대·지역을 뛰어넘어 국민 모두로부터 처음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가.

    첫 한 달 간의 행보가 즉자적으로 당장의 지지율에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향후 5년의 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유의미한 행보였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9명의 대통령을 깊이 연구한 국내 대통령학의 최고권위자 함성득 박사는 일찍이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이라는 책을 통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을 도출했다.

    새 정부의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취한 여러 행보, 그리고 취임선서로부터 일관해서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들이 함성득 박사의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을 투영해 읽으면 명료하게 다가온다. 역대 대통령들의 육성 회고를 포함한 풍부한 통치 사례가 담겨 있어 더욱 무게가 실린다.

    ◆집무공간 광화문 이전… 성공한 대통령 '청신호'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행한 취임선서에서부터 강조했던 대통령 집무공간의 광화문 이전을 살핀다. 함성득 박사에 따르면, 이야말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발자국이다.

    청와대는 중세 궁궐의 형식미학만 빌려쓴 전근대적인 통치 건축의 전형이다. 대통령관저와 집무실, 비서와 보좌관들의 공간 사이의 동선이 서로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할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업무효율이 좋지 않다(40p)는 게 함성득 박사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함성득 박사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집무실을 광화문 동화빌딩으로 옮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 자리로 이끌어낸 청계천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대통령의 수신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호 상의 이유로 번번이 거부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계속해서 대통령이 호출하면 비서진들이 신하 입궐하듯 집무실로 들어가 보고하는 봉건적 공간시스템으로 남았다.

    하노버공 조지 1세가 1714년 영국 왕위를 계승했을 때, 국왕이 신하들이 있는 곳(의회)으로 출근해 정치를 논의해야 하는 제도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청와대 업무 시스템은 300여 년 전의 영국만도 못한 셈이다.

    다행히도 문재인 대통령은 비서진들이 있는 청와대 여민관을 주된 집무공간으로 삼기로 함에 따라 이와 같은 봉건적 관습을 끝장냈다. 게다가 임기 중에 광화문 집무실 시대를 열 것을 공언했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단추는 잘 뀄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전병헌 정무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전병헌 정무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의원내각형 대통령정부' 함성득 조언 통했나

    집권여당의 다선 중진의원 다수를 입각시킨 결단도 나쁘지 않다.

    함성득 박사는 의원내각형 대통령정부를 "5년 단임제의 단점인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면서 책임정당제를 강화한다"(303p)고 봤다. 미래대통령은 주요 장관의 자리를 의정경험이 풍부한 국회의원들로 충원하는 '의원내각형 대통령정부' 구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호응한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김영춘·김현미·도종환 의원을 각각 행정자치부장관·해양수산부장관·국토교통부장관·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입각시키는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이 중 김부겸·김영춘·김현미 의원은 3선 이상의 중진의원이다.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내는 등 국회에서의 의정 경험도 풍부하다.

    "대통령은 상임위를 최소한 8년 이상 경험한 재선 이상의 여당 국회의원들 중에서 장관후보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함성득 박사의 주장대로의 결과다.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은 선거를 두 번 이상 거치는 과정에서 정치적·사회적 검증이 어느 정도 이뤄지기 때문에, 대통령은 장관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걱정을 덜어도 된다"는 조언조차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의 심중을 짚어낸 것처럼 안성맞춤이다.

    ◆전병헌 정무수석 '신의 한 수'… 정무장관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 함성득 박사가 특히 '성공한 대통령'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본 것은 정무수석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중심축이 과거의 '대통령과 관료'에서 '대통령과 국회'로 옮겨졌다는 게 함성득 박사의 주장이다. 대통령이 이러한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자신의 국정목표를 얼마나 많이 빠르게 입법화했느냐에 미래 대통령의 성공이 달려있다고 함성득 박사는 보았다.

    노무현정권의 좌초 원인을 여기서 찾기도 했다. 함성득 박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정무수석을 폐지하면서 대국회 관계 등 정치적인 사안은 전적으로 여당에 맡겼다"며 "당청 간의 유기적이고 원활한 협력이 미흡했고, 정책조율 과정에서 당청 간의 혼선이 노정된 결과, 여당의 정국주도력과 갈등조정력 역시 현저히 약화됐다"(52p)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나흘 만인 지난 14일 정무수석에 전병헌 전 의원을 임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을 지낸 3선의 중진의원이다. 온화한 인품과 원만한 성격으로 여야의 경계를 넘어 두루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함성득 박사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은 듯한 인사다. 함성득 박사는 "청와대 정무수석은 다선의 전직 국회의원 출신을 임명해 대통령과 여당·야당의 원만한 관계 형성에 노력하게 만들어야 한다"(320p)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정무팀은 대통령의 뜻을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에 단순히 전달하는 비서 기능을 넘어서야 한다"며 "뛰어난 정치적 유연성으로 부족하거나 미숙한 대통령의 정치력을 보좌·보완해 궁극적으로 원만한 여야 관계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전병헌 정무수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청와대 수석비서관 인선 중 백미(白眉)이며 '신의 한 수'라고 표현할 만하다는 평이다.

    직전 정권 패망의 원인도 일정 부분 정무수석에 있다. 정진석 의원은 자신이 집권여당 원내대표였던 시절을 회상하며, 현기환 전 정무수석과는 "솔직히 손발이 맞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뒤늦게 정무수석이 김재원 의원으로 바뀌었지만, 그 때는 이미 비선 실세들이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 국정을 농단하고 있어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전병헌 정무수석의 포진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향하는 첫 문을 열어젖힌 것으로서는 기대 이상의 인사라는 평가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정무장관직 신설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명박정부 때 특임장관을 지내 이 직책의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는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으로부터 누차 건의를 받았는데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함성득 박사는 "내각에서도 다선의 현역 국회의원을 정무담당 장관으로 임명해 원만한 여야 관계 형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내각에 김영삼정부의 정무장관이나 이명박정부의 특임장관처럼 정무기능을 담당하는 장관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성공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전·현직 대통령 간의 상호 신뢰에서 나온다는 게 함성득 박사의 주장이다. ⓒ뉴시스 사진DB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성공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전·현직 대통령 간의 상호 신뢰에서 나온다는 게 함성득 박사의 주장이다. ⓒ뉴시스 사진DB

    ◆위기가 곧 기회… 주어진 국정목표 집중해야

    이상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가는 길에 켜진 '청신호'라면, 이하는 '황신호' 내지 '적신호'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나온다. 국내 대통령학의 최고권위자 함성득 박사가 도출한 연구에 비춰볼 때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조짐들이다.

    현안에 관계없는 번잡한 국정목표의 추구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단임제 대통령이 '성공'의 길로 가기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함성득 박사는 대표적인 사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상황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에게는 '경제위기의 극복'이라는 국정목표가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이미 주어졌다.

    함성득 박사는 "미국의 대통령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위기와 기회의 순간에 직면한 대통령은 건국의 워싱턴, 남북전쟁의 링컨, 대공황의 루즈벨트 정도"라며 "이러한 경제위기의 상황이 대통령 개인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행운"이라고 역으로 바라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IMF 외환위기를 이용해 대한민국의 경제체제를 완전히 체질개선한다면 정말로 위대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펼치고 싶은 정책이 너무 많았다. 그는 "원래 IMF 외환위기 극복은 대통령으로서 원하던 국정목표가 아니며, 대통령이 되면 실현하려고 평생 준비해왔던 것들이 많다"(113p)고 답했다.

    한마디로 "역사가 자신을 IMF외환위기'만'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억할까봐 무척 조바심을 냈던"(185p)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남북관계 문제에 집중했다. 2000년 6월 12일에 5억 달러를 불법으로 송금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잘 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갈 수 있느냐"(118p)고 했다.

    북한은 김대중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참모였던 이영작 서경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햇볕정책에도) 외투를 벗지 않았다"며 "외투 안에 칼을 숨겼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이후의 전개는 '잘 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칼을 들고 설치는 망나니 동생에게 형이 '삥'을 뜯기는 것'과 같은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이처럼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신을 이끌 수 있었던 주어진 국정목표를 외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골몰하며 엉뚱한 방향에서 '성공한 대통령'의 길을 찾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시도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그 결과, 재벌·금융·노동·공공 분야의 개혁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은 채 외환위기의 극복이 선언됐다. 특히 "IMF 외환위기의 주원인이 금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금융개혁은 미미했다"며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개혁은 진행형"(121p)이라는 게 함성득 박사의 진단이다.

    이를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 비춰보면 어떨까.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자행하는 북한의 위협을 세계가 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손을 잡고 대북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 당면한 국정과제는 북핵의 폐기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동결' 정도로 얼버무리는 것은 결코 북핵 사태의 해결일 수 없다. 그런데 북한과 너무 대화가 하고 싶다고, 화해와 교류·협력을 재개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다고 해서 대충 '북핵 해결'을 선언하고 방향을 돌리는 것은 파국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는 셈이다.

    경제는 약간 잘못되더라도 되돌릴 수 있지만, 안보는 한 번 그르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IMF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경제체질 개혁이 미진했던 것은 아쉬움을 남기는 정도지만, 북핵 사태 해결 과정에서 미진한 뒷끝을 남기게 되면 자칫 '아쉬워할 대한민국 국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공한 프로젝트는 전·현직 대통령 간의 신뢰에서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인 '4대강 사업'을 향한 표적 감사 지시도 '성공한 대통령'의 길과는 역주행일 수 있다.

    함성득 박사는 "대한민국이 성공한 큰 프로젝트가 그리 많지 않은데, 프로젝트가 성공한 역사 속에는 전임 대통령과 재임 대통령 간의 상호 존중과 신뢰가 배어 있다"(265p)며,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할 때마다 전임 정부의 정책을 무시하고 차별화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 전 대통령 당시인 1958년 부흥부가 중심이 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을 민주당 장면 내각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어받아 청사진을 제시한 결과물이다.

    서울올림픽은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자신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치에 나선 것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물려받아 정치적 결단으로 승인했다.

    2002년 월드컵은 1992년 대선 과정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며,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유치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을 딛고 일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 번째 도전에 나서 마침내 유치에 성공했다.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것이다.

    당장 내년에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리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직접 현장에서 뛰며 유치해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초청하지 않을 생각인가. 초청하지 않는다면 예를 잃은 것이고, 4대강 사업을 표적감사해 목을 죄며 초청한다면 어질지 못한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기껏 커다란 '물그릇'을 만들어놨으니 문재인 대통령은 나날이 심해지는 가뭄 속에서 이 '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후속 사업을 고민해 '치산치수(治山治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옳다.

    지천·지류 정비사업도 그 방법이 될 수 있고, 녹조가 정히 신경쓰인다면 상류의 축산폐수와 생활하수 등 오염원을 제거하는데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애써 혈세를 들여 건설한 보를 때려부수고 물을 흘려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함성득 박사가 소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1월 남미를 순방할 때 "자유당 시대를 독재시대·암흑시대로 생각했었는데 옛날 지도자들이 실책을 더러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씩은 다했다"며 "당시의 토지개혁은 정말 획기적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194p)이었다고 평가했다.

  • 함성득 박사의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 책표지. ⓒ인터넷교보문고 홈페이지
    ▲ 함성득 박사의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 책표지. ⓒ인터넷교보문고 홈페이지

    ◆'성공한 대통령' 배출하기 위한 함성득의 '팥소 있는 찐빵'

    그간 학계에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이같은 학계의 연구가 정작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론조사나 전문가조사를 통한 대통령의 인기도 순위매김식 연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성득 박사는 "연구대상인 대통령에 대한 직접관찰만이 연구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며, 자신의 저서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을 "지난 20여 년간 역대 대통령과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에 보다 생동적인 묘사·설명·분석을 시도한 '팥소 있는 찐빵'"(27p)이라고 자신한다.

    첫 한 달을 보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대체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함성득 박사의 연구에 비춰보면 그 중에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청신호'의 조짐도, 또 하나의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날 우려를 비치는 '황신호' 내지 '적신호'의 조짐도 혼재돼 보인다.

    함성득 박사는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을 통해 시종 "제도보다 사람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역대 대통령의 위기를 겪으면서 제도보다 사람이 문제임을 충분히 경험"(28p)했다는 것이다. 함성득 박사는 "제도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면 현행 대통령제는 결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다"라며 "현행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은 대통령제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의 권한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46p)고 단언했다.

    또 "미국 등 다른 대통령제 국가의 의회와 비교해봐도, 현재 우리 국회는 상대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65p)고도 역설했다.

    이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은 지점이다. 미국은 감사원이 의회 소속으로 돼 있고, 예산심의권을 넘어 예산편성권 자체를 의회가 쥐고 있다.

    "사람이 아닌 제도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측은 개헌(改憲)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장내기 위한 개헌'은 대통령제를 가장 제왕적으로 운영한 한 대통령의 '개헌 카드' 악용으로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헌 추진을 전격 발표했는데, 이는 함성득 박사도 지적했듯이 "국가 미래를 위한 중대 사안인 개헌을 자신의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술책으로 사용한 것"(162p)이었다.

    함성득 박사는 "국정 난맥은 대통령 자신이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말벗에 농락당하면서 초래된 것"이라며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잘못됐다며 먼저 개헌을 주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그가 말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가 '참 나쁜 대통령'이 됐다"고 질타했다.

    ◆"제도가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59개월 내에 결론 난다

    과연 제도가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함성득 박사가 도출해낸 연구에 비춰볼 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바람직한 줄'에 한 발을 걸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줄'에 나머지 한 발을 딛은 채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현행 문재인 대통령의 성패 여부가 중대한 갈림길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실패한 대통령'으로 전락한다면, 87년 체제 이후 일곱 번째 '실패한 대통령'이 양산되는 셈이다. '제도에는 문제가 없다'는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현 제도 하에서도 '성공한 대통령'이 충분히 나올 수 있고 기존의 여섯 명 '사람이 문제'였다는 게 반증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패는 개헌과도 직결될 수 있다. "제도가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제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함성득 박사는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스콧 메인워링을 인용해 "대통령제가 다당제와 결합하면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국회에서 소수당이 될 가능성이 증가한다"며 "다당제가 대통령제와 결합해 대선에서 정당 간의 연합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내각제보다 안정성이 낮아져 행정부와 국회 간의 교착과 난맥이 심화될 수 있다"(60p)고 소개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연속적으로 분당(分黨)되며 성립된 다당제는 양당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분출되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원내에서 대변하기에는 현재의 4당 체제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내년 지방선거 때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진다면, 다당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받게 된다. 이 경우 현행의 대통령제는 "교착과 난맥을 심화하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안정성이 높은" 내각제로의 개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는 10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맞이하게 되는 가운데, 그의 남은 임기 59개월을 내다보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지 그 반대인지, 또 그에 따라 정국은 어떠한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 판단하고 싶다면 반드시 일독해야 하는 책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함성득 지음. 섬앤섬 펴냄. 본문 342쪽(주석 포함 466쪽).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