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 인준·추경은 가능할 듯, 정부조직개편은 '노란불'
  •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조국 민정수석 등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조국 민정수석 등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 대통령이 야3당이 반대하던 강경화 외교부장관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달 10일 취임과 함께 다짐했던 협치가 40일 만에 파국으로 종말을 맞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조직개편·추경·헌재소장 인준 등 국회에 산적한 과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추이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오후 2시,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강경화 후보자에게 외교부장관 임명장을 수여했다. 국회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인사청문회법 제6조 4항에 따라 이뤄졌다. 이 조항은 대통령이 10일 이내의 기한을 정해 청문보고서 송부를 요청했음에도 국회가 이를 송부하지 못하면, 임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회에 17일까지 청문보고서를 송부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토요일을 포함한 사흘 사이에 보고서 채택이 이뤄지는 것은 무리였다. 사실상 '임명 강행' 방침을 정해두고, 법령에 따른 모양새만 취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이 코앞에 닥쳐왔고 G20 전으로도 외국 여러 정상과의 회담이 있어서 외교부장관 자리를 도저히 비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사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선전포고라든지, 강행이라든지, 협치는 없다든지 마치 대통령과 야당 간에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치 못하다"며 "빨리 벗어나는 게 우리가 가야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안경환 (법무부장관)후보자가 사퇴하게 돼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법무부·검찰개혁이라는) 목표의식이 앞서다보니 검증이 약간 안이해진 것 아닌가"라고 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8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취임 이후 첫 해외순방 일정이다.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등이 사전정지작업을 위해 미국에 넘어가 있지만, 현지에서의 발언이 오히려 미국 조야의 반발을 야기하는 등 한미정상회담의 조짐이 순조롭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회담 준비를 위해서라도 강경화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이날 입장 중의 핵심이다.

    하지만 강경화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해오던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3당의 반발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외교부장관 낙마에) 대비해 외교부 1차관을 유임시켰고, 청와대에는 안보실장도 있다"며 "강경화 후보자가 외교부장관이 되지 않음으로써 한미정상회담 준비에 차질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노무현정부 이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은 세 차례나 외교장관이 참여하지 않았다"며 "한미정상회담을 하는 과정에 외교장관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논리는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논파하기도 했다.

    강경화 후보자 임명 강행을 계기로 40일 간이나마 위태롭게 유지되던 협치가 사라지면서, 여소야대 4당 체제 속의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 휩싸이게 됐다. 당장 정부조직개편·추가경정예산안·헌법재판소장 인준 등 3대 과제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다.

    이 중 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당청(黨靑)은 헌재소장 대행체제의 장기화도 각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집권여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헌재소장은 대행 체제로 가도 된다"는 말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김이수 후보자가 선임재판관으로서 헌재소장대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임명동의안이 처리되느냐의 여부는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을 고려한 판단이다.

    또, 김이수 후보자가 전북 고창 출신이라 임명동의안의 표류가 장기화될수록 호남, 특히 전북 민심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민의당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마친 것으로 보인다.

    전북 남원·순창·임실이 지역구인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이수 후보자는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되 투표를 하자는 입장"이라며 "본회의에서의 투표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도지사간담회에서 언급됐듯이 지방으로 교부될 3조5000억 원의 예산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추경안 처리를 지지하고 있어, 국회에서 마냥 반대하기도 어렵다.

    다만 정부조직개편안은 변수다. 당청이 제안한대로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하는 등 정부조직을 개편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는 예산안이나 인준안이 아닌 법률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의 적용을 받는다. 자유한국당만 반대해도 사실상 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정부조직법개정안이 표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분간 국정 운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직전 정권의 산물이라 공중분해될 줄 알았던 미래창조과학부가 존치되는 등 정부조직개편의 범위도 미리 최소화했다. 개편안이 빨리 처리되면 좋지만, 설령 국회에서의 계류가 장기화되더라도 국정 운영에 큰 장애는 없는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협치가 파국을 맞는다고 해도 헌재소장 인준과 추경안은 결국 처리될 수밖에 없다고 보면, 정국 경색에 따른 당청의 부담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며 "정부조직개편도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한 내년 지방선거가 1년도 안 남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