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치적 남북 교류 허용·대북제재와 압박 병행에 필요한 요소 가져야
  • [편집자 注]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베를린에서 ‘압박과 대화 병행’이라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최근 20년간 대한민국의 북한 정책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화해정책’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압박정책으로 선회했다면, 새 정부의 ’新베를린 선언‘은 새로운 국면을 열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책과 통일의 방법론에는 견해차가 크지만 ‘진정한 광복은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명제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민족통일의 교과서는 ‘통일 독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한반도의 경우 전혀 다른 상황들이 많아,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해봐야만 우리의 통일 해법이 나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뉴데일리는 오는 8월 15일, 광복절 72주년을 앞두고, 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의 유사점과 차이점, 선험적으로 반드시 감안해야 할 이슈들을 시리즈로 점검해보기로 했습니다. 


  •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참석 차 독일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새 정부의 대북전략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참석 차 독일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새 정부의 대북전략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 참석 차 독일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남북통일에 대한 새 정부 청사진을 제시했다. 일명 ‘新베를린 선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28년 전 통일을 이루어내고, 이후 유럽의 중심에 선 독일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이곳은 17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던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대통령이 연설을 한 ‘알테스 슈타트하우스’는 독일 통일조약 협상이 이뤄졌던 곳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新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 포기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및 이를 위한 양자-다자 대화체제 구축, 남북 평화체제를 위한 합의 법제화,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연결 등을 통한 남북경제협력 확대, 비정치적 남북교류협력 유지 등 다섯 가지 제안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한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해 나갈 것을 북한에 제안한다”며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에 맞춰, 추석 계기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성묘, 북한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정전 협정일부터 군사분계선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단, 남북 간 접촉 통신선 복원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통일의 경험은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과 함께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다”면서 “베를린에서 시작된 냉전의 해체를 서울과 평양에서 완성하고 새로운 평화의 비전을 동북아와 세계에 전파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新베를린 선언’ 그리고 ‘대화와 압박 병행’

    문재인 대통령은 ‘新베를린 선언’을 내놓으면서 과거 동서독 간 비정치적 민간 교류가 빈번했던 점을 지적하며 “독일 통일은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평화와 협력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면서 “독일 국민들은 이 과정에서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 통일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작한) 동방정책이 20여 년 동안 지속됐다는 사실도 중요하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된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국민의 지지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협력이 바탕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 동독 출신으로, 28년 만에 통일 독일을 이끌게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미래 한반도 통일을 꿈꾸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 동독 출신으로, 28년 만에 통일 독일을 이끌게 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미래 한반도 통일을 꿈꾸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뉴데일리 DB.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일을 많이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차이가 있다. 지난 6월 1일(현지시간) 미국에 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허버트 R.맥마스터 美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대북 압박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전략에 공조하기로 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 또한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과 같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는 대북압박을 계속 가하되, 이산가족 상봉이나 인도적 대북지원과 같은 비정치적 민간 교류는 계속 허용한다는 의미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압박 및 대화 병행 전략’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선 대북전략의 전제에 ‘현실’을 깔아야 한다. 바로 북한의 대외·대남 전략이다.

    탄도미사일·핵실험 후 미국만 보는 북한, 그리고 한국

    북한은 2016년 1월 6일 오전 10시 5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도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탄도미사일 종류 또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부터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까지 다양했다. 사거리가 200km에 달하는 KN-09 로켓 또한 수십 발을 쏘았다.

    북한의 도발 뒤에 따라 나오는 것은 대외비방 성명들. 여기에 등장하는 북한의 ‘주적’은 미국이었다. 북한은 도발 직후 성명마다 “미제의 침략본능과 핵전쟁 도발에 맞서기 위한 정당한 자주적 국방력을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5월 이후 가끔 한국을 비난할 때는 “남조선 당국자가 외세와 맞장구를 친다”거나 “촛불민심을 배신한 불질대통령” 등의 표현을 써가며 에둘러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비난했다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존재감을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5월 14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다. 1단 추진 로켓만 가진 ‘화성-21형’은 최대 상승고도가 2,100km나 됐다. 북한은 이 탄도미사일이 미국과 일본을 향한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지난 7월 4일 ‘화성-14형’을 발사한 뒤에는 대놓고 美본토 서부 일대까지 공격할 수 있는 성능이라며 미국을 자극했다.

  • 지난 7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현장을 참관한 김정은. ⓒ北조선중앙TV 보도화면 캡쳐.
    ▲ 지난 7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현장을 참관한 김정은. ⓒ北조선중앙TV 보도화면 캡쳐.


    미국은 이에 대해 “한미일 공조와 중국을 통한 간접압박으로 해결한다”는 공식 반응만 내놨지만, 최근 외신을 통해 나온 소식은 매우 섬뜩하다. 美‘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북한이 ‘화성-14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당시 미국은 그 현장에 있던 김정은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화성-14형’ 발사를 참관하는 김정은을 70분 동안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미국은 김정은이 있는 곳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정밀타격무기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즉 북한은 어떻게든 미국의 관심을 끌어 ‘美-北 평화협정’, 즉 ‘불가침 협정’을 맺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싶어 하고, 미국은 언제든지 북한 수뇌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이 설 자리가 있을까.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은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국무위원들에게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없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운전석에 앉겠다”고 말했던,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을 향해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만들자”며 다양한 제안을 했던, 그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었다.

    ‘新베를린 선언’의 전제, 현실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에게 한 제안, 국무회의에서 한 말 모두 틀리지 않았다. 다만 북한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이 불우이웃돕기 같은 ‘캠페인’이 아니라 국가의 존망을 걸어야 하는 체제 대결이라는 점에서 일단 전제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현실이다.

  • 1989년 11월 9일(현지시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의 모습. ⓒ월드킹.ORG 관련화면 캡쳐.
    ▲ 1989년 11월 9일(현지시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의 모습. ⓒ월드킹.ORG 관련화면 캡쳐.


    북한이 만약 과거 동독처럼 동구권 내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비록 공산당 독재였지만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이며, 경제력도 발전한 국가였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은 3대 세습을 해온 ‘신정일치’ 국가다. 법치나 인권, 호혜적 외교관계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도 통하지 않는 체제다. 게다가 수십 개의 핵무기와 1,000여 기 이상의 탄도미사일로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한국이 홀로 이런 북한과 대등한 입장에서 맞서려면,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한 군사력과 중국·러시아를 압도할 수 있는 정치·외교·경제적 역량이 필요하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미국·일본과 연대할 수밖에 없다. 대북협상의 주도권을 혼자서 쥐기도 어렵다.

    이런 냉정한 현실을 전제로 대북전략을 짠다면, 독일의 통일 과정을 그대로 따라할 것이 아니라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대북전략을 수립하다보면 한국 혼자서가 아니라 미국, 일본과 함께 ‘대북 압박과 대화 병행’을 실시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알 수가 있다.

    ②'독일 통일 30년, 어제와 오늘'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