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생략한 탈원전 정책…전문가도 정치권도 "당장 중단하라" 한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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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뉴데일리 임혜진 기자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뉴데일리 임혜진 기자

     지난달 19일 고리원전 1호기가 영구정지된 데 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일시중단 방침이 결정되면서 '탈(脫)원전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정부 측이 탈원전 여부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에 등을 돌리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18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서 열린 주민간담회에서 "신고리 5·6호기 영구중단만은 꼭 막겠다"고 강조했다.

    이관섭 사장은 전날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가 우려한 것처럼 나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 3개월 간 이어질 공론화 기간에 국민에게 원자력발전이 안전하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감독을 받는 공기업 수장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발언이다. 다만 정부 정책인 탈원전에 공개 반기를 들 수 없어 일단 공론화위원회에 공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원전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 신고리 5·6호기가 영구중단 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울산 울주군 일대에 건설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는 시간당 1,400MW의 전력을 생산해내는 원전으로, 현재 문재인 정부와 일부 환경단체들의 탈핵·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현재 건설이 일시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9인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꾸려 9월 말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여부를 논의한 후 시민배심원단에게 최종 결정을 맡기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 비전문가 '시민 배심원단' 판결에 생사 달려… 전문가들 반발

    최근 백운규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할 경우 경제·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반해 지진 등에 대한 국민 우려도 높다는 점을 들며 사회적 합의를 주장했다.

    향후 전개될 공론화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민배심원단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폐쇄여부를 결정짓다는 점을 두고 "원자력 지식이 부족한 일반시민에게 에너지정책을 성급히 맡겨선 안 된다"는 비판 여론에 반박하는 차원에서다.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 등 4개 분야에서 각각 2명씩 선정하며 국무조정실에서 인사검증을 거쳐 구성된다.

    국무조정실은 공론화위에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는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빼고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하겠다는 의중이다.

    대부분의 탈원전 찬성론자들은 안전 등의 문제점을 들어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며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에너지전문가를 포함한 학계에서는, 과연 비전문가인 시민배심원단이 3개월이라는 단 시간내에 책임질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느냐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성풍현 카이스트 교수는 18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전문가들이 해도 굉장히 오랫동안 해야될 일을 비전문가가 3개월의 시간을 두고 결정한다는 것은 병원에서 환자의 수술을 결정하는데 의사가 하지 않고 일반인에게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성풍현 교수는 "외국에서는 몇십년을 두고 결정짓는 복잡한 원자력에 대한 문제를 비전문가에게 맡겨 3개월 안에 결정내린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요식행위"라며 "공론화위와 시민배심원단은 정부의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역시 "탈원전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정부의 기조인데,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감안할 때 정부의 입김이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국민이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공론화 자체도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며 "탈원전이라는 목표보다 경로와 속도가 더 중요한데 어찌됐건 3개월이라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은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 이대로 괜찮은가 공론화 필요성 "투표로 합시다"

    에너지 분야 전문학자들은 비전문가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의 구성을 뒤로 하고도 정부가 '탈원전 공론화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신고리 5·6호기 폐쇄에 뛰어든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에 따른 결과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질 수가 없다"고 꼬집으며 "국회의원들이 찬반 양론을 듣고서 결정하도록 투표를 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풍현 카이스트 교수는 "필요하다면 충분한 안을 만들어놓고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좋다"며 "(정부가 국민투표를 거부한다면) 최소한 국회에서라도 결정하게끔 공론화시키는 것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사중단 기간이 연장되며 추가비용이 발생하긴 하겠지만 원자력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원자력 전반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투표를 거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전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어떨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10일 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원전을 전력원(電力原)으로 이용하는 것에 찬성한 응답자는 64% 로 반대 24%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갤럽이 올해 7월 14일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은 59%, 반대는 32%에 그쳤다. 응답을 거절한 비율은 9% 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정치권에서도 탈원전 이행에 앞선 공론화 생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어 '투표 현실화'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은 "5년 임기의 한시적 정권이 법적 절차도 밟지 않고 원전을 중단하는 것은 횡포"라며 "독일과 스위스처럼 원전 폐쇄에 따르는 영향을 국민에게 알리고 토론회를 거쳐야한다"고 주장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17일 원내상황점검회의에서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이라며 탈원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채익 한국당 원전특위 위원장은 "탈원전 계획은 원천무효이며 대한민국 법질서에 따라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채익 위원장과 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18일 오전 국회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중단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뿐만이 아니다. 야3당 모두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거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쿠데타하듯 기습 처리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도 "적법 절차를 무시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사태는 '법 위의 대통령' 행태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규정하며 정부의 일방통행식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