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가입·선거권 연령 하향, 공무원·교사 정치참여 추진 논란될 듯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100대 국정과제에 대한 대국민보고대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100대 국정과제에 대한 대국민보고대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정부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개헌(改憲)을 공언했다.

    개헌 추진의 시기까지 못박았기 때문에, 이른바 '87년 체제'는 종결 초읽기 수순에 돌입했다. 다만 개헌의 방향과 세부 내용이 분명치 않은 관계로, 향후 개헌안의 논의 과정에서 정치적 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국정과제의 대국민보고대회를 주재했다. 이 과정에서 정무적 사안으로는 개헌이 최대 핵심과제로 비중있게 보고됐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최우선 목표인 '국민이 주인인 정부' 항목 아래에 개헌을 배치했다. 국무조정실 중심으로 국민주권개헌 및 국민참여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개헌은 국정과제의 3단계 이행계획 중 도약기와 안정기에 앞선 제1시기인 '혁신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이행돼야 할 과제로 선정됐다.

    올해 5월 정부 출범으로부터 내년까지로 설정된 제1기 '혁신기'에 개헌과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지난 5월 19일 여야 원내대표 청와대 회동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고려한 스케쥴로 보인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개헌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와 참여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개헌을 비롯한 각종 정치제도를 개혁해 소통에 기반한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게 문재인정부 국정운영의 핵심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개헌 추진'에 방점이 찍힌 것 치고는, 구체적으로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세부 방향과 관련해서는 컨텐츠가 분명치 않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촛불민심 등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개헌을 추진한다"며, 정치·선거제도의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만 밝혔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거론된 개헌의 방향은 △국민투표 확대(헌법 제72조) △국민발안제·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헌법 제40조) △18세로 선거연령 하향(헌법 제24조) △총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헌법 제41조 3항)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헌법 제67조 2항) △정당가입 연령제한 폐지 △공무원·교사의 정치참여 보장(헌법 제7조 2항)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기관화(헌법 제90조) △제2국무회의 제도화(헌법 제88조) 등이다.

    개헌의 핵심 내용인 통치구조와 관련한 방향 제시가 없는데다, 그나마 단편적으로 거론된 내용들도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민감한 내용들이라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의 격론이 예상된다.

    정치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제시한 로드맵대로 개헌작업을 시작해 성공을 이뤄내려면, 그동안 정권들이 개헌에 실패했던 원인을 토대로 충분한 논의를 거듭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거론된 내용을 살펴보면, 청와대는 개헌의 방향과 관련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대통령중심제 고수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하고 있다.

    현행 헌법 제72조에 규정된 국민투표부의권은 대통령의 자유재량에 달린 '통치대권' 중의 하나로, 대표적인 '제왕적 대통령 권한'의 하나로 거론된다. 우리나라나 해외의 헌정사에서 국민투표 부의가 독재 합리화에 악용된 숱한 전력을 고려할 때,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높다.

    제2국무회의는 대통령이 시·도지사를 불러모아 국정현안을 논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 분산 모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선진 정치체제로 개혁을 추구한다면 독일과 같은 총리·주(州)총리 간의 협의 모델로 가는 게 헌법정신에 부합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은 현행 대통령중심제에서는 그나마 고려할 여지가 있지만, 선진적인 민주정체로 개헌이 이뤄지면 과연 대통령을 국민이 직선해야 하는지부터 검토할 필요도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1932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아돌프 히틀러 사이에서의 대선 결선투표를 기점으로 망국(亡國)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대통령을 결선투표까지 해가면서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나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도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해야 할 국회를 약화시키고 군소정당이 난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에 역행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내각제 개헌이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는 도입하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거연령 하향이나 정당가입 연령제한 폐지, 공무원·교사의 정치참여 등은 가뜩이나 사회의 과도한 정치·정쟁화가 나라의 큰 적폐이고 선진국으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온 나라를 정치판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높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기관화는 현재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헌법에 규정돼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국가안전보장회의·국민경제자문회의 등이 개헌에 따른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권력 분담에 따라 누가 어떠한 역할을 맡을지부터 결정된 다음에 위상을 재정립하는 게 순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