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에게 오래 간직되는 상처(아름다움) 남기고 파"

봉준호 "'돼지' 하면 '삼겹살' 떠오르는 현실 서글퍼"

영화 '옥자' 통해 '공장식 축산시스템' 폐단 지적
"작품 찍으며 돼지고기와 '결별'..그래도 닭·소고기는 못 끊어"

조광형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7.24 16: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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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년째 '기자'라는 한 우물을 파 온 조광형 기자입니다. 다양한 분야를 거쳐 현재는 연예·방송 전문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뉴데일리 지면은 물론, 지상파 방송과 종편 등에서 매주 연예가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한 발 앞선 보도와, 깊이 있는 뉴스 전달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영화계에선 흔히들 봉준호 감독을 가리켜 '마이더스'라는 표현을 쓴다. 손대는 작품마다 기념비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탓에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봉 감독의 손은 비단 번쩍번쩍한 '황금'을 빚어내는 재주만 있는 게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적어도 기자가 보기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소재들을 기가 막히게 융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이를테면 '컨버전스 아트'의 대가라고나 할까?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지배층과 피지배층,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들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분법적 구도'로 그려진다. 그러나 양쪽이 치고받고 싸워 어느 한쪽이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과는 좀 다르다.

어느 한쪽이 이긴 것처럼 보이다가도 말미엔 새로운 불씨를 제공하는 단서가 등장하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던 양측이 알고보니 한통속이었다는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봉 감독의 작품에선 어떤 소재나 인물들의 '양면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화 '마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어머니의 사랑을 정면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인간이 지닌 모성애가 강하면 강할수록 역설적으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 가지, 봉 감독이 지닌 재주는 '거대 자본'의 힘을 빌려 '거대 자본'의 폐단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대기업 자본을 끌어들여 자본가와 기득권층을 머리로 들이 받는 '혁명'을 일궈냈다면, 영화 '옥자'에선 미국 자본을 끌어들여 서구 유럽이 주도하는 공장식 축산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 자본의 힘이 아니었다면 '옥자'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주인공 미자의 친구, '옥자(슈퍼돼지)'를 만든 장본인은 초일류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이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나 서로의 존속을 위해선 '공생'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관계 속에 살고 있는 것.

"미자와 옥자가 다시 강원도 산골로 돌아왔지만, 씁쓸한 잔재 같은 게 남아 있죠. 그래도 이 아이들이 최소한 파괴되지는 않았잖아요? 어떤 분들은 너무 동화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에게 중요한 건 바로 이 점이었어요. 누가 뭐래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거죠."


어느 한쪽으로 귀결되지 않는 '모호함'을 취하면서도 봉 감독은 반드시 그 안에 '희망'이라는 불씨를 남겨 놓는다. 이같은 긍정적인 '열린 결말'은 봉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적 목표이기도 하다.

"제가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돼지고기는 영화를 찍으면서 안먹게 됐습니다만…. 사실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닭고기나 소고기를 먹고는 있습니다. (웃음) 물론 그 양을 많이 줄였지요."

무조건적으로 육식에 반대하는 고집을 부리는 대신, '현실적인 타협안'을 스스로 내놓은 셈이다. 대립각을 벌이고 있는 양측도 따지고 보면 엄연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결국 궁극적인 보편 가치는 '상생(相生)'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스트리밍 서비스 기반의 '넷플릭스'와 손을 잡음으로써 멀티플렉스 측과 마찰을 빚은 것도 결과적으론 개인 극장(단관)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또 다른 '상생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저의 새로운 시도로 업계 분들에게 피로감을 안겨드린 점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선 '옥자'와 '넷플릭스'로 인해 새로운 규칙들이 생겨났고, 무엇보다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의 '단관 극장'을 다시 찾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봉 감독은 "애당초 이런 '목적 의식'을 갖고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건 결코 아니었다"며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옥자'를 구상하고 예산을 따져보니 최소 500억 이상이 나오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한국이나 아시아, 유럽의 스튜디오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이 아니었죠. 게다가 제가 제안한 시퀀스에 대해 상당수가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정말로 '도축 장면' 같은 걸 찍을 거냐고‥. 그때 '넷플릭스'가 나타났어요. 제작비 전액 지원에, 시나리오 한 줄도 바꿀 필요 없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했죠. 저에겐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봉 감독은 "실제로 스트리밍이나 디지털의 미래를 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단지 찍고 싶은 영화를 완성시키고 싶어 도전했던 것"이라며 "다만 '넷플릭스'의 도움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고, 그들의 배급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가 어떤 방향을 제시한다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아요. 다만 개인적으로 잔상이 오래 남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요. '넷플릭스'는 그들 스스로 4K 영상에 집착하는 등, 저보다 더 '고퀄리티 영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 함께 작업할 때 묘한 쾌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아름다움'이란 좋은 의미에서 '상처'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 이미지가 일종의 상처로 새겨져, (관객들에게)오래 간직되도록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돼지, 하면 삼겹살? 이게 현실…"
 
'옥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다. 돼지와 하마를 합쳐 놓은 모양새에 몸집은 집채 만큼 거대하지만, 행동거지는 여느 애완동물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 주인공 미자(안서현 분)를 포함해 어린 관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옥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봉준호 감독은 "처음에 제가 그릴 때엔 지금보다 훨씬 덩치가 컸는데 장희철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뭔가 억울한 느낌이잖아요? 얼굴 모습이…. 실제로 돼지가 얼마나 억울합니까? 원래 얼마나 청결하고 아이큐가 높은 동물인데요. 우리는 돼지하면 항정살이나 삼겹살 같은 음식이 떠오르잖아요?" 

봉 감독은 '옥자를 실제로 키우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화면 속에만 있어서 안타깝다"며 "솔직히 (여건만 되면)키우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당연히 키우고 싶죠. 그런데 그 전에 이사를 가야겠죠. 아파트에선 키울 수 없잖아요? 하하."


봉 감독은 "옥자는 지금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수많은 가축을 대변하는 존재"라며 "이 영화는 현실 세계에서 철저히 분리된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침으로써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우리는 애완견을 안고 마트로 가서 삼겹살을 사잖아요? 현실에선 두 가지를 분리하고 있는데요. 영화에선 하나로 합쳤어요. 당연히 불편하죠. 이렇게 공격적으로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요. 후반부에 가선 더욱 끔찍하죠. 그래서 미국 관객들 사이에서 반응이 매우 뜨거웠어요. 그나마 저는 엄청 자제해서 보여드린 거예요."

봉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 사전 조사 차원으로 콜로라도주에 있는 거대 도살장을 견학한 적이 있다"며 "수천마리의 소들이 분해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뒤 도살장 밖으로 나와, 자기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소들을 보면 정말이지 여러가지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덴버 공항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데요. 잠실종합운동장의 4~5배 정도 되는 엄청난 크기예요. 하루 5천마리 이상의 소가 이곳에서 도살돼요. 가죽을 벗긴 소 머리가 굴러 나오면, 노동자가 거기에 붙어 있는 눈알을 빼요. 그리고 그 다음엔 혀를 자르죠. 이렇게 한 박스에는 눈알만 가득 쌓여 있고요. 다른 박스에는 혀가 쌓여 있어요. 이런 것들을 현대적인 공장시스템이라고 도살장 관계자는 자랑스럽게 보여주더라고요. 이걸 다 지켜보면 정말 고기를 드시는 게 힘들 거예요." 


[사진 제공 = 퍼스트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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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년째 '기자'라는 한 우물을 파 온 조광형 기자입니다. 다양한 분야를 거쳐 현재는 연예·방송 전문 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뉴데일리 지면은 물론, 지상파 방송과 종편 등에서 매주 연예가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한 발 앞선 보도와, 깊이 있는 뉴스 전달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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