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희, SNS 통해 "외할머니로부터 가정폭력 당했다" 폭로"이모할머니 접근 막고, 가수 데뷔도 방해..우울증 심해져"

  • 故 최진실의 친딸 최준희(14)가 SNS를 통해 외할머니 정옥숙씨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쳐 파문이 일고 있다. 정씨는 최준희의 부모(故 최진실·조성민)가 모두 사망한 이후 유일한 보호자로서 이들 남매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동안 방송을 통해 비쳐진 정씨와 환희·준희 남매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보였다.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됐던 이들 남매가 밝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정씨의 보살핌 덕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사실상 수익원이 사라진 가정의 가장으로서 정씨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얘기는 방송가에도 곧잘 전해졌다. 따라서 이들 가정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금전적인 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지난 5일 새벽 SNS에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다. 최진실을 대신해 이들 남매를 돌보고 있는 외할머니 정씨가 최준희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왔다는 얘기가 전해진 것. 이같은 사실을 폭로한 장본인은 다름아닌 최준희 자신이었다.

    "너무 억울해.. 저 좀 살려주세요"


    5일 토요일 새벽 1시 55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린 최준희는 "지금 경찰들이 집에 찾아 오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기에 일단 올리겠다. 자신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최준희는 해당 글을 통해 "외할머니가 자신을 윽박지르고 종종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우울증이 심해졌다"며 "수차례 자살 기도를 했었다"는 사실을 밝힌 뒤 "외할머니로부터 목이 졸리고 손이 물린 적이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이후 최준희는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외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할 것"이라며 "자신이 폭행을 당했다는 증거는 몸에 있는 흉터들을 보면 알 수 있고, 홍진경이나 이영자 같은 연예인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뒤 최준희는 페이스북 계정이 강제로 삭제됐다며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올린다"면서 정씨에 대한 '추가 폭로글'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확인 결과 전날 저녁, 최준희와 외할머니 정씨가 심하게 다툼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말싸움을 하던 두 사람이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고, 보다 못한 최환희가 112에 신고해 인근 서초파출소 경찰들이 출동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 정씨를 겨냥한 '폭로글'은 경찰이 조사를 마치고 파출소로 돌아갔을 때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신고를 받고 잠원동 자택에 출동한 경찰은 최준희와 정씨가 서로에 대해 처벌할 의사가 없음을 밝힘에 따라 곧바로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은 최준희로부터 정씨의 학대(폭언·폭행) 의혹이 접수된 만큼, 추후 사실 여부를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최준희는 같은 반 친구네 가정으로 피신해 있는 상태다.

    "훈육? 명백한 가정폭력이다" 외할머니 원망


    최준희가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한 외할머니 정씨의 폭언(폭행)과 학대 행위는 크게 5가지로 구분된다. 외할머니는 이를 정상적인 '훈육 과정'의 하나라고 해명했으나, 자신이 느끼기엔 명백한 '가정 폭력'이었다는 게 최준희의 주장이다.

    우선 최준희는 "폐쇄 병동인 줄 알았다면 결코 입원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과거 정신병원에 갇혀 입원 치료를 받았던 사실을 정씨의 '강요 행위'로 간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 병원을 자진해서 들어 간것은 맞지만 폐쇄병동인줄은 몰랐고 외부와 차단되는 병동인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입원 절차 다 밟고 난후에 알았고 원래는 3주동안 입원하는거였는데 전 정신병자도 아닌데 정신병동에서 지내는게 억울하여 맨날 간호사와 주치의 선생님들께 내보내달라고 울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것이지만 그런 병동 이었으면 전 입원 하지 않았을것 입니다.


    또한 아이돌학교 오디션에 응시, 1~2차까지 다 합격했지만 외할머니의 반대로 출연이 무산된 사실을 거론하며 당시 외할머니가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 한 스님이 경고한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연예인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몇주동안 피 땀 흘려 연습한것을 할머니는 몇초만에 말한마디로 제가 공들여 쌓아온 탑을 무너트렸습니다. 전 너무 화가났고 속상했습니다 더 어이가 없던것은 반대한 이유가 스님이 제가 연예인이 된다면 엄마처럼 똑같이 자살을 할것이라고 했다며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희는 기독교였습니다 또한 전 공부나 할것이지 뭔 연예인을 하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최준희는 자신을 각별히 아껴줬던 이모할머니를 정씨가 강제로 떼어놨다는 주장도 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급기야 자신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모할머니를 집에서 내쫓았다는 것.

    최준희는 이후에도 외할머니는 자신이 카카오톡으로 이모할머니와 연락하는 것도 막고 핸드폰까지 수시로 검사하는 등 이모할머니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키는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어느날 전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있었는데 제 핸드폰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몇분뒤 외할머니는 저에게 불만가득한 표정을 하시며 "너 비밀번호(패턴) 해놓는다고 못풀줄알아? 이모할머니랑 연락하는거 다알아" 라고 말씀하시며 수시로 제 핸드폰 검사를 하셨고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땐 그저 말없이 가져가서 돌려주시질 않으셨습니다.

    몇일후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는 건 외할머니가 어떻게 아신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해 준희랑 이모할머니 못 만나게 하라고 시켰고 선생님들께서도 제사정을 다아시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저 이모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최준희는 "이모할머니를 내보내면서 자신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고 말한 뒤 "어느날 남자 친구 문제로 할머니와 다툼을 벌이다 손을 물리는 일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그나마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저에게 남자에 미쳤냐며 상처를 주셨고 어느 날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나 저를 옷걸이로 때리려고 하셔서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제 손을 무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는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고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정말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해방법은 있는 데로 다해보았습니다. 커터 칼로 손목도 그어 보았고 샤워기로 목도 매달아보고 하지만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 있었는지 항상 실패했고 그때마다 흉터만 남고 결국 전 죽지 못했습니다.


    당시 자살을 결심하고 쓴 유서에 정씨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할머니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최준희는 "북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엔 자신을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비난하며 옷걸이로 때리고 목을 조르기까지 했었다"고 폭로했다.

    더 심했던 것은 북유럽으로 저랑 오빠랑 외할머니랑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는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하시고 옷걸이로 절 때리시고 목을 조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황당스러운 것은 외할머니께서 니가 그때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한 것 뿐이야 라고 할 때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냥 장난으로 그런거에요 라고 해명하는것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외할머니의 강요로 미국 유학을 갔다가 현지 학교와 거처가 못미더워 국내로 유턴했다는 최준희는 "갑자기 자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며 도둑으로 몰아가는 등, 외할머니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다음은 지난 5일 최준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폭로글 전문.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잘알고 계시는 고 최진실의 딸이자 최준희 입니다. 제가 갑작스레 이글을 적게된 이유는 잘살고있었을것만 같던 제 일생에 대하여 폭로하고자 고민 끝에 용기내어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려합니다.
     
    현재 저는 중학교2학년이고 아마 제 일생이 꼬이기 시작한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이후부터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보자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인것같습니다.
     
    엄마가 떠난 이후로 불행하게 살줄 알았던 저는 , 다른아이들과 똑같이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 학교 다녀와서 스폰지밥을 보고싶어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외할머니, 오빠, 이모할머니, 친가네 이정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외할머니랑 살지 않고 같이 살고있는 이모할머니는 누구인가에 대해 에스크를 올렸을때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셔서 알려드리자면 이모할머니는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제가 태어나자마 키워주셨고 다른 부모님들 못지않게 자랑스럽게 키워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사실상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오빠만 이뻐하고 키우기 바빴습니다. 그런 저에게 사랑을 주고 저를 위해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저 최준희를 위해 살아오신분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얘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는 이모할머니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으나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이모할머니가 제 재산을 노리고 키운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하시더군요 그렇게 11년동안 함께 살붙이며 살아온 이모할머니를 갑자기 강제로 못 보게 한것이 바로 초등학교4학년때부터 입니다.
     
    그땐 너무 어려서 5일 자면 오겠지 10일 자면 오겠지 했지만 끝내 어느날부터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1살이라는 나이에 제일 사랑하던 가족과 이별을 경험했고 몇일뒤에 외할머니는 충격에 빠져있던 저에게 뻔뻔하게도 "너랑 그년이(이모할머니)랑 같이 있는꼴을 못보겠어서 내가 그냥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 너그년이랑 있으면 니인성 다망쳐 " 라며 너무나도 어렸던 저에게 더 큰충격을 주었습니다.

    그이후로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 안우는 날 없이 밤마다 외할머니에게 들키지않으려 베게에 얼굴을 파묻고 목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잠들고 하루일과라면 우는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보고싶은나머지 큰 곰인형에 이모할머니가 들고 가지 못한 옷과 안경, 향수 양말들을 입혀 꼬옥 껴안고 잤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잔인하게도 그인형을 집어던지며 이모할머니의 물건들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전 너무 무서웠고 이모할머니랑 제가 뭘 이렇게 잘못했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일뒤 저는 정신적으로 멘탈이 다 산산조각났고 용기내어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을해보려 외할머니 몰래 카카오톡으로 연락을했습니다 , 운좋게도 이모할머니에게 연락이 바로 닿았고 이모할머니는 그저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니가 빨리 성인이 되고 커야 우리가 만날수있어 라며 답장을 했고 전 더 눈물을 쏟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전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있었는데 제핸드폰이 없어져있었습니다, 몇분뒤 외할머니는 저에게 불만가득한 표정을 하시며 "너 비밀번호(패턴) 해놓는다고 못풀줄알아? 이모할머니랑 연락하는거 다알아" 라고 말씀하시며 수시로 제 핸드폰 검사를 하셨고 조금 의심의 여지가 있었을땐 그저 말없이 가져가서 돌려주시질 않으셨습니다
     
    몇주뒤 전 당시 성악부였고 성악부 담당 선생님께서 제사정을 알아 이모할머니께 연락을 드려서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몰래 찾아와 달고나,산딸기 등 제가 어렸을때부터 즐겨 먹던 음식들을 챙겨왔습니다 전 먹는 내내 이모할머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수없어 웃음으로 대신했고 행복은 그저 거기까지였습니다
     
    몇일후 이모할머니가 학교로 찾아오는 건 외할머니가 어떻게 아신건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해 준희랑 이모할머니 못 만나게 하라고 시켰고 선생님들께서도 제사정을 다아시지만 어쩔 수 없이 못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처음으로 자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저 이모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습니다 할머니의 윽박과 폭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학교에서 전 자연스럽게 친구들에게 더 의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겨 그나마 버틸만했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저에게 남자에 미쳤냐며 상처를 주셨고 어느 날은 크게 말다툼이 일어나 저를 옷걸이로 때리려고 하셔서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제 손을 무셨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 오른쪽 손가락 사이에는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고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았고 정말 그냥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유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자해방법은 있는 데로 다해보았습니다. 커터 칼로 손목도 그어 보았고 샤워기로 목도 매달아보고 하지만 살고 싶은 의지가 조금 있었는지 항상 실패했고 그때마다 흉터만 남고 결국 전 죽지 못했습니다.
     
    몇 일뒤 할머니께서 제 유서를 발견하시고 저에게 유서를 왜 썼냐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전 그때까지 만해도 "아 할머니가 그래도 나를 걱정했구나" 라고 생각을 했으나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유서에 외할머니를 쓰지 않고 오빠와 이모할머니에게만 썼다는 이유로 화를 내셨고 또 폭행을 하셨습니다.
     
    더 심했던 것은 북유럽으로 저랑 오빠랑 외할머니랑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갑자기 외할머니가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는 엄마가 잘못 낳았다고 하시고 옷걸이로 절 때리시고 목을 조르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황당스러운 것은 외할머니께서 니가 그때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한 것 뿐이야 라고 할 때마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그냥 장난으로 그런거에요 라고 해명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유서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외할머니께서 절 못 키우겠다 하시면서 미국으로 갈래 이모할머니한테 갈래라고 2가지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허나 이모할머니한테 갈 경우 생활비를 10원도 주지 않겠다 말씀하셨고 마음만은 이모할머니에게 가고 싶었지만 미래를 생각하여 미국으로 가겠다고 결정 했습니다
     
    그 후 제가 엄마의 공로상을 받았고 아무도 모르게 유학준비를 차근차근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당시 MBC 다큐 사랑을 찍고 있었습니다 방송에는 정말 노력하고 행복 해보이는 장면으로 연출 됐을지 몰라도 전 정말 괴로웠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진경이모와 신라호텔에서 외식을 했고 전 몰래 진경이모에게 가기 싫은 눈치를 주었고 진경이모는 제 편을 들어주며 안 가면 좋겠다는 쪽으로 제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그이후로 진경이모 욕을 하며 걔네가 뭔데 참견하고 지랄이냐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다음은 영자이모가 김대오기자 등 여기저기 얘기를 했고 준희를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다가 친가네로 연락을 했고 친할아버지께서는 "조씨도 아니고 우리 손자 손녀 아니니까 신경 안 쓸껍니다" 라며 무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을때 전 아는 집에 맡겨지기로 했으나 거의 입양수준이었고 더 심각했던 건 제가 머물러야했던 집은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불안정한 상태의 가정이었고 전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더 겁이 났습니다.
     
    결국 미국으로 떠났고 가서도 휴먼다큐 사랑을 촬영 했으며 거기서 다닐 학교도 보니깐 이상한 사이비종교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전 더 겁이 났고 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심만 커져갔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서 할머니한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그런데 왠일로 할머니가 오랜 고민 끝에 다시 한국으로 가자해서 모든 계획은 다 파토가 났고 전 정말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 할머니의 원망이란 원망은 다 들었고, 전 다시 숭의초등학교를 다니려했으나 유학절차가 아닌 퇴학절차로 해서 다시 초등학교를 재학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전 몇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고 할머니는 절 오빠네 국제학교로 같이 보내려 했습니다 그동안 빡세게 공부를 시켰고 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으나 국제학교에 합격되야 한다는 주위의 큰 부담 때문에 더욱 힘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지치고 아플 무렵 할머니와 전쟁은 끝난 듯 했지만 다시 시작됐고 전 계속 공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아침에 전 토요일 저녁에 공부하느라 늦게 잤고 할머니는 교회 갈 준비를 하시며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고 있는 저에게 자신의 아이라이너가 없어졌다며 저를 도둑으로 몰아갔습니다 . 하필이면 제일 예민하고 피곤 했을 때 저를 도둑년이라 칭하며 넌 어렸을 때부터 도둑질만 했다면서 저에게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지금 2017년 8월 5일 토요일 새벽 1시 55분인 지금도 집안이 다 박살났습니다 경찰들도 찾아오고 정신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실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것 같기에 일단 올리겠습니다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아래는 최준희가 페이스북에 두 번째로 올린 심경글.

    이 글에 대한 변명거리도 할머니가 분명 이야기하시겠죠. 기사회견이든 뭐든, 하지만 전 진실만을 말합니다. 제 몸의 흉터들과 상처들이 증인을 맡아줄 것이고, 홍진경 이모, 조성아 이모, 이영자 이모, 김대오 기자분 모두들 아는 사실입니다. 이 글이 무조건 동정을 받고 비난을 아예 받지 않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전 조금의 사람들이라도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 집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고,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다음은 최준희가 세 번째로 올린 인스타그램 폭로글 전문.

    안녕하세요 최준희 입니다.

    페이스북 계정이 강제로 탈퇴되어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일단 하나하나 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전 병원을 자진해서 들어 간것은 맞지만 폐쇄병동인줄은 몰랐고 외부와 차단되는 병동인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 입원 절차 다 밟고 난후에 알았고 원래는 3주동안 입원하는거였는데 전 정신병자도 아닌데 정신병동에서 지내는게 억울하여 맨날 간호사와 주치의 선생님들께 내보내달라고 울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것이지만 그런 병동 이었으면 전 입원 하지 않았을것 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돌학교 준비를 무너트린것도 할머니 입니다. 전 처음으로 꿈을 확고하게 안고 열심히 연습하여 1차 2차 다 합격 했습니다. 전 소속사가 있던 연습생도 아니었기에 연습실을 자주 얻을수없어 노래방에서 연습하고 화장실 전신 거울에서 노래를 틀어 놓고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몇주동안 피 땀 흘려 연습한것을 할머니는 몇초만에 말한마디로 제가 공들여 쌓아온 탑을 무너트렸습니다. 전 너무 화가났고 속상했습니다.

    더 어이가 없던것은 반대한 이유가 스님이 제가 연예인이 된다면 엄마처럼 똑같이 자살을 할것이라고 했다며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희는 기독교 였습니다. 또한 전 공부나 할 것이지 뭔 연예인을 하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저에게 문제집살 돈을 준적없었고 전 그래도 좀 열심히 살아보겠다 해서 당시 친구들에서 5000원 씩 빌려서 문제집 겨우 3권 사서 공부했습니다.

    전 열심히 노력하면 안될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제 느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돼는것은 있다는걸. 심지어 더 화가나는것은 오빠는 어떻게든 연예인 사켜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물어보고 다녔답니다 ,,,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옵니다. 전 아무 어른들의 도움없이 그저 혼자서 내 꿈좀 이뤄보겠다고 노력한것인데 할머니는 그것마저 다 망쳤습니다

    그리고 17일날 KBS 속보이는TV 에 할머니랑 저랑 관계가 더 자세히 방영될것입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정말 천벌 받을것입니다 , 여러분 이것은 가정폭력 입니다 다 잘되라고한 일들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었을까요? 폭행과 훈육은 다릅니다 그 훈육이 최진실딸을 죽이려했고 자살유도를 했습니다.

    정말 제대로 할머니의 죄를 많은 사람들이 알기 전까지 전 할머니를 폭로하고 폭로 할것입니다. 이거 하나만 알아주세요. 아직 할머니의 제일 큰 죄를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조금 알려드리자면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원인도 할머니 입니다. 이사실이 알려지게 된다면 지금 상황보다 뒤집어지겠죠. 훈육과 폭력은 다릅니다.

    이젠 뭐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 나 진짜 너무 불쌍한것 같다. 신이 있긴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