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지구를 지켜라'가 1년 여만에 재연한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병구와 병구의 조력자 순이, 외계인으로 지목 당해 병구에게 납치당한 강만식과 세 사람을 쫓는 추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범우적코믹납치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2003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동명영화가 원작으로 조용신이 각색,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다. 이지나 연출은 이번 재연에서 병구와 만식의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둘의 대결 구도를 발전시켰다.

    병구는 외계와 외계인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을만한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그가 처한 환경 때문에 능력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청춘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강만식은 성공한 중년의 사업가에서 타고난 외모에 부모의 재력이 맞물려 탄생한 안하무인의 재벌3세로 그려진다.

    이야기는 병구가 납치한 강만식을 의자에 묶어놓고 자백을 강요하는 상황부터 시작한다. 강만식이 안드로메다 PK-45 행성 출신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는 임무를 띤 총사령관이자 로얄분체교감 유전자 코드를 이식받아 그들의 왕자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라는 것이다.

  • 병구가 이태리타월로 강사장의 발등을 벗겨낸 후 물파스를 바르는 장면은 잔인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설정으로 재미를 더한다. 또, 눈을 희번덕거리며 외계인 음모론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 병구의 모습은 웃음과 함께 측은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 과정에서 병구는 갑질하는 재벌 2세,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 부정 입학·승마 특혜 등을 언급하며 이들 모두 '외계인'이라고 정의한다. 친숙한 실제 인물들과 오브제를 통해 영화와 가진 14년의 시차를 극복하고 새로운 동시대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영화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대결이라는 외피 안에 사회적 약자의 반격을 담아내며 충무로 상공에 뜬 UFO 같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배우 신하균(병구 역)과 백윤식(강사장 역)은 대체불가한 열연을 펼쳐내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들였다.

    하지만 연극은 원작의 기운을 살려내지 못하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창의적 재해석은 기대에 못 미치며 EDM, 록, 클래식, 통속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배치해 장면 전환을 유도하고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려고 했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어쩐지 성의 없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날것으로 쏟아지는 대사처럼 아슬아슬하다. 

  • 그럼에도 연극은 초연에 이어 흥행이 예상된다. 지난해 전석 매진시킨 바 있는 김기범(샤이니 키)이 올해에도 출연하기 때문이다. 

    샤이니 키는 9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원작 영화의 굉장한 팬이다. 초연했을 때 그 느낌을 잊지 못해 다시 출연을 결정했다"며 "간단하게 얘기하면 제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연극을 접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느끼는 매력은 작품 안에 사회문제를 투영하고 있는데, 그게 직접적이고 단편적인 것보다는 강만식과 병구의 대화, 작품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녹이고 있다. 그런 부분을 얘기하고, 보시는 분들도 그런 걸 찾아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8월 10일부터 10월 2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에서 공연된다. 전석 5만5천원. 문의 1577-3363.

    [사진=뉴데일리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