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이수그룹 장문의 불합격 통보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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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서 모(28) 씨는 지난 4일 인바운드 상담원 채용면접을 봤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문자 메시지가 한통 도착했다. 기계적이고 짧막한 불합격 통보였다. 서 씨는 속상한 나머지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경쟁률이 높지 않은 상담원 채용에서 탈락한 게 이해가 안 간다”면서 “이유라도 알려줬다면 덜 괴로웠을 것 같다”고 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들이 어떤 탈락 문구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위와 비슷했다. 구직자들은 ‘귀하의 자질만큼은 높이 평가 됐다(15%)’는 문구를 가장 불편하게 여겼다. 그 다음으로 ‘귀하의 열정만큼은 높이 산다(11%)’, ‘귀하와 함께 할 수 없게 됐다(9%)’ 등 순으로 나타났다. 구직자들이 판에 박힌 서류전형 결과를 통보 받으면서 좌절감이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신감이 사라져 ‘취포생’(취업포기생)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무기력도 학습(학습된 무기력)될 수 있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셀리그먼은 먼저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눈 후 철제우리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A 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게 했고, C 집단은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았다. B 집단은 온몸을 묶어 어떤 대처도 할 수 없게 했다.

    셀리그먼은 24시간이 지난 후 세 집단들을 다른 우리에 옮겨 넣고 다시 전기충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낮은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도망갈 수 있도록 조작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전기충격을 가하자 A와 C집단은 울타리를 넘어 피했지만 B집단은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고통을 받아들였다. 앞서 몸이 묶인 상태에서 저항해봤자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몸에 체득된 것이다.

    어린 코끼리의 발 한쪽을 작은 말뚝에 묶어두면 어른이 되서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코끼리의 작은 말뚝’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교훈을 던져준다.

    구직자들이 무기력한 코끼리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건장한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채용 문화에서부터 작은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진심과 격려가 담긴 한 줄이면 불합격 통보에도 청년들이 힘이 솓아나지 않을까. 2년 전 이수그룹이 불합격한 지원자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상심하지 말라”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긍정적 사례를 다시 한번 머리 속에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