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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개헌(改憲) 시점을 내년 6·13 지방선거로 못박으면서도, 개헌의 방법은 국회 주도가 아닌 대통령 직접 발의에 무게를 실었다.
현행 헌법 제128조에 따르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는 방법에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에 의한 발의와 대통령이 발의하는 방법 '투 트랙'이 있다. 이 중 후자에 의한 개헌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다"며 "어쨌든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확언했다.
다만 개헌 방법에 대해서는 국회 개헌특위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하는 방법보다는, 미묘하게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방법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 추진은 두 가지 기회가 있다"며, 현행 헌법 제128조의 국회 발의와 대통령 발의를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특위에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서 개헌안을 마련하면 정부도, 대통령도 받아들여서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국회의 개헌특위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때는 정부가 개헌특위의 논의사항들을 이어받아서 자체적으로 개헌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헌법 제128조는 1항에서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규정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설명에 일단 헌법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두 가지 방안이 마치 플랜A와 플랜B처럼 병렬적으로 준비된 듯 하지만, 정치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통령 발의 개헌에 무게를 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개헌특위에서 개헌안을 마련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데 대통령중심제 체제에서 집권 초기의 여당에는 청와대의 통제력이 강하게 미친다. 대통령이 직접 개헌을 주도할 가능성을 시사한 이상, 국회에서 여야 합의는 난망해졌다는 관측이다.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최우선의 과제로 놓고 있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중앙권력구조 개편을 별로 시급한 과제로 여기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내비친 것도 향후 개헌 추진 과정에서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앙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개헌에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지 모른다"며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국민기본권 확대를 위한 개헌에는 합의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통치구조' 개편이 당장 이뤄져야 할 일은 아니라고 시사한 셈이다.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국민적 충격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개헌이 주장된 것인데, 귀결은 엉뚱하게도 통치구조는 손대지 않고 기본권·지방분권만 매만지게 될 우려가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어도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그때까지 합의되는 과제만큼은 반드시 개헌을 할 것"이라며 "그 과제 속에서 지방분권의 강화, 또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재정분권의 강화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