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 줄다리기...요충 개성 탈환 요구도 물거품유엔측, 북한 도서들 댓가없이 내주고 서해 5도만 확보
  • [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⑤ 휴전 협상 개시

    인 보길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 포럼 대표

    맥아더 후임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이 동경으로 떠난뒤 8군을 맡은 밴플리트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그의 말처럼 이대통령의 뜻에 따르는 듯 북진작전에 적극공세를 
    펼치면서 큰 전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즈음 뉴욕으로부터는 참전17개국 대표들이 지지부진한 휴전논의는 일단 접어두고
    우선 중공군을 ‘평양-원산 선’까지 밀어올린 뒤 협상해 보자고 결정했다는 뉴스가 들어왔다.
    평양-원산 방어선은 지난해 겨울 맥아더가 구상했다가 중공군 인해전술에 밀려 포기한 것인데
    한반도의 가장 잘록한 허리 ‘평양-원산 선’은 러일전쟁때도 ‘분단선’으로 거론했던 곳으로
    키신저가 휴전 한참뒤 “당초 맥아더가 압록강 말고 거기까지만 진격했던들 중국은 참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뒷북을 치기도 했다.
  • '평양-원산선 진출설을 특종으로 대서특필한 51.6.22일자ⓒ동아EB
    ▲ '평양-원산선 진출설을 특종으로 대서특필한 51.6.22일자ⓒ동아EB

그 대동강이 아닌 압록강까지 다시 북진하겠다는 밴플리트가 38선 동서남북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1952년 여름, 국내언론이 ‘평양-원산 선’ 뉴스를 기분 좋게 대서특필한 다음날이었다. 잠잠해지던 휴전설이 마침내 소련의 입에서 공식적으로 터져나왔다.
6월 23일 소련 유엔대표 야콥 말리크(Jacob Malik)가 유엔 라디오 연설에서
“모든 외국군은 전투를 중지하고 38선에서 물러나 정전 협상을 시작해야한다”고 방송한 것이다.
영국 외무성은 “영국과 여러나라가 바로 오랫동안 기다리던 말”이라며 대환영하였고,
트리그비 리Trygve H. Lie) 유엔사무총장은 고향 노르웨이 휴가 도중에 달려와
“희망찬 평화의 신호”라며 반겼다. 중공 마오쩌둥은 즉시 “동의”를 선언한다.

트루먼 대통령도 “한국전쟁 1주년을 맞아 한국의 평화와 안전을 가져오는 화평안이라면
언제나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 ”말리크 소련대표의 제안이 세계평화를
위함이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취하여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를 해임한지 두달 반 만이다.

  • 휴전협상에 경고한 이승만 특별성명, 51.6.15일자ⓒ조선DB
    ▲ 휴전협상에 경고한 이승만 특별성명, 51.6.15일자ⓒ조선DB


  • ▶6월25일 부산 임시중앙청 경남도청 광장에서는 ‘6.25 항공(抗共)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진작부터 “타협은 거짓 평화! 국제공산주의는 타협을 안하는 집단”이라는 경고성명을
    냈던 이승만 대통령은 단상에 올라 유엔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열변을 토하였다.

    “유엔은 스스로 결의하고 발표했던 약속대로 지켜야 한다.
    모든 공산군이 압록강 너머로 철퇴할 때까지 스스로 정한 임무에 충실해 줄 것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한인들은 자유민으로 죽을지언정 남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이 혈전 마당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표명할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공산침략자를 다 타도시키고
    자유로 살 수 있든지 그러지 못하면 끝까지 싸우다 죽든지 할 작정입니다.
    우리 조국을 통일함으로 최고의 목적을 성취하자는 우리의 변치않는 주장을 누구든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거든 수백만 전재민들이 집을 잃고 방황하면서도 지금까지 변치 않고 모든 고난과 죽음을 이겨 나온 것을 여기 와서 보라고 요청합니다....(중략)
    만일 대한민국의 완전무결한 안전을 보장할만한 결말을 짓지 못하면, 자유를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세계 청년군인들의 신앙을 우리가 배반하는 것이니 우리는 결코 않겠다는 것이요.
    우리가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바는 이 전쟁이 모든 민주국가의 대승리로 결말이 나서
    영구 평화가 우리나라에 임하여 우리 통일민주국의 태극깃발이 대한반도 압록강까지 자유로이
    날리자는 것입니다...(후략)“

    한국국회는 두 번째로 ‘38선 정전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정부는 연일 비상각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하는 중에 애치슨 미국무장관의 발언이 나와 한가닥 희망을 갖기도 한다..
    애치슨은 미의회 외교위원회 답변에서 “말리크의 정전안은 미국으로 하여금 신중히 생각하게
    하였으며 중공군은 정전과 동시에 압록강까지 철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외국군이
    철수하는 제1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치슨의 이 발언은 중공에 던지는 협상용일 뿐, 한국의 통일 열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휴전협상 내내 이런 종류의 발언은 미국 지도자들로부터 계속 튀어나왔고,
    그것은 한국을 달래려는 속셈으로 그래서 더욱 한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말리크 휴전제의에 이승만이 전세계를 향하여 중대 경고를 발하였다.51.6.28일자ⓒ동아DB
    ▲ 말리크 휴전제의에 이승만이 전세계를 향하여 중대 경고를 발하였다.51.6.28일자ⓒ동아DB
    "무서운 전쟁의 서곡될 평화제안 수락 못할 터”
    이대통령 전세계에 중대경고 (동아일보 28일자 2면)
    소련 국제연합대표 말리크가 최근 제의한 비공식평화안을 26일 정례국무회의에서 검토한 결과
    국무원의 합의된 견해로서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어느 인위적 경계선을 가지고 이 나라를 분활하는 조건이 포함되어있는
    소위 평화안이라는 것은 어느 것이고 간에 남북 전국민이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일이다.
    침략자가 한국의 땅 일부라도 계속 점유할수 있게 놓아두는 제안은 결국 이 나라에 대한
    모욕이다. 소련의 지도자들이 지금 평화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기네들의 패배를 자인하는 것이요, 그들이 무력으로써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 와서 양면외교를 통해 완성해보려고 드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지도자들이
    그들의 말을 충실히 지켜나가리라고 믿을 사람은 전세계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유엔의 평화안과 소련의 평화안은 각각 별개의 다른 것이다.
    만약 유엔이 소련측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면 전세계인민의 눈에 국제적 정의의 법정으로서의
    유엔의 자격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엔이 소련 제안을 무시할 줄 믿는다.
    도대체 언제부터 소련 지도자들은 그렇게 세계평화를 갈망하여 온 것인가?
    한국을 자기네들 판권 속에 집어넣으려고 남침을 개시하였을 때 그들은 평화를 구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우리 국민을 학살하고 우리 영토를 파괴하는 것이 세계평화를 보장하는 노력이었던가? 소련을 포함한 유엔내의 몇몇 국가는 오늘날까지 38선으로 한국을 분할하고 이번 전쟁을 일으켰으며 장차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게 될 똑 같은 상태를 계속 존치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것이 평화제안이라는 것인가? 
    중공군은 분쇄되고 있으며 압도적 패퇴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분쇄된 중공군을 왜 38선까지
     다시 내려오도록 할 필요가 있는가? 침략자에게 벌을 주려는 것인가, 상을 주려는 것인가? 
    그러한 제안은 평화안이 아닌만큼 우리는 그것을 평화안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공산군이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로 철퇴할 것을 동의하도록 만들므로써만  비로소
    유엔이 선언한 제목적에 합치되는 평화교섭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원한의 38선 이북에 사는 수백만의 한국 국민이 공산당 상전들의 노예로서 생활하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한 결코 그냥 놓아둘 수 없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을 해방시키고 보호할 것이며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북한문제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다 할수 있는 것이며 북한 주민은 우리가 그렇게 하여줄 것을
    바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어떠한 결정을 할 때나 반드시 사전에 잔혹한 공산주의자의 공격에 전인류가 멸망하도록 방치해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유엔은 자기 주장을 꺾지않고 고난을 겪으면서라도 승리를 획득하고 침략자를 처벌하는 동시에 자유통일된 한국이 모든 국가의 대소를 막론하고 다 자유의 권리를 가질수 있다는 신성한 원칙에 대한 영원한 기념탑으로서 존속될 수 있게 하느냐를 생각해야
    할 줄로 믿는다.
    한국정부는 정의와 영구한 평화가 한국에 수립되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정의에 의하여 영구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싸움이 빨리 끝나서 우리 병사들이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을 누구나 다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적의 모략에 빠져
    결국 허무한 것에 지나지 않는 제안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첫째, 
    전한국민은 민족통일을 원하고 있다. 남한사람에 지지않게 38선이북에 사는 한국남녀들은
    하나의 정부 즉 대한민국 정부 밑에 통일되기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5년 동안
    우리의 국토를 분할했던 인위적 경계선을 또 다시 만들려는 여하한 제안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해결을 지으려면 반드시 한국민에 대한 공산침략이 장차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을 먼저 해주어야 한다. 
    셋째,
    한국 국민은 그들이 민주주의적으로 또 합법적으로 선출한 대표를 즉 한국정부를 통하여
    화평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협의를 받고 정보를 받을 수 있어야한다.
    말리크의 제안은 이러한 조건에 응할 수 있는 가, 그러나 우리는 조속한 평화라는 허망한 약속에 속아가지고 결국 더욱 무서운 전쟁의 서곡이 되어버릴 어느 평화제안도 수락하지 않음을
    전세계에 경고하는 바이다.
    6월29일 트루먼은 아랑곳 없이 휴전 제안문을 확정하여 유엔군사령관에게 전하였고,
    리지웨이는 다음날 아침 8시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휴전협상 준비회담을 원산항에 정박중인
    덴마크 병원선에서 열자고 공산측에 제의하였다.
    중공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회담을 7월15일 개성에서 시작하고
    김일성이 협상을 주도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보냈다.
    스탈린은 김일성은 안된다며 마오가 회담을 주도하라고 지시하고,
    리지웨이에게 보낼 답신 문안까지 만들어 보냈다.
    그때부터 스탈린은 휴전회담의 모든 것을 막후에서 총지휘 감독한다.

  • 1951.6.30 '정전반대 국토통일' 전국민 총궐기대회를 서울서 개최, 전국으로 확대하였다.ⓒ동아 DB
    ▲ 1951.6.30 '정전반대 국토통일' 전국민 총궐기대회를 서울서 개최, 전국으로 확대하였다.ⓒ동아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