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대한민국 건국운동 중심에 기독교세력의 기도와 투쟁 [제78회 이승만 포럼]

건국내각 21명중 9명...건국정신=기독교 정신으로 열매 맺어

김권정 칼럼 | 최종편집 2017.08.20 17: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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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정치사회동향과 기독교세력의 역할

김권정 교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학예사 


1, 들어가는 말

▶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하는 개인/집단/국가 등이 모습을 흔히 목격, 문제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대응하여 발전의 계기로 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1876년 개항이후 한국사회 가장 큰 시대과제는 ‘富國强兵’ 목표와 그 기반아래 외세 침략에 대응하며 ‘자주적(自主的) 근대 국민국가 건설’에 있었음.

▶ 대외적으로 3천년 이상의 중화문명권 와해, 서양을 오랑캐로만 인식하던 청국이 영국에 군사적 패배(洋務運動), 일본의 강제 개항(포함외교, 明治維新, 1858)=>국내내적으로 전통적 유교질서의 신분사회 변동, 새로운 사회 갈망 분출, 새로운 시대에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여 대안을 찾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

▶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역사적 상황도 만만하지 않음, 핵무기로 위협하며 우리와 직접 대치하는 북한과 이를 군사적으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 이를 견제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새로운 국가적 분위기 전환과 노력 등이 돋보이며 국민의 높은 지지율 유지, 그러나 여전히 정치사회적 소통 부재와 청년세대의 일자리 창출 등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룩한 한국인의 자부심 및 자신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

▶ 해방 직후 이같은 정치사회적 동향과 기독교세력의 역할을 통해 오늘 우리시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함.

  

2. 해방과 시대과제, 기독교

▶ 해방이 곧 독립으로 연결되지 못하며, 남북한 분할과 미소군 진주, 군정 실시, 불완전한 국내 상황, ‘국가 건설’ 문제가 시대 및 역사 과제 제기=>급박한 국내외 정치상황아래 ‘근대적 국민국가건설’이란 차원에서 일제 식민지 문제 정리 및 공동체의 정체성 회복은 극단적 부일전쟁 협력자가 아니라면 크게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이 작용하며, 식민지 잔재정리는 정부수립 이후로 넘어감

▶누가, 어떻게, 어떤 내용의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 세계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사회주의 어떤 체제 선택? 정부의 형태나 제도 내용은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어떤 세력이 국가건설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 등이 해방정국 가장 큰 첫 번째 과제.

▶미국과 소련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과 연계를 맺으며 다양한 정치세력이 ‘경쟁’(競爭), ‘체제 선택과 국가건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대한민국 정부가 출발하는 과정에서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그리고 한반도 및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도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 특히 남북한 관계가 중요, 서로 맞물리거나/엇물리는 관계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음. 이 과정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어떤 방향과 논리, 활동을 전개했는가에 대한 검토는 해방정국에 대한 깊은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기독교세력은 기독교란 종교적 공동체를 넘어 정치사회적 실체로 체계적 논리와 구체적 실천 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를 변화시키고자 한 사람들을 가리킴

▶19세기말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수용된 이후 정치변동과 맞물림 속에서 한국인 기독교 개종자 중에 정치사회화된 기독교세력이 형성. 독립협회운동이후 국권회복운동, 근대 민족의식 고취와 국가건설에 참여, 일제시대 민족주의 진영의 주요 세력으로 다양한 민족운동에 참여, 제2차세계대전이후 급격하게 재편되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며 이에 대응한 활동, 해방 정국에서 국가건설에  주도적 참여

▶기독교인의 사회참여: 정교분리(政敎分離), 상대적 자율성, 전국적 조직망 및 풍부한 인적 자산(교회와 학교, 기관 등), 기독교문명화론, 기독교적 실천관, 국제조직 네트워크 연계, 세계사적 흐름 이해 주도, 현실인식과 정치사회 목표 성취를 위한 실천운동, 정치사회적 역할 등(개인 및 민족 구원 이해, 복음과 상황)==>한국교회는 교회와 학교, 사회단체 등을 통해 훈련받은 인물 및 조직, 국내외 네트워크 존재

3. 해방 직후 기독교계 동향과 국가건설론

▶미군은 직접 개입하려고 했으나, 실제 제대로 되지 못했고(치안유지와 통일정부), 소련군은 처음부터 플랜(공산체제 및 위성국가)을 갖고 출발, 해방된 지 한 달만인 1945. 9. 20. 북한 주둔 소련군에 한반도 내에 ‘부르주아지 정권을 수립’하라는 스탈린의 비밀지시(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이후 이 작업을 실제 진행, 공산정권의 통일전선술의 이중적 모습

▶북한지역 신앙 자유 보장/종교의 자유는 신앙과 예배에 국한, 공공연한 탄압과 감시 및 공격, 공산적 경제사회토대의 빠른 구축을 위해 기독교인들의 월남 방조, 북한교회의 급격한 약화, 침체, 이 과정에서 공산세력에게 저항==>남한교회는 미군정의  우호적 분위기, 재건과정에서 일제 종교단체들이 남겨놓고 간 적산처리에 참여, 타종교에도 불하/결과적으로 기독교계에 상당수 불하==>이 과정에 대한 연구 필요.

▶미군정 운영을 위해 한국인들이 필요,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한말/일제강점기 다른 한국인들보다 서구/미국사회 경험과 이해를 축적, 미국 유학 대부분, 선교사 후손들이 군정청 관료/고문으로 내한(Williams, Underwood, Bunce 등) 경험이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 재회, 미군정 참여, 통역관(이묘묵) 역할 및 군정 관료로 등용

▶남한 내에서 가장 먼저 조직된 단체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의 좌익세력(경성콩그룹/장안파 공산세력)과 개인으로 민족주의 우익세력의 안재홍 참여, 임정봉대(臨政奉戴)를 주장하는 송진우/김준연의 참여 거부, 지역 건준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적극 참여, 지역 건준조직 운영(평남 건준, 조만식 등), 자치위원회 조직==>조선공산당 재건, 인민공화국 선포, 미군정 불인정 

▶우익세력도 한국민주당 창당(1945.9.16.),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여성들의 한국애국부인회/조선여자국민당 참여, 기독교인들 주도(박용희)로 사회민주당 결성(1945.9.5), 안재홍과 함께 국민당 조직, 고려청년당/신한민족당 결성 주도, 좌익세력견제, 임정 절대지지, 자주독립국가 추구, 민주주의 정체 수립, 근로대중의 복리 증진, 민족문화 앙양과 세계문화에 공헌, 국제헌장의 준수와 세계평화의 확립 등 

▶이승만 귀국(1945. 10.17) 독립촉성중앙협의회 결성, 임정 귀국(11.23)에 맞추어 ‘조선기독교 남부대회’ 개최(11.27~30) 이승만/김구/김규식 등 기독교 배경, 혼란 속에서 남한에서는 기독교 정신을 토대로 국가재건의 주장들이 정치지도자들 속에서 제기, 조선기독교남부대회 주체의 임시정부요인환영대회(1945.11.28)에서 참석한 이승만·김구·김규식이 기독교를 건국기초로 삼을 것을 주장=>일제하 종교통합책으로 결성된「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서 출발, 해방이후 유일한 유형적 교회조직, 비록 일제에 의해 조직되었으나 교파초월의 단일교단으로 유지하자는 것, 해방 후 정치 상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정치인들을 지원·후원

▶남부대회를 주도한 것은 대회장 김관식을 비롯한 김영섭·김종대·김영주·최거덕·이규갑·신공숙·함태영 등의 흥업구락부계 출신들 주도-일제 시대에 이승만에 대해 우호 및 지지한 인사들이 남부대회 대거 포진, 각자 교파환원제기(1947.4)==>중경 임시정부의 환국도 공개적으로 지지/환영함, 이승만 지지세력으로만 볼 수 없음, 중립적 태도 보임

▶ 자유 민주주의 실현 주장 : 반제(반소)반공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 자유체제 주장, 자유와 평화를 가치로 내세우며 민주주의의 제도 주장, 통상무역을 통한 시장경제 표방==>소련 공산주의를 파시즘/나찌즘과 같은 ‘全體主義’로 인식,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해 폭력을 허용하며/현실적으로 억압 및 말살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부정적 이해, 이승만/배민수/조병옥 등 좌우합작 주장한 기독교인들(최능진, 오기영), 사회복음(기독교사회주의/사회복음주의: 공산주의에 대항한 기독교 실천주의) 영향

▶기독교적 국가론 주장 : 적대적 소련과 공산주의 맞서 자유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 민족구원 지름길==>정치 용어 보다는 하나의 지향성, 기독교 가치에서 확장된 자유와 평등 위에 사랑(상호존중, 배려 등)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민주주의 질서와 윤리적 가치가 구성원들에게 작동하는 근대 국민국가 의미


4. 기독교세력의 활동과 의미들

▶신탁통치안 파장, 대중들은 민족 자존심의 문제로 인식, 한국인 감정 자극/모스크바 삼상회의(1945.12.16~26)에서 제기, 미소공동위원회 설치, 미소공위가 임시정부 수립, 5년간 통치를 한 뒤에 독립국가 수립, 신탁통치 준비 결정, 1946년 초 반탁과 삼상회의 지지로 양분, 박헌영은 처음에 반탁/1946년1월 초 평양 다녀온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 지지’로 전환(사실상의 신탁통치안 찬성으로 변경)

▶기독교인들은 우익정치세력으로 주요활동, 비상국민회의/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발족, 반탁전국학생총연맹, 독립촉성중앙부인단, 반탁 강연/계몽활동 전개==>기독교 청년단체 및 여성청년단체가 중요한 역할   

▶좌우합작운동, 미군정의 입장 크게 작용, 북한에 비해 남한은 신탁통치의 추진을 위한 정치지지세력 확보 어려움, 중간파 세력 지원, 좌우합작운동에 나섬,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등 찬반을 넘어 신탁통치 내에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정부 구성에 적극 참여 주장>‘기독신민회’(1945.12.1.) 창립, 박용희 주도, ‘민족신생운동’, 신한민족당+한독당, 신한민족당/민주독립당 등 기독교인이 참여/조선기독교청년회전국연합회 김규식을 회장을 추대, 좌우합작운동 지지기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 및 좌우합작운동 대응 일환, 이승만의 남선순행(南鮮巡行)(1946.4~6.), 국내 정치 기반에 결정적 역할, 충남ㆍ경상남북ㆍ전라남북 순으로 반탁 강연 활동==> 각 지역 기독교계의 목사 및 지역 활동가들이 주도로 지원활동, 방문계기로 지방 우익결집, 독촉국민회 지회가 연달아 결성==>목회자들이 지역여론 주도층 담당 

▶이승만은 ‘남한 만이라도 정부 조직 수립의 필요성’을 주장(1946.6), 북한 지역은 1946. 2.이후 3~4주만에 토지개혁를 비롯한 경제사회개혁 단행, 단독 국가체제 기반 구축 성공, 반면 미군정 아래 남한지역은 지리멸렬한 상태, 제대로 준비가 되지 못함, 국제무대 소련의 공격적 확장정책과 북한공산세력의 국가건설의 모습에 큰 위기감==>민족통일총본부 결성(1946.6.27.), 기독교인들의 주도, 한민당과 함께 정부수립을 통한 국가건설에 적극 나섬

▶두 차례의 미소공위의 결렬, 2차 미소공동위원회(1947.5-10) 결렬/신탁통치 합의 파기, 미국 제안으로 한국문제가 유엔에 상정, 유엔의 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 실시 결정(1947.11),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남한에서 가능, 북한에서 소련거부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국 불가==>중간파 기독교세력은 미소공위 결렬에 실망, 현실적으로 남북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안 수용, 총선거를 통한 민족 역량 강화, 궁극적으로 통일국가를 지향할 수 있다고 인식

▶김구는 남한만의 정부 수립 반대, 이승만/한민당과 결별, 중간파 김규식과 전격적으로 연대, 남북협상 주장>쟁점이 신탁통치안에서 정부 수립으로 변화

▶김구/김규식은 남북협상 제안, 북한 공산세력이 남북협상을 일방적으로 개최한다고 발표, 별 소득 없이 종료, 김구는 연설도 제대로 못함, 중간파 상당수 총선거 인정>3·1운동 민족대표인 김창준이 대구 10월사건을 목격하고, 좌익계 민족민주전선 참여, 기독교민주동맹(1947.2) 조직, 남북협상 참여, 최문식 등 북한 잔류==>좌우합작운동 및 남북협상, 현실을 헤쳐 나가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적 복잡한 힘의 관계를 대응하기에는 역부족

▶그리스도교연맹(위원장 함태영, 부위원장 박용희, 1947.12)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민주주의 국가건설 표방==>미소공위가 사실상 와해되고, 남한 만의 정부 수립 필요성이 현실화되면서 이승만을 공식적으로 지지후원하고 나섬

▶ 일제시대 이승만 노선의 동지회-흥업구락부계열과 안창호 노선의 흥사단-수양동우회계열에 공존함, 일제말 탄압과 침체로 와해된 상태, 해방직후 그 세력들을 회복하거나 새롭게 재편해야 하는 현실적 요구에 직면함 또는 흥사단-수양동우회는 안창호의 체포와 죽음으로 구심점 상실, 해방이후 북한지역에서 개신교인들 대거 남하, 반공의식 고취,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며 기독교를 신국가건설의 기초로 삼으려는 이승만의 정부수립운동에 상당수 월남 개신교인들, 흥사단계열의 일부 인사들의 참여, ‘반공주의’가 화학적 결합을 가능케 함(조병옥·이윤영·백낙준·오천석·정인과 등, 서북청년단·영락교회 청년회 및 대학생회 등)

▶일제시대 동지회-흥업구락부원들 가운데 이갑성·구자옥·구영숙·김영섭·유억겸·오화영·이춘호·이관구·윤치영·김도연·허정·최순주·윤홍섭·김양수·이원철·현동완등과 기호 장로교 출신의 함태영·박용희·전필순·최석주·김수철·엄재희·최거덕, 기타 김활란·임영신 등 원로인 함태영 좌장 역할(‘안동교회’)-한민당, 독립촉성에 넓게 포진, 반탁운동, 미국외교문제 등에서 활동  

▶월남한 기독교인과 단체들 활동, 조선민주당 활약(이윤영 목사), 기독청년학생단체들(선우기성 서북청년회), 반탁운동, 각종 청년운동 등 지속 전개

▶정치분야에서 기독교세력의 상징적 이미지는 제헌국회의 개헌 당시, 목사출신의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부탁한 ‘사건’, 8월 15일 정부수립일에 대통령 취임사에서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 더 결심”한다고 맹세한다는 점에서 절정=>기독교인들을 정부관료로 기용, 정부 탄생 때 정부통령과 국무총리를 제외한 21개 부서장 중 9명이 기독교인(정권 전시기 기독교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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