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를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의 실습장으로 만들기보다는....

  •  대한민국 헌법기관을 내가 차지하느냐 네가 차지하느냐의 숨 가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싸움은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세력이 차지했던 국가기관을
    왕년의 386 운동권 세력 또는 그에 우호적인 계열이 빼앗아가는 투쟁이다.
    행정부야 정권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운동권이 통 째 장악하게 돼 있다.
    청와대부터가 그렇게 바뀌었다. 입법부의 경우는 더불어 민주당이 제1당이지만,
    다른 정당들도 일정한 지분을 다 가지고 있다.

    문제는 사법부다.

     사법부는 자유주의적 상식으로는, 비록 운동권 세상이 됐다고는 하지만
    운동이념보다는 객관적인 법조문에 따라 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운동권 사회과학은 국가는 물론 법률이라는 것도 한낱 이념투쟁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부르주아 국가의 ‘법적 객관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부르주아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복무하는 허울 좋은 명목일 뿐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그들이 정권과 사법권을 장악하면
    부르주아의 이른바 ‘법적 객관주의’보다는 ‘자기들 나름의 정의’의 기준에서
    법을 운영을 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  ‘자기들 나름의 정의’의 기준에서 법을 운영한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운동권의 정치투쟁을 우호적으로 재단(裁斷)하기 위해 법의 해석과 적용을
     ‘진보적 판사’ 개인의 ‘진보적 잣대’에 따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동안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 튀는 발언, 튀는 처신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개중에는 물론 누가 보더라도 보편적인 공감을 살 만한 판결, 발언, 처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개중에는 보편적 공감의 사유가 결여된 편벽된 판결, 발언, 처신도 있었을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에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 소리를 들었다.
    그런 시절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오늘의 판사들이자 당시의 판사 예비생들이
    얼마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지는 헤아릴 수 있다.
     “이 다음 우리 세대가 판사가 되면 이런 사법부를 송두리 째 뒤집어 놓아야지” 하는
    원념(怨念)도 품었을 것이다. 이 역시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그 시절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판사가 된 이후 법복을 입은 저항적 지성(知性)으로서 사법부의 해묵은
    ‘보수적’ 전통과 관행에 ‘노(no)'라고 말한 그들 ’진보적 판사들‘의 충정까지도 이해 못할 건 없다.

     그러나 운동권이라 해서 그들이 권력화 된 다음엔 그들 나름의 지나침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운동권은 이미 1987년의 민주화 직후부터 급속도로 권력화 했다. 운동권은 권력화 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화 되고 교조주의(敎條主義)화 하니까 운동권의 이념적 도식(圖式)이 가진
    편향성과 궤변과 억지, 그리고 엉터리도 구악(舊惡) 못지않은 막심한 폐해를 이 사회에 끼치더라는 관찰일 뿐이다.

     백주의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무법자를 의인인 양 추켜세우고 비호하는 게
    과연 ‘진보적 시각’인가? ‘진보적 시각’만 내세우면 무슨 행패라도 ‘정의’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는가? ‘진보적 시각’이면 전(全) 세계인이 매일 같이 먹는 멀쩡한 미국산 쇠고기를 독극물로
    낙인해도 그뿐인가?
     
     이런 성찰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자는 앞으로 한국 사법부를 ‘운동권적 변혁’보다는
    ‘선진국적 진화’ 쪽으로 끌고 가주기를 소망한다. 김명수 지명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고
    들었다. “두고 보니 참 신중하고 균형 감각이 높은 인사로군” 하는 세평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젊었을 때 누군들 운동 한 번 안 해봤겠는가? 그러나 그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사람의 생각 역시 발전적으로 진화-성숙해 가야 한다.
    사법부를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의 실습장으로 만들기보다는,
    세계의 법학도들이 예의 주시하는 최고의 선진적 사법부로 격상시켜 주기 바란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 2017/8/22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