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평양전' 기획...학계·시민단체 “취지 좋더라도 부적절한 행사”
  • ▲ 北평양 여명거리 앞을 지나가는 군인들. ⓒ뉴시스
    ▲ 北평양 여명거리 앞을 지나가는 군인들. ⓒ뉴시스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래 도시전인 ‘평양전’(북한)을 두고 자칫 시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북한의 최근 건축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평양 소재 고급 아파트(모델하우스) 전시 뿐만 아니라, 여러 가구가 원룸에 모여 사는 이른바 ‘비둘기 집’이나 북한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실생활을 전시회에 녹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25일 서울디자인재단 서울비엔날래 사무국(평양살림 언론홍보자료)에 따르면 ‘평양전’(9월2일~11월5일)은 평양 주민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사무국은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평양의 최근 아파트 트렌드를 조명할 수 있는 은하과학자·미래과학자 거리의 고급 아파트를 재현한다는 계획이다.

    모델하우스(36㎡)는 크게 4개의 방으로 구성된다. △거실 △식사 공간 △부엌 △침실 공간 등이다. 각 방 내부는 북한에서 공수한 생활 용품들로 꾸며진다. 이밖에 가구나 벽지, 신발, 옷, 과자 등도 집안 곳곳에 배치된다. 다만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삼성 TV나 디지털카메라, LG 세탁기, 쿠쿠밥솥 등은 제외됐다.

    이에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서민들의 실생활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왜 노동당 간부들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만 소개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은 25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은하과학자나 미래과학자 거리에 있는 아파트는 김정은이 핵(核) 과학자들을 배려해 주기 위해 배급해 준 공간이고 북한의 최고위층이 사는 곳”이라며 “특정 계층만 사는 집을 보여주게 되면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관람객들이 알 수 있겠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양일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우리 국민이 동포로서 이해해야 하는 북한은 노동당 비호세력등 고위층이 아니라 폭정과 기아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이라고 전제하면서 “극소수 고위층이 사는 아파트를 소개하는 것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보편적 생활상이 전혀 전달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이 볼 때는 ‘북한도 나름 먹고 살만하구나’하는 오해를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두 국가의 통일은 우월한 체제와 국력을 가진 국가가 포섭하고 흡수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북한이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는 행사는 자칫 헌법에 규정된 자유통일에 대한 의지와 당위성를 약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서울비엔날레사무국 관계자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전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며 “‘북한이 이렇게 잘 살아?’라는 반응과 ‘고위층이 사는 집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구나. 역시 한국이 낫다’라는 반응이 교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안내문을 부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건축비엔날레 ‘평양전’ 총괄감독인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고급 아파트를 전시하는 것에 대해 왜 평양의 평균치가 아니라 소수의 사례로 정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건축 비엔날레의 특징 중에는 가까운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양에 최근 지어진 아파트를 통해 앞으로의 개발과 최신 트렌드를 알아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양의 아파트나 북한 체제를 선전하려는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에서 고급 아파트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 70~80년대 수준이고 조잡한 가구들과 촌스러운 벽지 등이 전시돼 있을 뿐”이라고 했다.

    평양도시 건축전과 함께 평양에 대해 역사·사회·문화 등 정치적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는 ‘심포지엄’도 11월 1~2일 개최된다. 총 19명의 기자와 교수, 연구원 등이 참석해 ‘근대화된 아시아 도시로서의 평양’, ‘미래도시 평양 2050’, ‘평양의 아파트와 주거문화’ 등을 주제로 발표한다.

    <뉴데일리>가 25일 입수한 강연자들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오엔 헤델리 작가는 ‘포스트 사회주의 도시 평양’을 주제로 11월 2일 북한 노동자 아파트의 초기 단계 개발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논문을 소개 한다. 자료에는 “냉전을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당시 김일성이 주도한 효율적인 건설 작업의 의미에 변화를 준 시대에 건축양식과 건설노동에서의 의미가 어떻게 지붕선, 천장, 온돌, 라디에이터, 현관, 구조 같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는지에 대해 논의 하고 있다”고 표기됐다.

    발제자로 나서는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는 23일 ‘2017 수원시 남북교류협력 정책세미나’에서 “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뢰형성 과정이자 평화 구축의 발판이라는 거시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 비전 안에서 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지난 6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일시대를 여는 어젠다 설정을 위한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의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정 의원은 이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와 같은 남북관계 정상화 조치와 비핵화의 진전을 위한 방안 등 현안 토론”을 제안했다.

    안창모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이사는 2012년 6월 30일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북한 건축물들이 실용성도 구현한다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건축물들은 도시가 폭격을 당했을 때, 건물들이 밀집된 도시보다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사회주의 이념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쾌적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생각 이외에도, 또다시 전쟁이 발생할 경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 개념이 개입된 것이다”라고 해석한 바 있다.

    서예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교수는 2015년 10월 28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우려하는 서울대 교수모임(382명)이 발표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우려하며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 성명서 발표식에 참가한 바 있다. 이 성명서에는 “일선 학교에 보급된 교과서가 종북 좌편향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현행의 역사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아무 비판 없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검정을 통과한 어떤 교과서에도 그런 혐의는 찾을 수 없습니다”고 적혀있다.

    한편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제1회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9월 2일부터 11월 5일까지 돈의문박물관마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에서 열린다. ‘공유도시’라는 주제로 300여 개 전시·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도시를 어떻게 공유할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