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건축 박물관에 역사적 의미 더해... "기억을 공유하는 공간 만들 것"
  • ▲ 터미널 7 아키텍츠 조경찬 건축가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터미널 7 아키텍츠 조경찬 건축가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서울시의회와 덕수궁 사이 1,000제곱미터 공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과거 국세청 별관이 있었던 이곳을 시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서울 도시건축 박물관>을 조성하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본 사업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체신국(우체국)으로 이용한 장소를 시민의 품으로 되돌려 역사적 가치를 회복한다는 중요성을 가진다. 이 프로젝트가 서울의 역사성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공사의 설계를 맡은 '터미널 7 아키텍츠'의 조경찬 건축가를 28일 <뉴데일리>가 만나봤다.

    조경찬 건축가는 공사 현장이 내려다 보이는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현장을 가리키며 설계 의도를 설명했다.

    "성공회성당 옆 길(세종대로21길)에서 보면 대한제국 시기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환구단을 바라보고 소공로로 이어지는 옛길의 풍경을 재현합니다".

    건축을 통해 공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그는 '역사학자'의 면모를 풍겼다.

    "재생될 공간은 동쪽으로는 을지로 상가로, 북쪽은 광화문 광장으로, 남쪽은 소공로 지하상가를 통해 남대문까지 닿습니다. 이 공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잇는 것입니다".

    그의 설계는 심사위원들로부터 공간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탁월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존재하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 넣는 그는 김춘수 시인의 '꽃(1952년)'이라는 시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조경찬 건축가는 학위를 받은 미국에서 15년 간이나 지낸 유학파였지만 영락없는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유네스코(UNESCO)는 '창덕궁'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산 자연 지형에 맞춰 지어졌고, 인근의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궁궐의 기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창덕궁의 특성을 닮을 그의 설계는 서울 전역과 주변 지형에 건축물을 '조화'시켰다. 

    예술가의 인상을 풍기는 그는 건축가로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이 있어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이 원리는 다른 곳에서도 통한다고 생각해서 쉽게 건축 분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건축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해서 건축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 ▲ 조경찬 건축가와 본지 기자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조경찬 건축가와 본지 기자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공모 제안서에서 언급한 서울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서울이라는 도시는 600년 또는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이다. 특히 4대문 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기억이 있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궁궐 5개 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현대에 들어선 서울에 많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파괴를 많이 한 것이다. 계속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도시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 많이 없어졌다. 한편으로는 다른 시대의 건물이 공존하는 모습도 보이게 됐다."

    - 설계도를 구성하는데 영감을 준 사례가 있는지
    "서울시 공무원들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그 분들도 내가 설계한 것과 유사한 건축물이나 선례들 달라고 하는데 사실상 없다. 단순히 도시를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워낸 공간은 없는 부분이 아니다. 공간을 비워둠으로서 사람의 행동과 가능성을 창조하는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서울시가 주관하는 공모에 지원한 계기는
    "당시 최대 인기 프로젝트였다. 설계를 담당하는 위치가 '서울 시내'라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 중심부인 이 지역을 잘 안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설계를 맡아 자료를 검토해보니 알 수 없는 길들의 흔적이 있었다. 물론 당선을 예상하지 않았다. 터미널7을 세운지 얼마 안됐고, 공모전 경쟁도 치열했다. 서울시 프로젝트가 쉽지 않은데도 이곳저곳 여러 공모전에 지원하고 있었다."

    -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게 무엇인가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을 공유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자신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역과 공유될 때 박애(博愛) 정신이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뜻의 박애는 어려운 개념이다. 또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자존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특히 전시실은 작품이 걸리는 공간이라는 보다는 어떤 오브제가 놓이든지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 '조경찬' 하면 친환경 건축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친환경은 원래 땅이 갖고 있는 성질을 살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지하 광장을 밀폐된 실내 공간이 아닌 외부와 통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 지하 공간은 보통 햇볕도 안 들어오고 바람도 드나들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지하와 밖이 통하게 설계해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운 영향을 주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방식이 친환경이라고 생각했다."

    -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은 어떠한가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공사가 30% 정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완공은 내년 4월 중순으로 돼 있다. 공사가 끝나면 이후 두어 달 정도는 전시 물품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는 내년 6월 말 개장이 예상된다."

    - 서울시 측이 예상한 주차장 문제는 해결됐나
    "아직도 주차장 문제는 협의하고 있다. 지상 주차장을 보상해주는 지상을 지하로 보상해주고 있는 게 있다. 지하발굴은 다행히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발굴된 유적이 너무 중요한 것이면 그 자리에 보존해야 한다. 지하에서 발견된 것은 건물의 기둥으로 쓰인 적심과 물이 흘렀던 자리 수혈이다. 하지만 여러 개가 아니고 각각 한 점만 발굴되서 그 의미는 크지 않았다. 한 점만 나온 것은 국세청이 이미 지하공간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건물을 지을 당시 이미 파괴가 됐을 수 있다."

    - 공무원들과 프로젝트를 조율해 나가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는지
    "서울시 프로젝트가 악명이 높다. 물론 뉴욕시가 주관하는 것도 힘들다. 전반적으로 공공 조직과 일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 한 가지는 원래는 5개월에 마치기로 한 프로젝트인데, 이것저것 조율하다 보니 2년 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함께 일하는 부서가 3곳이다. 공모전 시기에는 도시공간 개선단이 주무부서였고 지금은 공공재생과, 지역발전본부, 도시기반본부와 함께 일하고 있다". 

    - 공사비 212억원, 설계비 9억원 예산이 책정됐는데 어려움은 없는가
    "공사비는 규모에 비해 많이 책정됐다. 지하 공간을 수직으로만 아니라 수평으로도 파는 공사이기 때문에 적지 않은 공사비가 소요되는 프로젝트다. 또한 지하 공간을 개발하다가 유적 발굴되면 보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공사비와 설계비는 여유 있게 책정된 것 같다".

     

  • ▲ <서울 도시건축 박물관>건설현장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서울 도시건축 박물관>건설현장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건축사무소 '터미널 7 아키텍츠'(Terminal 7 Architect) 의미는?
    "해외에서는 보통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의 이름을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제가 거주하는 지역은 할렘(Harlem)이라서 할렘 사무소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은 게 터미널7이다. '터미널 7'은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뉴욕 케네디(JFK) 공항 7번 터미널에 도착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또 숫자 7은 개인 건축사가 아닌 7명의 파트너와 함께 운영하는 큰 사무실을 꿈꾸며 그 의미를 담았다. 터미널(Terminal)이라는 단어는 끝 또는 종말을 의미하는데 단순한 끝이 아니라 끝과 끝의 연결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 공모작은 어떻게 완성됐나
    "당시 다섯 분과 함께 일했다. 지강일 씨가 나와 함께 건축 부분을 맡았다. 전진현, 조용준 씨가 조경을, 송민경 씨가 도시설계를 담당했다. 당시 다들 뉴욕에서 일하시는 분이셨고, 당선된 이후에는 지강일 씨와 1년 반 정도 함께 일했다. 다들 실력이 출중한 분들이셨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모임을 가졌다. 물론 손발이 잘 맞았다".

    - 다른 프로젝트를 맡으신 것이 있는지
    "평창 패럴림픽 접근성 개선 사업도 하고 있다. 지금은 바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하진 못하고 있다. 연구용역과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서울 건축박물관>에 신경을 집중하고 마무리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 어떤 취미활동을 즐기나?
    "운동을 좋아한다. 바쁘다보니 단기간에 빨리 할 수 있는 운동을 즐긴다. 뛰는 것이다. 뛰는 게 좋아 뉴욕에서는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풀마라톤도 완주했다. 건축가 중에는 마라톤 투어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세계 여러 도시를 색다르게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 ▲ 조경찬 건축가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조경찬 건축가 ⓒ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건축가 조경찬과 당선작 <서울 연대기>

    서울시는 두 해 전 과거 국세청 별관을 활용해 광화문과 시청일대에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는 <세종대로 역사문화 공간> 설계 공모를 냈다. 20개국에서 80개 작품을 출품했고, '터미널 7 아키텍츠'의 조경찬 건축가의 설계작이 당선됐다. 조경찬 건축가의 설계작은 <서울 도시건축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내년 여름 완공될 예정이다.

    조경찬 건축가의 당선작은 '서울연대기'(Seoul Chronicles)이다. 그는 설계 배경에 대해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단일한 지평선으로 이루어진 다른 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지상의 다양한 높이가 있을 뿐 아니라 지하에도 유적, 지하구조물, 기반 시설이 존재하는 깊이가 있는 도시"라고 설명 했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출품작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선작 심사평에 따르면 조경찬 건축가의 설계안은 가깝게는 국세청 별관 주변, 멀게는 서울을 에워싼 자연 지형을 해석하고 건축에 적용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이와 더불어 건축의 역사적 해석에 대한 호평도 있었다.

    그는 다음 달 2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전시한다. 작품명은 '서울 잘라보기'. 서울을 네 가지 지층으로 구분해 도시 발전과정에서 만들어진 경계들의 사회, 지리, 경제, 문화적 맥락을 살핀다. 경계는 고도에 따른 지하철, 평지, 고가, 산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