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균형발전 외면… 北 철도 인프라 정비 예산은 1000억 넘게 증액
  • ▲ 문재인 대통령과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던 2015년 2월, KTX호남선 용산역으로 나아가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과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던 2015년 2월, KTX호남선 용산역으로 나아가 귀성 인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사진DB

    문재인정권이 2018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철도예산을 전년 대비 50% 이상 대폭 삭감했다.

    대표적인 저탄소 교통수단인 철도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은 스스로 추진해온 '친환경 지속가능 성장' 및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역주행하는 셈이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와중에 북한의 철도 인프라 정비를 위한 예산은 증액된 것도 논란 대상이다.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철도에 배정된 예산이 올해 4조4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절반 넘게 잘려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일반철도 건설에 배정된 예산의 삭감이 가장 처참했다. 일반철도 건설 예산은 1조9000억 원이 줄어들었다. 경북 포항과 강원 삼척을 잇는 동해선 철도 건설 예산은 올해 5069억 원이 편성됐으나, 80% 가까이 삭감되며 내년에는 불과 1246억 원이 배정되는데 그쳤다.

    이러한 철도예산 삭감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정책에 역행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파탄 △대중교통 접근소외지 주민의 이동권과 복지 외면이라는 측면에서 거센 논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철도는 대표적인 저탄소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교통수단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살펴보면, 철도는 탑승인원 1인이 1㎞를 이동할 때마다 이산화탄소 3g을 배출하는 반면 고속버스는 10g, 오토바이는 82g, 자동차는 105g을 배출한다.

    철도예산 삭감으로 철도로 이동할 수 있는 수많은 인원이 향후 수 년간 자동차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이동하게 될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정권의 친환경 정책은 말뿐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석탄화력발전소 몇 기의 운용을 멈추고, 미세먼지 생색을 낼 일이 아닌 셈이다.

    저탄소 친환경 교통 인프라 구축을 위해 현재 비전철화 구간인 장항선·경북선·중앙선(영주 이남) 구간의 전철화를 예산을 편성해 서둘러도 모자랄 판인데, 되레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정책추진방향의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문제다.

    철도는 대표적인 중장거리 이동용 교통수단으로, 산간오지와 벽지의 교통 인프라 구축에 유용하다. 특히 물류환경이 열악해 산업이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에는 철도 구축이 산업 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철도조차 특정 권역에 집중돼 있다. 비(非)수도권인 강원·충남북과 영호남에는 군(郡) 단위 전체에 철도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널려 있어 GDP 3만 달러 시대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강원은 양구·인제·화천군은 물론 관광지로 유명한 속초시와 홍천군에마저 철도가 없다. 이 때문에 군(軍) 장병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들마저 차량 이동을 강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남은 산업도시이자 항만도시인 당진시에 철도가 없고 고도(古都) 부여시도 철도 교통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으며, 충북은 괴산·보은·진천에 철도 접속이 없다.

    경북은 사드가 배치될 예정인 전략거점 성주 뿐만 아니라 영양·청송·고령·영덕 등 내륙 지역민들이 철도가 들어올 기약도 안 보이는 가운데 교통환경 낙후를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고, 경남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고향인 창녕을 포함해 거창·고성·산청·의령·함양·합천 등 철도가 안 들어오는 군(郡)이 널려 있어 철도예산 삭감이 정치보복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고 있다.

    철도예산 삭감으로 홀대의 직격탄을 맞게 된 호남은 전북 고창·무주·진안·장수·부안·순창의 철도건설 시점을 기약할 수 없게 됐고, 전남도 예산 삭감으로 서부경전선과 남해안철도 건설이 지연됨에 따라 강진과 담양군민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산간오지와 벽지의 주민들은 값싸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철도교통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됨에 따라, 현 정부가 이들 국민들의 이동권과 교통복지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됐다.

    이에 따라 호남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민의당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최명길 원내대변인은 29일 "SOC 예산 감축은 지방의 일자리 감축과 중소기업들의 일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역균형발전의 원칙을 지켜갈 중요 수단을 포기하는 것으로, 지난 대선에서 여당의 지지율이 낮았던 특정 시·도의 SOC 예산이 집중적으로 감축됐다는 논란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호남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인사 중 한 명인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도 이날 법사위 현안 질의에서 "철도·교량·항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호남 입장에서는 인사 폭탄보다는 지역경제와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SOC 예산 폭탄이 절실하다"며 "균형발전·분권을 주장하는 문재인정부에서조차 호남 발전은 요원한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더욱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도 철도 환경으로부터 소외된 국민들이 많은데, 예산안에서 철도예산은 삭감된 반면 북한의 철도 인프라 정비를 위한 예산은 증액 편성됐다는 것이다.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통일부가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를 대비해 북한의 철도를 정비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이 전년 대비 1091억 원 증액된 24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세계현황자료(The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철도 총 연장은 2015년 기준으로 3460㎞로 세계 52위 수준이다.

    같은 해 기준으로 북한의 철도 총 연장 7435㎞의 절반을 밑돈다. 철도 총 연장이 2만7311㎞에 달하는 옆나라 일본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 철도예산은 깎고 그 돈을 돌려 북한의 철도 인프라 정비 및 구축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철도 총 연장 기준 세계 52위 국가가 29위 세력을 도와준다니,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외에도 철도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등 SOC 예산을 깎은 대가로, 연일 미사일을 쏘는 등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을 도와줄 남북협력기금을 1조 원 넘게 조성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남북협력기금은 1조400억 원이 편성됐는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1조 원을 돌파해 '남북협력기금 1조 원 시대'를 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