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법관들...‘가인(街人)’을 떠 올리며
  • ▲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 네이버
    ▲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 ⓒ 네이버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을 견디다 못한 한 판사가 대법원장을 찾아갔다. 하소연을 하던 그에게 돌아온 대법원장의 말. “나도 죽을 먹고 있소. 조금만 참고 고생합시다.”

    한 겨울 실내에 둔 잉크병이 얼어버릴 정도로 추위가 심해도 수은주가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난방을 하지 않던 대법원장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과 얽힌 일화 한 토막이다.

    우리 법원사를 들여다보면, 다른 분야와 다르게 유독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위인이 많이 눈이 띈다. 가인 선생을 비롯해 현행 재판제도의 기틀을 다진 조진만 前 대법원장,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시절, 시국사건으로 기소된 대학생들을 풀어준 방순원 전 대법원판사 등도 후배 법조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들은 평생에 걸쳐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가인 선생은 9년 3개월 동안의 임기를 마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1957년 12월 퇴임사 중에서.

    그가 사법부의 독립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어록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 굶어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배 명예롭다.”

    최근 들어 신문 1면을 장식한 중요 판결이 잇따라 선고됐다. 하나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형사 1심, 다른 하나는 기아자동차 노조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이른바 ‘통상임금’ 소송이다.

    이 두 판결은 국내는 물론 외신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할 만큼 영향력이 남달랐다.

    두 사건은 각각 박영수 특검과 노조 측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이재용 사건 재판부는, 박영수 특검의 공소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일부 뇌물 및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특검이 기소한 5가지 죄목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특검의 주장 및 논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소송은, 재판부가 원고인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에 산입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그 당부를 떠나 엄청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두 사건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남겼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서는 ‘묵시적 청탁과 수동적 뇌물’이란 특검의 법리구성 자체가 논쟁이 되고 있다. 과연 이런 법리가 성립할 수 있는지 여부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재판부의 유죄판단 근거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 사건은 수사 초반부터 ‘삼성특검’이란 말이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개개의 사안은 복잡하지만, 전체의 얼개를 볼 때 주요 쟁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 사실을 언제 인지(認知) 했는가’ 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 사안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 결과에 따라, 이 사건 흐름은 전혀 달라진다.

    변호인단과 이 사건 공동피고인들은 일관되게 이재용 부회장의 인지 시점을 2016년 8월 말 이후로 주장했다.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 정유라의 법정진술, 특검이 유죄판단의 근거로 제시한 안종범 수첩이나 피고인들의 통화 및 문자메시지 내역 등을 모두 살펴봐도, 변호인단의 항변을 배척할 만한 근거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은”이란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이재용 부회장이 2015년 3월 쯤에는, 정유라에 대한 지원 사실을 알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근혜-이재용 독대’를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서술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재판부의 유죄 판단이 ‘사실오인’에 따른 결과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재판부가 자유심증주의와 증거재판주의의 원칙에 반해, ‘여론 판결’을 내렸다는 날선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형사재판의 대 원칙인 자유심증주의를 따르더라도, ‘증거에 대한 재판부의 취사선택은 논리법칙과 경험칙의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 통설적 견해다.

    증거재판주의는,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法諺)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를 더 쉽게 풀이한다면 “피고인의 범죄 사실 증명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해도 좋을 만큼 확실해야 한다”는 말로 갈음할 수 있다.

    위 두 원칙을 기준으로 할 때, 이재용 사건 1심 재판부의 판시사항이 과연 정당했는지는,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통상임금 소송도 원칙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노사가 자율로 합의한 사항의 효력을 부정하려면, 그 내용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할만큼 反사회적이어야 한다. 과연 통상임금의 범주를 놓고 노사가 합의한 교섭사항이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법조계 안에서도 이견이 만만치 않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 임금협상 당시 노사가 상호 전제한 임금인상률을 훨씬 초과한다는 사실’, ‘이로 인해 피고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의 청구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 이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 사측이 말하는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의 존립 위태 등은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근로자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의 판시사항대로라면 사측이 주장한 경영상 어려움 혹은 기업의 존립 위태는 모호하거나 불확실한 개념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 역시, 모호하고 추상적이긴 마찬가지다.

    두 사건 판결은, 가인 선생의 생전 말씀을 떠 올리게 한다.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 손상이 될 것이다.”

    법관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두 판결이 정의에 입각한 결과물이었는지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판단할 일이다.

    가인 선생은 대법원장 재임 시절, 누구보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엄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추상같은 판결, 오직 법리와 증거만으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는 탁견과 혜안은, 가인이 살아 있을 때나 지금이나 법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건국과 함께 시작된 한국 사법의 역사도 60년을 훌쩍 넘겼다. 가인이 걸어간 길 위에 있는 후배 법관들이, 그 발자취를 되새길 때다.

  • ▲ 전북 순창에 있는 대법원 가인연수관. ⓒ 사진 뉴시스
    ▲ 전북 순창에 있는 대법원 가인연수관. ⓒ 사진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