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는 국회… 청와대, 더 예의 갖춰라

떼로 부르는 '5자 회동' 철회하고 '릴레이 영수회담'으로 전환해야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7.09.13 17: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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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ited97@newdailybiz.co.kr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2011년 하반기에 언론계에 몸담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본지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정당에 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왕적 권력의 전횡과 중우적 직접정치의 함정을 넘어, 의회 중심으로 실질적인 대의민주주의가 구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의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을 계기로 청와대가 국민의 대의대표기관인 국회를 대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부결 이후,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관제(官製) 역풍'을 불러일으키려 시도하고 있고, 청와대의 강경 기조 속에 존재감을 잃은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자세를 맹종하기에 바쁜 형국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잇단 '막말'이 터져나오는 등 헌정사상 유례없는 집권여당의 '대야(對野) 투쟁'마저 거론된다. 과연 이러한 행태에 어떤 소득이 있을까.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의대표들이 모인 헌법기관이다. 헌재소장에 대한 임명동의권의 행사는 헌법이 제111조 4항에서 직접 부여한 국회의 고유 권능이다.

뭣보다 지난 6월 15일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 등의 임명은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며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재판소장 임명은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언명했는데, 고위관계자가 "무책임의 극치" "국민의 기대를 배반" "헌정질서를 정략적으로 악용한 사례"라고 화를 내며 펄펄 뛰었다. 대체 누구의 뜻인가.

청와대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명된 '낙하산 권력'에 불과하다. 일고의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한갓 임명직 공무원이 정당한 헌법상의 권능을 행사한 국회를 향해 화를 내며 펄펄 뛰는 것은 헌정체제를 경시하는 것이고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나마 청와대에서 단 한 명 직선됐다는 대통령도 5년간 행정권력에 한해 위임을 받았을 뿐이다. 임기 초의 높은 지지율은 역대 헌정사가 보여주듯 신기루에 가까운 허상에 불과하며, 지지율을 바탕으로 헌법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입법·예산·인사 등 모든 국사에 있어 오로지 진정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상 당연하다.

각종 인사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데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절규하며 국회를 맹비난한들 정치적 실익은 앞으로도 전혀 없을 것이다.

김이수 후보자 낙마 소식을 접한 "대통령의 표정이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다. 다음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노력했는데, 노력이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한 일이 되고 있다"는 '남탓 읊조림'이 또 나올까 우려스럽다.

국민의 대표로는 오직 국회만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국회에 대한 협치 노력은 '안해도 되는 것을 굳이 은혜 베풀 듯 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헌정질서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은 나눠져 있기 때문에 함께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것은 원래부터 당연한 일이다. 내맘대로 혼자 독재할 수 있는데 국회를 어여삐 여겨 '협치해준다'는 시혜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나 가능한 오만한 발상이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대통령이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을 모셔야 하는 존재로 본다.

실제로도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민의 대의대표이며 개별적으로 각자가 다 헌법기관이다. 교장선생이 학생 불러모아 조회하듯 의원들을 떼로 불러 훈시하듯 당부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중요한 국회직이나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은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으로 따로 초청해 독대하며 국사를 풀어나가는 게 관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오라 하면 와야 하고, 가라 하면 가야 하는 존재로 취급한다. 청와대에서의 대통령·여야대표 5자 회동의 무산 등 협치의 좌초가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이룬 채 여론 형성과 반영의 기능을 담당하는 공당(公黨)의 지도부는 청와대가 '모여라' 한 마디 하면 군소리 없이 모여야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물며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온갖 '시누이'들과 함께 잔소리를 들어가며 만나는 모임이라면 갈 이유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최종 형태였던 유신 시대 때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대우하는 것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5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와 영수회담을 할 때 '곁다리' 여당 대표를 끼워넣지 않았다. 이효상 당시 공화당 당의장서리를 부르지도 않았고, 만약 불렀다면 당연히 김영삼 총재는 만남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수회담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사이의 순수한 독대였고, 다만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만이 메모를 위해 발언권 없이 배석했을 뿐이다.

여야가 바뀌었던 과거에 지금의 야당이 지금의 여당을 대접하는 방식도 이리 박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5월 20일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영수회담을 할 때,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은 물론 다른 야당 대표를 부르지 않고 오롯이 손학규 대표와 독대했다. 배석자로는 양측의 비서실장과 대변인이 있었을 따름이었다.

당시 정국에는 친박연대나 자유선진당 등 최대 현안이었던 한미FTA 문제와 관련해 정부의 입장을 편들어줄 수 있는 세력이 많았지만, 치사하게 '2중대' '3중대'를 끼워넣지 않고 1대1로 만났던 셈이다. 

언제까지 민주당 추미애 대표, 그리고 교섭단체도 아닌 정의당 대표 등 자신을 편당해줄 수 있는 사람을 배석시키는 형태로 진정성 없는 회동 제안을 반복할 셈인가.

협치의 복원은 제1야당 자유한국당, 제2야당 국민의당, 제3야당인 바른정당의 지도부를 순차적으로 청와대로 초청해 진정한 의미의 '국민존중·야당존중 릴레이 영수회담'을 할 때야 비로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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